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알게 된 마음
두 딸과 세 아들 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유독 살갑게 할머니를 챙겼다. 아픈 할머니를 시간 맞춰 병원에 모시고 가고 할머니 집에 틈틈이 들러서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는 것도 늘 엄마의 몫이었다. ( 할머니는 작은 외삼촌과 함께 살고 계셨다. 존경하는 작은 외숙모는 세상에 다시없을 천사이지만 무려 대표이사의 직함을 가지고 매일 아침 출근을 하시고 할머니는 낮엔 홀로 계시게 되었다. )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엄마를 자식 중 제일 편하게 느끼셔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를 부르셨다. 엄마는 어떤 사소한 부름도 헛으로 넘기지 않고 달려가셨다.
속으로만 생각했지.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들 고려대 보내고 똑똑한 자식들 평생 먹고 살 유산을 그마이나 다 주면 뭘 해. 정작 필요할 땐 딸인데. 자수성가한 딸 내외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건물에 땅에 집까지 부모 도움으로 일평생 베짱이처럼 사는 고려대나온 큰 아들은 얼굴도 까묵겠어! 사위는 카이스트 연구원이라고 자랑을 늘어지게 하셨던 큰외삼촌의 학벌 타령은 대를 이어,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계속되고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게 보기 싫었던지, 큰외삼촌을 보면 표정이 굳곤 했었지. 덕분에 고려대라면 엉글징이 나!
아귀찜을 가장 좋아하셨던 외할머니, 며칠 전까지도 미더덕을 오드득 오드득 맛있게 씹어드셨던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시다 넘어져 돌아가셨다니... 마침 그때 집에 아무도 없었다니 더욱 통탄할 노릇이었다. 손녀인 나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엄마는 어땠을까, 그날 할머니 댁을 가보지 못했던 후회와 자책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막혀버린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며 연신 가슴을 쳐댔다.
겨울방학이라 잠깐 집에 들렀던 사촌오빠에게 이것저것 챙겨서 보내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날따라 할머니가 뭘 자꾸만 가져가라고 했다는 사촌오빠의 말에 우리는 뜨거운 감정을 자꾸만 삼켜야 했다.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앉아 먹먹함을 나누고 서로의 눈물을 못 본 척해주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하나둘씩 끄집어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눈물이 터져버렸다.
참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울다가도 또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간간히 웃기도 했으니. 눈물과 웃음이 맵고 달게 버무려졌다.
막혔던 마음을 토닥이며 만져주고, 구멍이 나서 터져버린 마음을 꿰매어 봉합해주며 함께 밤을 지새웠던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춥고도 따뜻했다. 할머니 댁에 가면 주섬주섬 부엌에서 꽃게가 가득한 된장국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함께 내어주셨었다. 나는 한 손에 꽃게, 한 손엔 밥을 가득 퍼서 먹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크게 웃으시며 게 국물이 팔꿈치를 타고 흐르면 따갑다고 닦아주기 바쁘셨다.
"게장 타고 흐른다이. 국물이 옷사이로 들어가면 따갑고 냄새난다꼬. 아니아나 닦으라 ( 아나아나: 으이구 자 받아라.라는 뜻 정도 되겠다. 푸하) "
할머니의 장례중에도 엄마는 우리의 매무새를 살피고 끼니를 챙겼다. 손님을 맞고 애도에 감사해하며 슬픔을 추스르는 과정 속에서도 자식이 뭔지,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에 잔소리를 보태고 국에 밥을 척 말아 다 먹으라며 젖은 눈에 애써 레이저를 쏘아본다. 며칠째였더라.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수척해져서 핏기도 없는 얼굴로 엄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단정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던 엄마다.
"청바지는 기모가 있는 거 입고 오지. 이건 찹찹해서 추울 텐데."
"머리 린스 하라니까 또 샴푸만 했지? 겨울 부츠가 이거 말곤 없었나?"
의문문은 끝을 올려야 한다고 배웠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끝이 내려간다. 질문인가, 혼잣말인가, 처음 들으면 대답할 법도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다. 그저 엄마의 혼잣말. 마치 스무고개처럼 빠르게, 질문인 듯 질문 아니게 한참을 이어지다가 스윽 가버린다. 하하하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면 되었다.
얼음처럼 차갑고 된장국처럼 뜨끈했던, 시큰한 냄새가 가득한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겨울임에도 땀냄새가 폴폴 나던 옷을 던져버리고 목욕탕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벌써 노곤해지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시내로 가자고 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는 의아한 얼굴로 엄마를 돌아봤지만 가타부타 묻진 않았다. 아마도 지쳐 보이는 엄마에게 모든 걸 맞춰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겠지.
주차를 하고 시내에 내려서 엄마는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몇 개 안되던 진해 시내의 신발 브랜드를 샅샅이 돌며 괜찮은 겨울 부츠를 찾았다.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더 괜찮은 게 있는지, 굳이 한 번 더 보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꾸질꾸질한 행색으로 뱅뱅 돌며 옷과 겨울 부츠 등을 샀던 것 같다. 엄마는 허한 마음을 채우려 했던 것일까?
새 신발을 가졌다는 기쁨보다는 엄마의 의중이 너무나 이해가 되질 않아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로부터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엄마는 왜? 왜 그때 겨울 부츠를 사러 가자고 했을까? 급한 것도 아닌데 왜? 중요하지도 않은데 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데 왜 부츠에 집중했을까?
'다림질을 못해 내 옷이 구겨져있는 게 뭐 대수라고, 한 끼 굶으면 어때서 뭘 그렇게 국밥을 말아서 도끼눈으로 숟가락을 봐? 겨울에 부츠 안 신어도 아무 문제없다구. 여기가 러시아도 아니고, 따뜻한 남쪽나라라구!'
세월이 한참이나 흐르고 내가 그 시절 엄마의 나이 정도가 되었다. 지난달에 급작스레 엄마가 뇌수술을 받으셨고 엄마와 아이들을 함께 돌보며 문득 그때의 마음이 바람을 타고 전해왔다.
엄마의 수술 날에도 어김없이 아이의 끼니를 챙기고 아이들이 만든 시시껄렁한 작품에도 크게 칭찬하며 웃어주었던 마음 같은 것. 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우고 아이와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었다. 함께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병원에 가져다주며 코로나로 인해 아이의 마스크를 두 번 세 번 코부분이 뜨지 않았나 체크했다. 퇴원 후 회복할 때까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며 엄마와 아이들을 보살폈다. 먹어야 할 약이 많은 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니를 단단히 챙기고, 함께 나가서 매일 걷기 운동을 했다.
그래. 어쩌면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긴장하여, 아이의 마스크를 체크하고 손 소독을 시키며 유난을 부릴 때,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 할머니가 중요한데 왜 우리 마스크 콧등에 자꾸 신경 쓰지? 숨 좀 새면 어떻다고?
그런 마음이었어. 흘러내리는 사랑을 받느라 두 손을 다 써버렸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두 손이 가볍지 뭐야. 받은 줄도 모르게 다시 두 손으로 전해주고 있나 봐. 흘려버린 마음들이 있을까, 아쉬움이 들면 더 부지런히 마음을 전하게 된다.
- 워킹데드 중 -
[좋아하는 대사와 장면들은 캡처하여 메모해두고 상기하며, 마음을 울리는 구절은 필사를 한다.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은 어쩌면 그런 순간들. 나만의 케렌시아. ]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아무리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도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