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동이 틀 무렵.

by 예담

[워킹데드]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아등바등되지 않지."

천지가 좀비와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느리고 정확한 말투로 전하니 더 임팩트 있었달까. 아이러니함에 웃음이 터졌었다. 그러게, 저만큼의 곤경 속에서나 아등바등될 수 있는 거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아등바등되었을까. 겨우 몇 달, 길어야 몇 년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었는데 말이다.


첫 단추를 잘 꿰야한다는 중압감과 함께, 처음 맞는 자유를 들이마시며 설렜다.

시작이 중요하니까 모든 걸 갈아서 짜내어야 한다는 온 세상의 말들과 부담, 그리고 믿음과 허탈감 같은 감정들은 가라앉고 다시 떠올랐다.


그저 또 다른 길의 갈래 앞에 서 있었던 시절이었다. 삶의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한 열아홉, 스무 살.

누구 하나 유머러스하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모두 하나 같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마치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 막차인 듯 중요함을 강조하고 밑줄 쳤다. 어김없이 형광펜을 들고 멍하게 숙지했지만 강하게 밑줄 그은 것 중 몇 개나 내 삶을 좌우했을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종이 다시금 가쁘게 울려 댄다. 아등바등은 어쩌면 이다지도 끝나지 않을까. 아득했던 시간이 꿈처럼 흐르고 서른이 다가오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미 늦었다고 지레 겁냈을까.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걸 해볼까? 아니야 지금은 정말 늦은 거야. 마흔이 다가오면 또 그러지. 아, 서른 즈음도 멋진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거였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깨달음과 아등바등을 반복하며. 지난한 과정 속에서 행복을 찾고 나누면 내가 가고 싶었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도 꽃길이었다. 내내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 옆에 있어주었던 사람들의 지지 같은 자잘한 행복들을 더 주워 담지 못했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결과를 위해 과정이 존재한다지만, 과정 속에 우리는 분명히 성장하기에 결과가 덜 두텁더라도 춥지 않았으면.

한 겹씩 천천히 입어요. 두터운 외투 하나보다 얇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는 게 더 따뜻한 법이니까, 과정 속에 스며들었던 온기를 오래 기억하기를!




수능을 앞둔 이에게, 수능을 치른 이에게, 혹은 수능을 망쳐버린 이에게, 최선을 다했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괜찮아요. 수많은 길이 분명히 돌고 돌아와요. 모퉁이를 돌면 멋진 풍경이 우릴 맞이하니까, 잘 살피며 걸으면 돼요. 길을 잘못 든다 해도 결국은 가고 싶은 곳으로 이어지니 마음과 정성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당도해요. 결코 지금이 전부가 아니에요.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겨울 다음엔, 봄.




[배움의 발견]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행동이다.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 안에 힘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살겠다는 확신.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삶을 이루는 모든 결정들, 사람들이 함께 또는 홀로 내리는 결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하나하나의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이 한데 뭉쳐 퇴적층을 만들고 바위가 되듯이.


[스토너]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주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냈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時)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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