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하는 것
이제와 돌이켜보니 청춘이고 바람이었다. 그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시작해보는 거였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같은 마인드랄까.
대학 1학년 시절은 (부끄럽게도) 그야말로 흥청망청 흘러갔다는 말이 어울리지 싶다. 고3 시절의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이 미친 듯이 놀았고, 수업도 제껴보고, 연애도 하고, 축제도 양껏 즐기고(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에 과대표로도 나가는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성적 따위 신경 안 쓰는 척 적당히 공부했다.
좋아하는 영미문학은 얼추 따라갔지만, 영어 통사론이나 음운론 같은 수업은 전공과목임에도 교양과목처럼 대했던 것 같다. ( feat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 같은 너 ~) 사랑에 솔직했기에 좋아하면 좋아한다 먼저 고백하는 연애가 주 였다. 그러니까 고백을 받으면 왠지 그 사람이 시시해져서 거절했다. 먼저 고백하는 짜릿함이 더 좋았달까. (웃기고 앉아있었네 증말.) 그런 연애가 오래갔으며 나는 그런 내가 이상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학원강사였다. 2학년 여름방학쯤,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약간의 의무감이 들었는데, 친구들에게 전해 듣는 시급과 하는 일들이 탐탁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고민을 하던 중, 눈에 들어온 '학원강사 구함' 광고. (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본 건지, 일자리 지역신문에서 본 건지 기억이 아득하다. 아무튼 둘 중 하나.)
당시 4학년 과선배가 학원강사 알바를 한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뒤라 호기심이 일었다. 과외 알바를 하는 선배들은 많았지만, 학원은 드물었다. 겨우 2학년인데 가능할까? 잠시 머뭇거리다 전화를 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에 지체없이, 추울바알!
쭈뼛쭈뼛 어색하게 들어섰던 학원의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뭐지? 처음인 나보다 더 어색함이 감도는 듯한 선생님들, 시끌벅적 떠들며 복도를 뛰듯이 걸어 다니는 아이들과 꿉꿉한 냄새들. (장마가 훑고 지나간 여름이었다.) 학원장은 면접을 본 뒤, 시강을 하자고 했다. 편한 날짜가 언젠지 물어보았는데, 다시 오고 가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졌던 나는 괜찮으시면 지금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되든 말든 빨리 결정이 나야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으니 이것만 붙들고 기다리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던 터.)
중등영어 시강이었다. 문제집 한권과 15~2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침 수업들어간 영어선생님 덕분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고, 능동태 수동태 문법 수업을 해야지 마음먹고 책을 뒤적거려 진도를 찾고 메모를 했다. 선생님 세 분과 학원장이 들어와 앉으며 시강은 시작되었다. 아주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처음치곤 덤덤히 수업을 했다. 될 거란 기대치도 낮고, 중요도도 크게 차지하지 않았던 일이라, 절박함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무언가를 온전히 스스로 도전해봄에 의미가 있었다. 3학년쯤이 적당하겠단 생각이 들었음에도 굳이 면접을 보았던 이유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어설프고도 어처구니없게 당당했던 시강이 끝나고 나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기분이 날뛰었다. 재미! 가르치며 얻는 쾌감, 떨렸던 첫마디의 말과 대비되는 개운한 끝마디의 말,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에 귀 기울이며 집중할 때의 자존감. 자기효용성.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었다.
끝이 나고서야 떨림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었다. 간절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처음에 가졌던 (되면 되고 아님 말고의) 쿨함은 사라졌다.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학원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주말이 지난 후 연락이 왔고,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중2 영어수업, 하루 세타임 정도가 평균이고 수업이 비는 시간과 수업 준비 및 회의시간 등을 포함하면, 주 5일에 하루 근무시간은 4시간 정도 되었다. 급여는 80. 이천년도 초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음을 차치하더라도, 다른 아르바이트비와 비교해도 급여는 높고 근무시간은 짧았다. 물론 무엇보다 보람되었다.
친구들은 시샘어린 눈짓으로 부럽다고 했지만, 같이 하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보다 영어실력이 월등한 친구들도 으레 대학 초년생들이 하는 써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같이 하자는 나의 꼬드김에 친구는 머뭇거리다가도 난색을 표했는데, 하고도 싶지만 부담스러움이 더 크다는 이유였다. 기껏 방학 동안 알바를 하면서 면접, 시강을 하며 평가받는 부담을 지기는 싫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고, 동시에 그런 부담을 즐겼던 내가 새삼 신통하기도 했다.
몸을 쓰는 것보다 머리를 쓰며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나에겐 적절했다. 결코 더 영특해서도, 공부를 좋아해서도, 잘해서는 더욱이 아니다. 다만 체력이 약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체육시간이 가장 버거웠고, 아침 조회시간에 땡볕에 서 있는 것이 힘들었다. 중3 때 입시 체력장을 하며 쓰러진 뒤부터는 스스로의 체력을 감지하고 더 조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만히 오랜 시간 앉아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정적인 활동은 심신을 편안하게 했다. ( 아! 그 정적인 활동에 가만히 앉아서 수다를 떠는 커피숍 놀이와, 가만히 앉아서 술을 마시는 알코올 놀이도 포함됨.) 누가 운동장 한 바퀴 뛸래? 아니면 문제집 한 장 풀래? 하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최적화된 알바를 찾은 셈이었다. 수업 준비는 재미있었고,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교감하며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다. 더 쉽게 가르쳐 줄 방법을 모색하며 왕왕 웃음이 났고, 아이들의 고개 끄덕임에 신이 났다. 보람이 있으니 고됨이 달았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 아이들과 약속을 하고 대학교 구경도 시켜주었고, 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피자도, 시시콜콜한 농담도 함께 했다. 나도 그땐 어렸으니까, 아마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그 아이들의 이름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순수하게 정성을 다했던 삶의 한 순간이었음이 자각된다.
다시 곱게 접어두고 어느 고요한 밤 살며시 펼쳐보고 싶은, 삶의 페이지들.
인텍스를 붙인다면 연두색을 붙여야지. 어설프고 풋풋했지만 선의로 가득했던, 연둣빛 잎사귀 같았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얼마간 하다가 입사를 하며 그만두게 되었다. 영어강사라는 직업을 달갑지 않아 했던 부모님의 성화에 들어간 회사였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자존감을 바닥 치게 했고, 지루했으며 성과에 상관없이 보람이 없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는 상사들을 볼 때면 "나이는 어디로 처먹었냐"라고 말하고 싶음이 늘 들끓었다. "내가 @@@씨 면접 때 얼굴로 뽑았잖아!"라고 지껄이는 상무이사의 말(인지 막걸린지)에 한마디 대꾸도 못하는 나 자신에 자괴감이 들었다. 어쨌든 오래 버티지 못했고, 사표를 내고 돌아온 나를 부모님은 이해해주었다.
그런 회사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유대감을 이루었다. 뭐든 이면이 존재하니까. 그중 한 명은 우리 남편임을. 하하 그러니 좋았다고도 나빴다고도 할 수 없는 회사생활은, 나빴던 것만 빼면 다 좋았지 뭐! 그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경험하며 달고 짠맛을 맛보았고, 서투른 주제에 크게 애쓰지도 않았던 나의 부적응도 사유가 되니까. 그렇다고 해도 성희롱 섞인 농담은 그냥 넘기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 존재했다. (그 시절 20대의 신입사원은 십 년을 훨씬 넘기고서야 문득 화가 치밀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어학원에서 일하며, 정체성을 더듬더듬 되찾아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여의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리고, 다시 일을 하고 싶어서 방안을 모색하다 공부방을 운영하였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면서 곱절로 바쁘고 고단했지만, 그럴수록 열망이 깊어졌다. 비슷한 마음의 엄마 사람을 만나고 연대감을 형성하며 한 아이에 대해 몰입하여 상담을 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위로와 힘이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작은 신뢰감이 처음 만들어지고 아이를 가르치게 되며 차곡차곡 크고작은 마음들이 쌓여갈 때의 기쁨.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공부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교육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썼고, 마음이 닫힌 아이를 만나면 도자기를 대하듯 귀하고 조심스레 매만졌다.
공부를 잘하고 못함은 작은 범위이고, 백점이냐 오십점이느냐는 작은 차이.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했다. 계속 유지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숨을 것이냐, 도전할 것이냐. 실제로 수업 중, 학습이 느린 아이들 중 매우 창의적인 대답을 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확장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격한 칭찬을 해주었던 순간! 아이들의 생기 가득한 빙그레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표정을 보고 나도 에너지를 얻었음을. 정성스럽게 마음을 쏟으면 더 큰 마음을 받는다. 혹여 받지 못해도 노프라브럼! 그것은 느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가르치고 배우는 우리는 동반자이기에 균형을 가져야 한다.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흐르고 있는 우리 사이의 믿음이 아닐까.
나를 나답게 했던 마음이 강을 이루는 지금에 감사한다.
믿음보다 더 훌륭한 사랑의 증거는 없다. 실패보다 더 큰 성공은 없듯.
우리 안에는 세 가지의 대립되는 힘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자존감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고, 두 번째는 자아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 세 번째는 신체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다. 자존감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자존감이 취약하고 불안정하면 그만큼 자아와 신체가 내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나 자신이 되기를 택할 때 진정한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