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이 좋은 이유

아이가 하는 말

by 예담


저마다의 쉼에도 취향이 있다. 자연을 벗삼아 캠핑을 즐기는 이들, 유유자적 나를 위한 시공간을 누리고 싶어 호텔이나 휴양지를 찾는 이들, 그저 편한 집이 최고인 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은 부모의 취향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자라면서 자신만의 기호가 생기는 아이는 집을 떠나 온 어느 곳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왜 좋은지. 또는 왜 불편한지에 대해서.


아이의 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의 호불호를 짚어봐야지. 캠핑 사진이나 캠핑에 관한 프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동경하기도 하고 도전을 다짐해보기도 한다. 실체 없는 타인의 캠핑에 대해선 몽글몽글 마음을 하늘에 띄우고, 구체화가 되어가는 (캠핑 중인) 형태가 되어버리면 몽글몽글한 마음이 내려와서 손에 잡히며 시시해졌다. 좋은 건 알겠는데 ( 너낌은 알지만 ...) 불편함이 좋은 느낌을 집어삼키려 하면 집에 가고 싶어 진다. 가령 화장실이 불편하거나 편하게 샤워를 할 수 없는 경우가 그러하다. 벌레에 대한 두려움도 뺄 수없고. (여행을 가서 지네에 물린 적이 있다. 브런치 글에 써 놓았음.) 분명 멀리서 볼 땐 마음이 편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 접지 않은 불편함에 대한 동경이 있다. 언젠가는 누려야지. 자연스럽게 불편함과 동화되며 자연인이 되어봐야지. 캠핑은 그렇게 마음을 살살 간질이곤 한다.


호텔은 편하다. 이왕이면 5성급 호텔에서 느리고 멍하게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달까. (돈지랄과 함께 충전되는 불편한 너낌은 티도 안 나게 오는 것이 함정.) 여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을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압박감이 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이 좋다. 집에 있거나, 캠핑을 가도, 쉼을 느끼기 위해선 무언가를 분주히 정비해야 하는 법인데 호텔은 온전히 멍 할 수 있어서 시간 사치를 마음껏 부린다. 황홀한 창밖의 뷰를 바라보는 것도 천천히, 조식을 먹으러 가도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근처 산책로를 거닐며 오늘의 행복을 하나씩 주워 담으니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한적한 수영장도 나만을 위한 곳 같아 행복을 과시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누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좋은 것이다. 왠지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과 공간 같아서 위로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편한 구석을 하나 꼽자면, 카펫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아이의 엄마로서 가게 되는 호텔은 그러한 불편함이 앞섰다. 특히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지지레를 치는 아이를 보면 기겁하며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호텔에서 준비해주는 아기침대가 있지만, 그건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함께 행복하자고 오는 여행인데 나 편하자고 좁은 아기침대에 넣어두자니 까끌까끌한 마음이 보풀처럼 일었다. 여행의 자유로움을 나도 느끼고 싶듯이 가능하면 아이도 통제를 줄여주고 싶었다. 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는 눈감아주자 다짐하건만 쉽지 않은 카펫의 매직. 어디에서 읽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신발을 신고 방으로 들어가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아 침대 밑의 구두를 보면 경악을 하게 되지만, 서양인들은 찌게 하나를 중간에 두고 여럿이서 숟가락을 넣고 빼며 함께 먹는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노"를 외치고 싶은 불편함이다.



딸아이는 유독 호텔을 좋아한다. 호텔리어가 되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 다녀온 시그니엘 호텔에서는 총지배인의 웰컴 쪽지를 읽으며 네이버에 이름을 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배현미 총지배인을 마주치는 일이 일어났다. 네이버에서 찾아보고 얼굴을 익혀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날 레스토랑에 어느 높으신 분이 오셨던건지, 직원들과 총지배인이 인사를 하러 왔던 거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예의에 어긋남을 아는듯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 조심스러워하는 아이가 예뻤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도 꽤나 구체적인데, 가장 좋은 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모든 여행은 언제나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법이니, 여행의 시작이 마음을 간질었으리라 짐작했다. 하얗게 정돈된 침대와 욕조를 보면 두근거리고 커튼 뒤로 촤라락 펼쳐진 뷰를 보면 기분이 하늘을 난다고 한다. 그러니 너는 천생 여자로구나. 푸하하. 아들은 아무래도 별 감흥이 없는 것 같다. 물어보면 대답은 한다. 좋다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근데 빨리 수영하러 가자고.


호텔이 좋은 이유는 함께 함이었다. 집에 있어도 함께이지만 각자의 할 일이 있고, 캠핑을 가더라도 엄마 아빠는 해야 할 일이 있을 터인데. 호텔에 들어서면 음악과 시간이 느린 템포로 흐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가 해야 할 일도, 아빠가 해야 할 급한 일도 없었다. 그저 함께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웃고, 수영이든 산책이든 뭐든 함께할 수 있었다. 아이는 그것이 좋다 한다.



결국은 마주 봄이 좋은 것. 엄마도 아빠도 바쁘지 않고 함께 여유를 누릴 수 있음이 아이에게 최고의 마음을 안겨주었다. 아이의 제안에 "잠깐만"이라는 말 없이 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일상에선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충만하게!" 다짐하고 아이와 누리는 시간 속에도 지체되고 있는 집안일들이 보이고 아이가 해야 할 오늘의 학습량에 대해 계산하고 있는 마음이 또아리를 틀고 고개를 디민다.

여행이란 규칙 없는 무용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래서 마음에 짐을 내려놓은 채 가벼워지고, 지켜야 했던 일상의 규칙들을 접어두기에 짜릿하다.


모든 걸 접어두고 물속에서 몰입할 수 있는 수영은 아이에겐 절대 행복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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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은 반드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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