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에 떨어졌어.

바람 부는 날

by 예담


"엄마, 내일 반장선거에 나갈 거야. 선생님이 출마하고 싶은 사람은 공약을 써오라고 하셨거든. 지금 쓸건데 어떤 공약이 좋을까?"


"응??? (갑자기?)"


"엄마는 내가 될 것 같아? 아아 떨린다. "


"반장이 되고 싶었어?"


"응. 난 반장을 하고 싶어! 공약은 생각해봤는데 일단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할 거고, 그다음엔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공약을 만들 거야. 점심시간에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우리가 매일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소통할 수 있는) 빨리 친구를 사귀는 다른 방법들을 찾는 거야. 그러니까 친해지기 위해서야! "


"우와, 말도 잘하네. 언제 그런 건 생각했데? "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단해! 너무 멋져서 감동받았어!"


"아니 엄마 내일 한다니까! 뽑히라고 해야지! "


"엄마는 안 뽑혀도 좋은데. 잘해도 좋고 못해도 괜찮아. 0표여도 귀여워 ㅎㅎㅎ"


"뭐라는 거야 엄마 좀 좀 좀!!! "


아이는 빙구같이 웃는 엄마를 흘겨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마음과 의지, 그런 과정들에 감동받았던 것은 진심이었고 0표여도 귀엽다는 말은 반쯤 진심이었달까. 아이가 받을 기쁨에 기댄 상처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저 혹여 실패하더라도 귀엽다는 가벼운 여유를 주고 싶었다.




섬세하고 차분한 성격을 지닌 아이는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손을 들며 발표를 하는 발표왕이기도 하다. 매년 학교 상담기간마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에 생경함을 느꼈다. 엄마의 눈과 선생님의 눈으로 보는 아이는 다른 각도로 빛났다. 수업시간에 먼저 의견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대답도 잘하거니와 질문도 잘한다고 했다.


나는 왜 아이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내가 가진 기질 때문이다. 나의 유년이 그러지 못했으므로 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미리 예단해버렸다. 수업시간에 나서서 질문하고 발표를 하려 하면, 이미 심장은 쿵쾅쿵쾅 발표 소리보다 더 커져있었다. 나만 들리는 심장소리를 친구들이 들을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렇게 발표를 끝내고 나면 뿌듯함이 들었지만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커서 몸에 힘이 쭉 빠졌었다. 문제를 푸는 건 자신 있었지만 발표는 자신이 없었다. 조용히 앉아서 설명을 듣고 문제를 푸는 수학 시간이 제일 좋았다. 아니, 좋았는지, 익숙했던 건지, 아리송하다. 이제 보니 완전한 주입식 교육의 노예였구나.


아이는 온라인 수업시간에 적극적이다. 의견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수업에 빠져든다.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질문하고, 발표에 있어서는 쉼 없이 손을 들고, 수업을 자유롭게 항해했다. 넘실대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즐기게 되었고,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움츠려들지 않았다. 어깨를 쭉 피고 두 손과 두발, 온 마음으로 균형을 잘 잡았다.



일방적이지 않고 소통하는 수업이 한몫을 했다. 작년의 온라인 수업은 한 시간 남짓 선생님과 수업을 끝낸 뒤 나머지는 e학습터에 들어가서 수업 영상을 보며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루해했고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졌다.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과 소통하는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쉬는 시간과 수업시간이 학교와 똑같이 진행되고, 매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화자이고 아이들은 청자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화자가 되고 청자가 되기도 하는 수업이다.


서로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 나누며 그리는 미술수업도 진행되고, 함께 리코더를 연주하고 합창하는 음악시간도 즐거워 보였다. 체육시간은 뭘 할지,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우였다. 아이들은 다른 수업시간에는 조용하다가도 체육선생님의 줌 수업에서는 갑자기 활기차 졌다. 마치 학교 운동장에 모인 것처럼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생기 있는 표정으로 들떠있는 아이들의 음성이 봄햇살 같다. 풉! 수학 시간엔 쥐 죽은 듯이 침묵하더니,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체육 줌 수업은 주로 게임을 했다. 몸으로 말하기 게임을 하며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었다. 올림픽 경기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정답이 없는 학습을 하며 아이들은 긴장을 풀었다. 그것도 배움이지. 아마도 그런 시간이 고팠을 테다.





야심 차게 나갔던 반장선거에 떨어졌다.


고민 끝에 완성된 공약을 몇 번이고 연습을 해갔는데 떨어졌단다. 반장이 된 친구는 usb에 공약을 담아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우와아" 하며 대부분 그 친구를 뽑았다고 한다. 덜덜덜. 뭔가 미안해졌다. '엄마는 그런 생각도 못했네. 세상에! 반장선거 트렌드가 그러했다니.'

그건 나의 몫이 아니라 아이의 몫이니까 관여하지 않았지만, 경쟁이 안 되는 무기를 들고 겨뤘을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잘했어. 반장은 되지 못했지만 나가서 공약 발표를 잘했잖아. 친구들이 너를 그렇게 기억할 거야. 용기 있고 야무진 친구로 말이야. 그러니까 떨어져도 얻은 게 있지! "


"아 그럴까? 그렇기도 하겠다. 떨어져서 조금 창피하기도 했거든. 근데 다음 시간 되니까 괜찮아졌어. 재밌었어! 5학년 되면 또 나가야지 ㅋㅋㅋ "


키득거리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그래. 웃으면 되었다. 문득문득 아쉬운 마음도 들겠지만 그렇게 맞아본 비는 배움이 되어, 다음에 비가 들이닥치려고 할 때 우산을 어떻게 잘 써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찰싹! 파도가 때리고 가면 갈수록 보란 듯이 더 동글동글 예뻐지는 돌멩이처럼 말이야.


부는 바람을 피하지 않고 느낀다면 더 많은 기회와 행복에 머물 수 있을 테니, 해가 쨍쨍한 날도 바람 부는 날도 너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지금은 오롯이 이해하기 힘들겠으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엄마의 언어이자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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