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외숙모

과자만큼 마음이 달았던 이유

by 예담


아빠가 된 남동생은 첫아이의 돌잔치 때 마이크를 잡고 스페셜 땡스투에 외숙모를 언급했다. 선물과 함께 공식적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주섬주섬 일어나셔서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인사하시던 외숙모에게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아마도 대부분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우며 의아했을 것이다. 공기를 가득 메우는 박수소리에 뭉클해졌던 나는 그 물음표에 답을 할 수 있었다.


엄마의 작은오빠의 배우자인 작은 외숙모는 어쩌면 애매한 가족의 위치이다. 자매 특유의 내밀함으로 친밀하게 통하는 이모와,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남동생을 챙겨주는 누나의 역할이 묵직한 고모의 이름. 집안의 큰며느리로 대소사를 챙기며 존재감을 발휘해야 하는 큰 외숙모. 다들 크고 작은 비중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작은 외숙모가 있었다. 키가 작고 통통한 우리 작은 외숙모.


작은 외숙모는 존재감을 뽐내며 목소리를 드높이는 일이 없었지만, 외할머니 집은 작은 외숙모의 향이 짙게 묻어있었다. 작은 외삼촌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집들이 빙그레 둘러져 있고, 그 사이를 걸어가면 운동장만한 밭이 나오는 구옥이었다. 할머니는 안채, 외삼촌은 그 옆의 바깥채, 또 그 옆의 집은 사촌언니의 사랑방으로,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있는 타원형의 화단을 중심으로 집들이 둥글게 모여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외할머니 집이 그립다.





사업을 하셨던 작은 외삼촌은 90년대에 차가 그랜저였다가 체어맨, 벤츠 순으로 바뀌어 갔다. 만날 때마다 두둑이 용돈을 쥐어주시며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외삼촌에 비해 작은 외숙모는 너무나 검소했다. 명색이 사장님 와이프인데 옷도 신경 안 쓰고 화장도 하지 않는 외숙모에게 외삼촌은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여동생인 우리엄마는 말을 거들곤 했다. 언니! 옷도 좋은거 사입고 머리도 예쁘게 하러 가자고.


살을 빼고 옷도 사 입고 꾸미라는 말에 외숙모는 한결같이 웃음으로 답했다.


작은외숙모는 자존감이 높으셨던 것 같다. 내적으로 아름다움을 이루었기 때문에 외적인 부분은 누가 뭐래도 웃어넘겨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경남 진해에 장천이라는 동네가 있다. 버스를 내려서 10미터 정도 걸으면 외숙모의 연쇄점이 나왔고, 다시 5미터를 걸으면 외할머니 집이 나왔다. 외숙모는 장천 슈퍼를 운영했다. 슈퍼 안에는 딸린 작은방이 있었는데 그 방은 항상 뜨끈하게 데워져 있었고, 덮을 수 있는 이불도 늘 함께 있었다. 그리고 책이 가득했다. 손님이 없을 땐 외숙모는 늘 책을 읽으셨다. 손님이 오면 뒤집어 펼쳐두고, 뒤뚱거리며 일어나시던 외숙모의 정겨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외할머니 집에 가는 날이 좋았다. 먼저 외숙모 가게에 들르면 과자를 한 봉지 가득 받아 들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과자를 먹으며 노는 것이 그렇게도 신이났다. 게다가 외숙모는 어지른다고 잔소리하는 어른이 아니었으니, 과자부스러기를 신경쓰며 먹지않아도 되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들도 천지에 널렸으니 천국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옥탑방도 있었다. 대학교 때까지 거기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사촌언니 오빠들과 시시덕거렸던 추억이 있다. 외숙모는 싫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것을 믿어주고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긍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용돈과 봉지 가득 과자도 함께였다. 나중에 중학생쯤 되어서 머리가 커졌을 땐, 괜찮다고 제법 과자를 사양할 줄도 알았는데 외숙모는 그게 시늉이었던 줄 아셨던 거다. 내가 두 번 괜찮다 하면 세 번 다시 쥐어주셨다. 그럼 또 봉지를 휘휘 돌리며 즐겁게 돌아오는 길. 늘 손 흔들며 배웅해주는 외숙모가 있어서 과자만큼 마음이 달았다.




명절에 온 친척들이 모이면 으레 여기저기 던져지는 보따리가 있다. 약간의 걱정과 잔소리가 가미된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단골 메뉴가 있지. 공부는 잘하냐, 반에서 몇 등 하나, 대학은 어디 갈 거냐,


유일하게 아무런 보따리도 없이 맨몸으로 모두를 대하는 작은 외숙모 앞에서 사촌언니 오빠, 동생들 모두 개운함을 느꼈을 테다. 우리는 잔소리의 멀미가 가득한 안채에서 벗어나 외숙모의 연쇄점으로 달려가기 바빴으니까. 평가에 관련된 그 어느 것도 묻지 않았던 외숙모는, 시끌벅적한 집안의 어느 구석에서 집안일을 하시며, 다른 가족들의 자식 자랑을 들어주고 계셨다. 그리고 아이들의 좋은 점만 쏙쏙 담아놓고, 우리들이 나타나면 칭찬을 듬뿍해주셨다. 다정한 어른 앞에 서 있을 때 작은 우리들은 긴장이 풀렸으며 더욱 단단해짐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였나, 엄마 아빠가 크게 다투시던 날이었다. 겁이 많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방에서 당황하다, 몰래 무선전화기를 가져와서 외숙모에게 전화를 했다. 나름 진해의 끝과 끝이었는데. 잠시 후에 외삼촌과 외숙모가 굳은 얼굴로 벨을 누르셨다. 부부싸움은 소강되며 흐지부지 되어버렸고, 외삼촌 내외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 아빠의 화살은 나에게 향했지만 도리어 괜찮았다. 눈물이 날뻔했는데 외숙모가 와주어 고마웠다.





원천적인 불안 속에 잠재되려 할 때 누군가 다 안다는 듯이 등을 쓸어주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가는 것이 삶인지라 큰 액션은 필요치 않다. 해결할 수 없을 걸 알면서 우리는 곁에 있는 이에게 나의 고충을 토로한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조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저 들어주고 믿어주는 마음이면 되었다.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일에 맞닥뜨리면 토로하고 싶어 진다. 모든 걸 다 아는듯한 영리한 조언이 아닌, 둥글둥글 둔하고 모자란 곰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쓰다듬어주면 되는 법이다. 정체모를 두려움과 말하기 어려웠던 부끄러움이 아래로 사뿐히 가라앉도록 말이다.


작은 외숙모는 허름한 옷에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외출을 하신다. 옛날에는 장천슈퍼 아줌마, 지금은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지만 여전히 변한건 하나도 없는 작은외숙모.

처음에는 의아해서 더러 엄마한테 묻곤했다. "엄마, 외숙모는 왜 버스 타고 다녀요? " "엄마, 왜 작은 외숙모가 외할머니 모시고 살아요? " "너도 알잖아. 외숙모는 원래 그런걸. 그래 맞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 천사지. 할머니도 그러니 작은 외삼촌네랑 사시고 싶어 하셨잖아. "

엄마한테 전해듣기로 외삼촌은 회사를 운영하시며 작은 손해는 눈감고 넘어가시고, 어려운 직원에겐 도움도 주었다고 했다. 나는 자세한건 잘 모르지만 넉넉했을 마음만은 알것도 같다.




선의가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이들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익숙한 손을 가진 이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나는 그런 것에 대해 고찰할 때면 외숙모가 생각이 났다. 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듯이 만날 때마다 무얼 내미는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작은 외숙모를. 작은 외숙모를 떠올릴 때마다 청아한 풍경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언젠가 한 번은 여쭤보고 싶다. 외숙모의 삶의 철학에 대해.

말갛고 순한 눈으로 그저 웃으시고 말 것이 그려지지만 말이다.


이전 04화나의 첫 아르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