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의 기준에 대하여.
"어린이날 선물로 뭐 받았어?"
"난 땡땡 주식받았는데, 넌 무슨 주식 가지고 있어?"
아이들의 이런 대화도 머지않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들리고 있을 대화일지도 모르고.
경제신문에서 "어린이날 선물로 주식 쐈다." 10년 묵혀두면 존 버는 종목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미성년자 계좌 개설 열풍에 관한 기사였는데, 미성년자의 주식 계좌는 60만 개, 주식 보유액은 3조 400억에 육박했다 한다. 아이에게 주식을 사주며 금융교육을 한다는 취지가 코로나 펜데믹 상황과 맞물리면서 붐이 되었다.
존리의 "엄마 주식 사주세요." 책에서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식을 부자로 만드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사교육을 끊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주거나 펀드에 가입해주는 것이 백배 낫다. 아이의 성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 돈이 돈을 버는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부자 DNA를 심어라.]
글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갸웃거렸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유용한 지식을 얻었고, 배우고 실현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전부가 와닿진 않았다. 부자, 행복, 성공의 기준이 반드시 돈에 있진 않다. 돈이 아주 많은 부자들이 행복하다는 논리는 억지다. 다만 여유롭겠지. 많은 걸 누릴 수 있으니 더 즐겁거나,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후는 보장이 되고도 남겠지.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높은 자리를 유지하려 애쓰겠지. 가진 것을 나누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가진 많은 것들은 유지하되 세금은 적게 내며 자식에게 잘 물려줄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열 살 때 받았던 주식이 부풀고 부풀어 십 년 뒤쯤에 나의 자본이 몇백 배가 되었다 치자.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 원리를 알게 된 스무 살은 어떤 열정과 의지를 다질까?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 주식에 더 올인하겠다는 열정? 그렇다면 어느 경제기사의 댓글처럼 정말이지, 소는 누가 키우나? 내가 가만히 있는데 나의 돈이 일을 하는 판타스틱한 날들을 누구나 꿈꾼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박한 하루를 꿈처럼 보내는 이들도 있다. 결핍이 있어야만 생각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이성이 중요한 만큼 감성과 인성에 대한 교육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하다는 배려심, 공감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함께 사는 세상 속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말을 듣고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줄도 알아야 한다. 먹고 사는 것만이 전부인 세상이 아니기에 예술을 보고 들으며 감동할 줄 아는 감성은 삶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비법이 될 것이다. 돈보다 마음을 버는 방법을 먼저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이성적인 우리 남편은 전혀 동감하지 않겠지만. )
적게 가져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대형 평수의 강남 아파트에 살면 다른 곳엔 비가 와도 거기만 햇살이 비치는 게 아니듯 결국 행복은 내가 가진 것으로 얼마큼 조리해서 맛있게 웃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흐리고 비가 오는 날, 축축한 가방과 답답한 마스크를 벗으며 아이들이 들어선 집이 포근하길, 언제나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그런 행복을 꿈꾼다.
아이들에게 부자의 기준이 뭘까?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부잣집 아이들이라 함은 멋진 옷과 단정한 용모로 짐작이 되었다. 그 시절 영에이지 구두나 랜드로바 신발을 신고, 해피아이 옷을 입고, 알록달록 베네통 가방을 메고, 하얀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깨끗한 스타킹을 신고 , 곱게 빗어 땋은 머리를 하고, 학교에 와서 공부마저 잘한다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부모님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짐작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린다. 남자아이들의 경우도 용모가 단정하고, 정갈하게 다린 폴로셔츠를 입고 오거나, 깨끗한 휠라나 엘레쎄 운동화를 신고, 겨울이 되면 아놀드파마 우산 모양이 수놓아진 니트를 입고 와서,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하는 아이들이 그런 류에 속했다. 그 시절의 부모님들은 일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그만큼 챙길 여력이 된다면 여유 있는 부잣집이 틀림없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시선이 좀 더 확장된다. 용모에서부터 아빠의 차, 사는 아파트, 부모의 직업에까지 걸쳐지지만 보통의 그 시절 아이들은 그런 것으로 친구의 사귐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보통이라는 단어가 애매하긴 하나 대부분이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물질적인 부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친구를 골라주는 엄마들이 분명 그 시절에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이 흔들리는 나이의 아이들은 부모가 가진 신념과 판단에 의해 잘못된 가치와 자아가 심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이기에 의문이 든다 해도 모른 척 믿고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발레 하는 여자 친구, 바이올린이나 플룻,첼로를 연주하는 남자 친구들은 하얗고 멀쑥했다. (별로 매력은 없었지만 들고 다니는 큰 악기가 주는 위압감 때문에 한번 더 쳐다보게 되었던.) 나도 바이올린을 잠깐 킨 적이 있지만, 피아노 학원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관둬버릴 만큼 악기 연주에 소질이 없었다.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해서 또래보다 작았던 나는 손도 작고 요령도 없어서, 피아노를 칠 때면 선생님의 모나미 볼펜으로 자꾸만 맞았다. 볼펜으로 틀릴 때마다 손가락을 툭툭치곤 했는데 (아팠다기보다는) 그때의 선생님의 짜증 섞인 표정이 그렇게 싫었다. 울음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피아노 실력은 늘었지만 악기도 음악도 다 싫어졌다. 은박지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뜯어내어 톡 부러뜨린 초콜릿을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며 책 읽는 게 좋았다. 그러다 친구가 부르면 나가서 고무줄 뛰기나 하는 거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낙동강아 잘 있거라~~~" 세상에 이게 고무줄 뛰기 노래였다니!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엄마의 눈에 나는 한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나를 바꾸기 위해 청소년연맹(아람단)에 가입시키고, 임원에 출마하게 하는 등의 여러 활동을 했다. 청소년연맹에서 땅굴견학을 얼마나 자주 갔었는지 모른다. 다녀와서 얼마나 용맹해졌으려나, 부채춤을 추며 활발해졌으려나, 임원을 역임하며 목소리가 커졌으려나, 기질은 쉽게 안 바뀐다. 나는 여전히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책 읽는 게 좋은 걸.
학부모가 되었다. 아이들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으로 친구를 가려 사귀진 않지만 동네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와 평수를 구별할 줄 안단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웃기지도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선 입주민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일이 발생했다. 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임대아파트에서 오는 아이들이 없도록 아파트 지정을 다시 해달라는 의견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이에게 미치는 부모의 존재감이다. 부모가 가지는 생각과 신념, 말과 행동은 오롯이 아이에게 스며든다는 것.
바야흐로 경험이 자산인 세상이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누구보다 풍부한 내면의 가치를 지니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보이지 않아도 아이에게 비친다. 내가 받았던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IMF를 겪었던 우리네 부모님들이 지녔을 애달픔에 빚진 지금의 어른이들의 지친 어깨가 그러할까.
한 학년 동안 현장체험학습을 7일간 쓸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 전)에는 가족여행으로 일주일의 체험학습 기간을 채우는 가정이 많았다. 괌으로, 제주도로, 하와이로 여행을 가면서 아이들은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고 결석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한창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던 시절, 아이들 사이에 개근 거지, 여행 거지라는 말이 돌았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맞닿아 있었던 때였다.)
예전에는 개근을 하는 아이들이 칭찬을 받았다면, 이제는 여행 한번 못 가고 매일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되려 머쓱해진다. 봄이 되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우고, 다녀와서 생기 가득한 얼굴로 즐거움을 펼쳐놓는 친구는 봄꽃만큼 활짝 피었다. 괌으로, 하와이로, 홍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비행기에서 하늘을 날았던 시간과 비례하여 어깨가 으쓱 솟았다. 기념품을 사 오고, 친구들에게 나눠 줄 과자를 가져온 친구에게선 내가 모르는 향이 나는 것만 같다.
여름 방학이 되면 다른 나라로 단기연수를 가는 친구도 있지만 그건 부럽지 않다. 공부하러 가는 거니까.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 달다. 학교를 땡땡이치고도 당당하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불꽃이 팡팡 터진다. 어제 쓰던 마음이 아닌 다른 새로운 마음을 꺼내어 소중히 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사뿐사뿐 가볍게 걷는다.
비교적 모두에게 손쉬워진 여행이지만 그 속에서도 소외된 아이들이 존재했다. 한부모가정, 조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다른 친구들처럼 가족여행이 다가오는 주말처럼 당연한 일이 되기 힘든 아이들의 마음도 한 공간에 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터인데, 행복을 비교당하면 막대그래프로 들여다보는 듯 한눈에 크기가 보였다.
행복은 부자 순이 아니듯 여행 순도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힘들어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여행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마음을 이미 예전에 느꼈을 이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훨씬 이전부터 누군가는 이미 그런 고립 속에 있었을 것이라는 미안함. 조용히 행복을 음미하고 싶다. 기록하되, 사진 한 장으로 과시하지 않으려 한다. 자랑하지 않는 행복은 우아하다.
작년에 전학을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가 쪽지를 받아온 날이 있었다. "너는 누구랑 친하고 싶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이름을 적어줘." 쪽지를 받은 딸아이는 바로 답장을 썼다. 이름을 알게 된 여자 친구들의 이름은 거의 다 쓴 것 같았다. 쪽지를 주었던 친구는 그렇게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며 적응을 도왔다.
또 다른 어느 날, 학교에서 뒷산으로 한 시간 남짓 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이는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산에 올라갔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내려와서 아이들은 학교로 들어가고, 선생님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단다. 두 명의 아이가 낙오해서 찾으러 가셨다고 한다. 아이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뒷산은 사찰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산에서 낙오되면 절대 안 되는 건데,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한 친구가 다리를 절뚝였다고 한다. 걸음이 느려지는 친구를 위해 다른 친구가 부축해주며 걸음을 맞춰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맞다. 그 아이가 쪽지를 주었던 그 친구다.
함께 의지하며 천천히 걷던 두 아이는 간격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나 보다. 내리막길이고 사찰로 올라오는 차들도 살펴야 했을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세어볼 여유가 없어 대략 눈짐작했을 것이다. 교문에 당도해서야 수가 모자라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선생님은 산으로 다시 올라가셨다고 한다. 다행히 두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느리지만 담담하게 잘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혼자였다면 아마도 두렵고 울고 싶었을 한 아이는 마음을 나눠준 친구를 만나 든든했겠지. 고마운 마음은 굳이 전하지 않아도 맞닿은 손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전학 온 친구의 마음을 매만지고, 뒤쳐지는 친구의 짐을 나눠지고 걸음을 맞춰주는 그 아이는 마음부자다. 마음이 넉넉해서 나눠주고 덜어내도 이내 채워지고야 마는 마음의 부자다. 조그만 온기를 부지런히 전하는 아이의 자산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런 부자가 된다면 조금 더 충만한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부지런히 마음을 벌고 아낌없이 마음을 쓰자는 말을 하자 아이들이 마주 보며 키득거린다. 의아해하는 아들에게 냉동실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경비아저씨께 인사하며 드리라고 했더니, 그제야 빙그레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