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에도 연기가 필요했다.
오버인가, 육바였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익숙하고, 그런 마음이 편하다. 배려에도 약간의 연기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내가 좋아서 하는 배려였으니 말이다.
한 해의 시작이었던 설에 보고, 어느새 끝자락인 추석이 되어서 만난 터였다.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코로나로 더 간격이 벌어진 만남이었다. 가족, 부산 특유의 무뚝뚝함이 뚝뚝 떨어져도 가족은 가족인지라 그 속에 살가움이 묻어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은 마음, 내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사소한 말속에 작은 마음들이 송송 맺혀있다.
"그거 알아! 이미 먹고 있었어."라고 했어도 무어 나쁠 건 없지만, 상대는 더러 무안할 수 있고 받아친 말은 괜히 머쓱하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기면 분위기는 금방 전환되겠지만, 개운하지 못하다.
어쩌면 예민한 감정의 소유자만 느끼는 삶의 결일 수도 있겠다.
이미 널리 유명한 비타민이 뭐 대수라고 그리 눈을 반짝이며 말을 했느냐 생각해보면, 애정일 테다. 이미 집에 엄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비타민을 왜 처음 보는 것인 양 받아먹으며, 사서 챙겨 먹어야겠다 너스레를 떨었냐 하면, 그것도 애정이었다.
건너뛴 날들이 많았는데, 그저 이 기회에 한번 더 긴장을 가지고 챙겨 먹게 되는 거다. 그러니 알아도 몰랐다. 먼저 권할 생각을 하지 못했음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다. 고맙고 아늑한 마음이 든다.
'다음번엔 내가 먼저 마음을 주리라', 다짐하지만 난 느리니까 어쩐지 또 한발 먼저 받을 것 같다.
써브가 쉽지 않으면 토스라도 잘하지 뭐!
사람이라서 공감과 감흥을 하기에 하나의 마음도 결이 많음을 안다. 그래서 더러 마음을 보탠다.
정확한 계산 대신 헐렁한 셈을 한다. 틀린 셈 사이로 모락모락 따스함이 피어오르길 바라며.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 보단 경청!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