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과 시림이 공존하는 3월의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마음을 감쌌던 어느날.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던, 아이에게 스미는 3월의 마음에 대해!
1. 등교 개학
등교 개학을 하였습니다. 작년 한 해는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해왔었고, 올해부터 1, 2학년은 매일 등교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2학년인 둘째는 매일 학교를 가고 4학년인 첫째는 일주일에 세 번 학교를 갑니다. 두 번은 온라인 수업을 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옆에서는 큰 아이가 온라인 수업 중이고, 둘째 아이는 학교를 갔지요. 혼자만 학교를 가야 함이 억울한지 투덜거리면서도 교문 앞에 이르자 재빠르게 뛰어서 발열체크를 하는 입구로 달려갑니다. 다정한 성격인 아들은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것도 언제나 잊지 않습니다. 아이가 투덜거렸던 이유는 학교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투덜거리며 갔던 날도 언제나 다녀오면 가방을 놓기도 전에 학교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내느라 신이 났던 모습이었으니까요.
학교는 힘들 때도 있지만 재미있고, 친구들과 가까이 접촉하여 노는 것은 제한되지만 그래도 괜찮나 봐요. 어쩌면 1학년 입학 때부터 시작된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로 인하여 친구들과 속닥거리며 긴 점심시간 내내 숨차게 뛰어노는 자유와 즐거움을 접해보지 않아서 그건 상상 속의 놀이가 되어버렸을까요? 작년에는 단축수업을 하였으나 올해부터는 시간표가 변경되었습니다. 수업시간은 10분이 늘어나서 40분 수업이 되었고, 쉬는 시간은 5분이 늘어나서 10분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도 50분으로 길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죠. 그렇다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작년에 비해 한 시간 정도 더 길어질 텐데 마스크를 오랜 시간 쓰고 힘들진 않을까? 점심시간의 자유는 좋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느라 마스크나 거리두기 등 위생수칙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선생님도 식사를 하셔야 하니 내내 통제는 힘들 것이고, 긴 점심시간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 것이냐? 뛰어놀아야 아이들인데 말이지.
걱정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뻥 하고 시원하게 터져버렸습니다. 처음으로 긴 시간 학교에 머물렀던 아이가 하교 후 생기 가득한 얼굴로 하는 말이 엄마의 걱정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오늘 재미있었어!"
"그래? 기특하다. 정말 형아가 되어버렸네. 오늘 학교에 제일 오래 있었던 날인데 힘든 건 없었어?"
"점심시간이 기니까 좋아. 그래서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았어. 진짜 오늘 늦게 마치는 날인 줄도 몰랐어"
아이는 길어진 점심시간이 좋았나 봅니다. 수업시간이 40분으로 늘어나도 문제없었죠. 점심시간에는 자유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운동장에 가서 놀고 오고 싶은 친구는 나가기도 하고, 교실에서 친구와 보드게임 등의 하고 싶은 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머뭇거렸을 아이는 운동장에 나가서 놀기도 해보았고, 교실에서 보드게임도 한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여러 위생수칙들로 인한 조심성이 발달해서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고, 어울려 놀 때도 과격하게 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과격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무의식 중에 나타나기도 하는 법인데 늘 긴장하고 위축되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교문 앞으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 어쩐지 안아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2. 마스크
아침에 둘째의 투덜거림은 마스크 때문이었지요. 학교는 좋지만 마스크 쓰기는 여전히 답답하니까요. 누나와 함께 학교를 갈 때는 당연한 듯 느꼈었는데, 누나는 집에서 마스크 없이 따뜻한 물을 (혹은 주스를) 홀짝거리며 수업을 하고, 저는 마스크를 쓴 채 반나절을 보내야 함이 살짝 억울했나 봐요. 그럴 만도 하죠. 마스크를 내리고 잠깐이라도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행위는 아이들에겐 엄두도 못 낼 만큼 위험한 일로 느껴지는지 절대 내리거나 벗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여벌 마스크를 챙겨줍니다.
코로나 이후로 학교 화장실에서 양치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마스크를 쓰면 냄새가 나고 불편함이 당연한데, 왜 그 부분에 대한 개선점은 없을까요? 선생님들은 양치를 하시는데요. 아이들도 줄을 맞추어 거리를 두며 한 번에 2~3명씩 들어가서 양치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힘들겠지요. 상상해보니 줄지어 기다리는 시간이 안쓰러워집니다. 아침에도 줄지어 서서 발열체크를 하고 들어가야 하니까요. 어렵겠네요. 선생님의 품이 많이 필요할 텐데 선생님은 다른 할 일도 많으실 테니까요. 이해가 되면 어쩐지 힘이 빠집니다.
작년에 1학년이었던 아들은 '마스크에 김치가 묻어서 급식을 하고 나서 냄새가 난다며' 여벌 마스크로 바꾸어 쓰고 오곤 했습니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 학교에 머무는 누나는 깨끗이 사용하지만 어린 남동생은 인내심과 조심성이 아무래도 덜했지요. ( 그만큼의 애씀도 기특하고 짠했고요.) 올해 2학년이 된 아들은 나름의 성장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입을 깨끗이 닦고 물로 입을 씻어내고 마스크를 씁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규칙은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제 학교를 다녀와하는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엄마! 내가 오늘 너무 갑갑해서 잠깐 선생님 몰래 마스크를 내려서 크게 숨 쉬고 다시 올렸어."
무척 큰 모험이나 한 듯이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아이를 보며 잠시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했어! 숨쉬기 힘들 땐 잠깐씩 내려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써도 괜찮아. 단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해야 해."
"물론이지! 마스크 쓰고 있을 때도 거리두기는 당연히 하는데"
3. 담임선생님
저학년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고학년도 마찬가지겠지요. 다만 크면서 스스로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조금씩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학교를 입학하고 몇 주간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엄마들 사이에 큰 이야깃거리는 어느 반 담임선생님이 좋으냐,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좋은 인상을 남겨 표를 많이 얻은 선생님의 반이 된 아이들과 학부모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선생님의 반이 된 아이들과 학부모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긴장을 합니다. 이사 오기 전 첫째 아이의 선생님은 젊어서인지 의욕이 많으셨고 아이들을 세세히 잘 살폈습니다. 음, 신도시여서 아무래도 첫 부임받은 선생님이 많으셨던 걸까요? 일단일장이 있겠지만, 아무튼 부모입장에선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래 근무하셨던 노련한 선생님들은 어떤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빠를 테고요. (아이들의 세상에선 돌발상황이 많습니다. 멘붕을 일으키는 학부모(아이 아님, 어른 아이!) 들도 간혹 있을테고요. 그럴 때면 강하고 부드러운 조율이 필요합니다. 노련한 선생님들이 빛을 발할 때지요.
의욕적이고 세심한 젊은 선생님들은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아이들에게 쏟아부으시겠지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서 닿을 테니, 아이들은 선생님의 보드라운 사랑 덕분에 낯설었던 학교가 친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함께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도 듭니다. 일단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고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어쩌면 이 글을 보게 될 어느 선생님께 상처를 드리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모든 아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존재감을 확인하며 인정해주는 선생님.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있듯이, 잘 웃는 아이, 침착한 아이, 배려심 많은 아이, 기다려주는 아이, 말이 많아 분위기를 이끄는 아이, 예쁜 말을 하는 아이, 글을 잘 쓰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부끄러움이 많아서 먼저 말 걸어줘야 할 아이, 긴장이 많아 굳어있어서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고 싶은 아이, 등등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며 수많은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아이들.
아이의 이름과 함께 그 아이만의 불빛을 지켜주는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4. 부모의 마음
새 학기가 되면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 할머니도 아이에게 기대를 부풀립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심정이 되어 아이를 응원하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의 기색을 살피며, 무수한 질문을 머릿속에 굴려봅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기대가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발표도 안 했는데. 아아아 무슨 대답을 하라는 거지?"
소리내어 말하고 싶은 건 "오늘 수학이 어려웠고, 선생님은 전혀 다정하지 않았으며, 친구가 새치기를 해서 다퉜어요." "밥은 그저 그랬고, 발표는 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손을 들 타이밍을 놓쳐버렸어요." "재미있지도 않고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은, "수학은 미리 배워서 쉬웠고 발표도 잘했어요." "우리 선생님은 좋고 친구도 사귀었어요." "급식은 다 먹었고 학교는 재미있어요!" 일텐데...
나는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서 자꾸만 "그냥" "몰라" 라고만 대답했어요.
나는 그런 피곤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질문이 담겨 있었던 건지 아이는 묻지도 않은 답을 종알종알 잘도 해준다. 그 말에 다시 궁금증이 일어 댓글을 달고 싶고 대댓글을 덧붙이고 싶건만 꿀꺽 말을 삼켰다. 아아아 정말이지 수더분한 엄마가 되고 싶다.
오늘 엄마가 보지 못한 너의 자리에서 겪은 어려움과 실패들로 위축되지 않고 발판을 삼아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지식과 몸의 성장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힘이 아닐까 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반갑고 흐뭇하고 자랑스럽고 든든하고 뿌듯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면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일어서서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 안된다. 아이들에게, 엄마에게도 다가올 시간을 줘야 한다. 엄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저렇게 걸어오는 행동만으로도 엄마에게 힘을 준다.
한스 안데르센 브렌데 킬데 < 가을,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수학 문제 하나를 놓고 그이야말로 멘붕 집단이 됐다. 어떤 아이는 전투적 전략가의 눈빛을 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아는 척하는 표정을 짓고 있고,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의 비리를 선생님에게 고해바치고 있다. 자라면서 아이들은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엄마가 줄 수 있는 것은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그 어떤 문제에도 당당할 수 있는 마음이다.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암산>
사랑의 크기가 배움의 크기다. 가르치는 건 사랑을 보여주는 일이고, 배우는 건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랑해야 가르칠 수 있고, 존경해야 그 사랑을 내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아름답게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