낯섦과 설렘의 중간즈음
전학이라는 두 글자에는 긴장과 두려움, 설렘 같은 자잘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이사를 하고 새집으로 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떨림에 전날 밤을 설치고 학교를 가는 아이의 얼굴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상상하느라 잠 못 이루었을테고,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크고 작은 생각들을 하며 스스로를 북돋우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삶에 적당한 긴장은 윤활유가 되기도 하니까, 잠 못 이루고 생각의 꽃을 피우며 아마도 너는 더 유연해졌으리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단하며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어떤 경우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면 말이야, 시뮬레이션해보며 그에 반응할 내 마음을 미리 살살 달래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코로나로 인해 등교 개학이 늦춰졌고, 아이는 전학을 오며 처음 학교를 가게 되었다. 전학서류를 내기 위해 하루 전날, 입학식도 없이 가게 된 학교를 보고 아이는 적잖이 실망한 듯 보였다. 이사 오기 전 누나가 다녔던 학교는 큰 건물에 넓은 복도, 무엇보다 외관이 세련되었는데 지금의 학교는 오래된 건물에 좁은 복도, 아이가 보기에도 예스러움이 느껴졌을 터다. 첫째 아이도 달갑지 않은 표정은 매한가지다. 옛날 학교 같다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전학서류를 내고 집으로 오는 길,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학교의 외관보다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더 중요하다며 아이들의(실은 나의) 마음을 달래었다. 물론, 좋은 친구와 다정한 선생님을 만날 거라는 믿음을 주며.
드디어 학교 가는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쳐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과 남편에게 한잔씩 꼭 홀짝이게 하는 따뜻한 차를 끓여서 한숨 식혀놓았다. 주로 작두콩과 현미, 옥수수, 보리, 결명자, 도라지, 생강 중에서 3개 정도 섞어서 끓이는 편이다. 아이들이 작두콩차를 좋아해서 작두콩은 늘 포함이 되곤 한다. 생강은 작은 조각 한 톨에도 킁킁 냄새를 맡고 손사래를 치고, 도라지를 섞으면 한 모금에 인상을 찌푸리곤 해서 꿀을 듬뿍 섞어준다. 오늘 아침은 작두콩, 보리, 옥수수를 넣고 끓였다. 아이들이 고소하고 냄새도 좋다며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웠다. " 아!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내가 학교를 간다니. 헐 "
눈을 비비며 방에서 걸어 나오는 아이의 첫마디에, 잔뜩 날이 서있었던 모든 긴장이 스르르 풀려 한참을 웃어댔다. 덕분에 부드러운 하루를 시작한다. 역시나 아이들은 그런 존재.
아이들이 좋아하는 촉촉한 유부초밥과 사과, 그리고 뜨끈한 차 한잔. 아침에는 먹기 편하고 소화도 쉬운 걸로.
학교를 간다. 너의 말마따나, 드 디 어. 손을 잡고 걸었다. 보통 지름길이 있기 마련이니, 큰 형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자 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며 키득거린다. 마치 비밀작전이라도 벌이는 듯 흥미로운가 보다. 고학년 아이들을 따라서 학교를 가다 보니 정말로 빠른 길이 나온다. 작전 성공이다 그렇지!^^
느슨해졌던 마음이 교문 앞에 다다르자, 다시 바짝 조여진다. 아이들은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하지만, 동그란 눈 속에 떨리는 눈빛은 숨길수가 없다. 새 교과서를 가득 담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뒤뚱뒤뚱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발걸음을 응원하며 지켜보았다. 무거운 가방이 어색한지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며 가방을 추켜올리는 아이에게 달려가서 손으로 받쳐주고만 싶었다. 열 걸음에 한 번씩 뒤돌아서, 교문밖에서 지켜보는 엄마에게 웃으며 손 흔들어주었던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모두 마음으로 했다. 엄마는 너희들을 믿어.
생각이 끓어 넘치는 날은 외려 생각을 얼려버리는 쪽을 택한다. 집에 와서 모든 문을 활짝 열고 공기청정기를 끈 뒤 대청소를 했다.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았다. 옷장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키고, 세탁기를 돌렸다. 주방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끝내고도 남은 시간에 커피 한잔 대신 책장정리를 택했다. 커피는 아이들을 만나고 마셔야지. 커피는 생각을 몽글몽글 만드니까.
그렇게 커피를 아껴두고, 생각도 냉동실로 넣어버린다. 책 정리를 하려 했었는데 말이지. 모든 책을 꺼낸김에, 책장 위치를 옮겨버렸다. ( 속 시끄러울 때 가구 위치 변경하며 청소하는 것을 즐긴다. )
하교시간을 맞추어 학교 앞으로 간다. 걸으면서 천천히 생각이 녹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늘 왜 이렇게 긴지, 어떤 표정일지, 즐거웠을지, 고단했을지, 돌발상황은 없었을지, 아오 다시 생각 모터가 윙윙 돌아간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 공장 모터!
종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오분남짓 지나 아이가 나왔다. 멀리서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 눈치다. 교문 앞 엄마들 사이에서 크게 손을 흔들어주자 제 엄마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이가 뛰어온다. 가방이 아래위로 들썩이고 어깨 한쪽 끈은 균형을 잃고 내려갔다. "엄마아" 뛰어와서 안기며 숨을 헉헉 거린다. 분홍빛으로 상기된 얼굴로 뛰어와 엄마를 부르며 안길 때, 짙은 반가움과 기쁨이 전해졌다.
토닥토닥 등을 만져주며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삼키고 짧게 기특함을 전했다.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의 걸음걸음이 전해주는 감동은 달다. 진하게 농축된 꿀보다 더 달아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아가였을 때 "엄마"하며 뒤뚱뒤뚱 걸음을 내디뎠고, 이제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 "엄마"하며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달려온다. 엄마라는 세상으로 향하는 걸음은 언제나 달길 바라본다. 마주한 세상 속에서 행여 달갑지 않은 하루를 만났을 때도, 언제든 돌아올 엄마라는 세상이 있음을 잊지 않기를.
용기를 내렴. 너의 편은 늘 여기 있으니까,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렴.
우리는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교문 앞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으면 한다.
태어나지 않은 세계에 성장은 없다. 안락하고 평온하지만 그곳에서는 몸도 마음도 자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처도 후회도 없다. 그러나 성장도 없다. 성장은 언제나 균열과 틈,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간극을 메우고 틈을 좁히고 서로 어긋난 것들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야 비로소 우리는 조금 자랄 수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의 삶은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수없이 넘나들며 어떤 것은 허물거나 새로 짓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지도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의 말들 대부분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아이의 인생에 내재된 불행의 가능성은 부모의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단단히 울타리를 쳐도 부모의 마음에는 늘 얼마의 불안이 있고 불안은 마음을 위축시킨다. 변수나 모험, 판타지가 느긋하게 끼어들 틈이 없다. 자라는 동안 내가 들었던 어른들의 말도 언제나 단언하는 말들이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어른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고, 내내 따뜻했지만 지루하고 시시했다.
그 시절 내가 궁금한 것들은 언제나 울타리 너머, 빨간 모자가 끝내 들어가 버린 숲이나 싱클레어가 동경했던 문밖의 거리에 있었다. 아이들은 금지된 세계에 매료되고 불가능한 꿈을 꾼다. 소방차가 되겠다고 하고, 하늘을 날겠다고 하고, 커서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한다. 가지 말라는 숲으로 기어이 들어가 늑대 밥이 되었다가 구사일생하고도 실눈을 뜨고 몰래 다시 숲을 본다.
아이들은 금기를 깬다. 경계를 넘는다. 자기 세계의 울타리를 수시로 넘나들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성장한다.
실패란 '판단'일뿐입니다. 사실은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볼 수 있죠. 가장 성공한 사람은 삶에서 수없이, 기꺼이 넘어져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은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이렇게 말하죠. "음, 이건 잘 안되네. 이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
낯섦과 설렘의 사이를 기록하려 합니다. 그래서 다시 설레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