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기쁨

배려에도 연기가 필요했다.

by 예담



추석에 만난 시누이가 들뜬 목소리로 생기 있게 남편에게 알약 한알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먹으면 피곤한 날은 정말 다르긴 하더라. 오빠네도 사서 먹어봐!" 약국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비타민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실은 우리 집에도 있는 비타민이었다. (효능이야 오래전에 알고 있었고.)

남편은 웃음을 띄우며 나를 슬쩍 쳐다본다. "여보, 그거 우리 먹는 거 아니야? 그거 알고 있..."

"아니야. 그거" 본능적으로 부리나케 남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오버인가, 육바였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익숙하고, 그런 마음이 편하다. 배려에도 약간의 연기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내가 좋아서 하는 배려였으니 말이다.



한 해의 시작이었던 설에 보고, 어느새 끝자락인 추석이 되어서 만난 터였다.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코로나로 더 간격이 벌어진 만남이었다. 가족, 부산 특유의 무뚝뚝함이 뚝뚝 떨어져도 가족은 가족인지라 그 속에 살가움이 묻어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은 마음, 내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사소한 말속에 작은 마음들이 송송 맺혀있다.


"그거 알아! 이미 먹고 있었어."라고 했어도 무어 나쁠 건 없지만, 상대는 더러 무안할 수 있고 받아친 말은 괜히 머쓱하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기면 분위기는 금방 전환되겠지만, 개운하지 못하다.

어쩌면 예민한 감정의 소유자만 느끼는 삶의 결일 수도 있겠다.


이미 널리 유명한 비타민이 뭐 대수라고 그리 눈을 반짝이며 말을 했느냐 생각해보면, 애정일 테다. 이미 집에 엄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비타민을 왜 처음 보는 것인 양 받아먹으며, 사서 챙겨 먹어야겠다 너스레를 떨었냐 하면, 그것도 애정이었다.


건너뛴 날들이 많았는데, 그저 이 기회에 한번 더 긴장을 가지고 챙겨 먹게 되는 거다. 그러니 알아도 몰랐다. 먼저 권할 생각을 하지 못했음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고맙고 아늑한 마음이 든다.

'다음번엔 내가 먼저 마음을 주리라', 다짐하지만 난 느리니까 어쩐지 또 한발 먼저 받을 것 같다.



써브가 쉽지 않으면 토스라도 잘하지 뭐!




한 사람이 진심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할 때는 기꺼이 받고싶다. 무겁다고 튕겨내지 말고, 가볍다고 한 손으로 슬쩍 받지 말고, 두 손으로 온 마음으로 기꺼이.


사람이라서 공감과 감흥을 하기에 하나의 마음도 결이 많음을 안다. 그래서 더러 마음을 보탠다.

정확한 계산 대신 헐렁한 셈을 한다. 틀린 셈 사이로 모락모락 따스함이 피어오르길 바라며.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 보단 경청!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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