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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r 03. 2023

유럽입국심사,
"혹독한 신고식"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7 _ Arrival in Europe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유럽 입국심사,

혹독한 신고식.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MAD)



    카타르 도하에서 약 7시간 30분 비행 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직항이 없는 "포르투갈 포르투"까지의 여정 중 마지막 경유지였다. 공항에 착륙하는 그 순간 마음속에 감격이 밀려왔다.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유럽 땅을 직접 밟은 것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나무와 풀들, 쨍하고 맑은 스페인의 하늘과 날씨, 그리고 친절하게 "Bienvenidos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해 주는 항공사 직원들까지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나에겐 이 멋진 스페인의 풍경을 천천히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다음 비행 편으로의 환승시간촉박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예약할 2022년 5월 당시, 'COVID-19' 상황의 여파로 비행 편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적은 선택지들 중 최저가에 최적의 비행 스케줄을 가진 지금의 비행 편을 발견하였고, 바로 비행기표 예약을 서둘러 진행하였다. 그러나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마지막 구간인 마드리드에서 포르투로 가는 비행 편의 환승 시간이 1시간 15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예전 미국 국내선을 이용하며 1시간보다도 더 적은 환승 시간의 비행 편을 잘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나의 공항 이용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입국심사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에서 안내 표지판을 따라 급하게 이동하였다. 다음 비행 편 시간까지 약 한 시간밖에 안 남아있어 마음이 조급하였다. 최대한 일찍 다음 비행 편 게이트를 찾아 그 앞에서 스페인 풍경을 여유롭게 만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와 마주하였다. 바로 "입국심사"였다.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유인즉슨, 입국심사는 당연히 마지막 도착지인 포르투갈 포르투 공항에서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쉥겐 조약” 국가라 그런지 갑자기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COVID-19' 상황으로 공항이 한산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인파로 입국심사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큰일 났다.'


    입국심사는 늘 여행객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잘못한 것이 없지만 만에 하나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해서 입국 거절 당하면 어떡하지' '깐깐한 입국심사관을 만나 질문 폭탄을 퍼부으면 어떡하지'와 같은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공항 이용객들로 인해 입국심사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군중들 사이로 입국심사관들이 꼼꼼하고 철저하게 심사를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비행 편 시간은 다가오고, 입국심사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점점 입국심사 차례가 다가왔다. 그동안 다져진 경험들로 신속하게 통과하기 위해 여권과 각종 서류를 요구하기도 전에 준비해놓고 있었다. 국가별로 여행 규제가 풀리고 있던 마지막 시기라 입국에 있어 아직 방심할 수 없었다. 백신 접종 증명서 영문번역본, EU 인증 백신 접종 증명서를 준비함은 물론이며 여행 계획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비행 편 예약증 등 철저하게 대비하였다.


    입국심사관에게 여권을 건넴과 동시에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물론 장시간 비행으로 인해 내 몰골이 안 좋긴 했지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미소를 건넸다. 심사관은 나를 위아래로 몇 번 훑더니 건넨 여권을 스캔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더니 그렇게 나를 입국심사대에서 통과시켰다. 그렇다. 아무런 질문도, 서류도 확인하지 않고 입국을 승인한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통과한 것이 내심 기쁘기도 했지만, 유럽에 입국하기 위해 마음 조리며 많은 준비를 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입국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남은 시간을 확인했고, 비행시간까지 약 15분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다음 비행편의 게이트 넘버를 확인하고, 공항 터미널 안에서 게이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좌)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활주로 전경 - (우) 스페인 마드리드 상공



국적을 초월한 연대감


    마드리드 공항 터미널 내부는 생각보다 미로처럼 복잡했다. 뛰어가는 도중에 안내 데스크에 길을 묻기도 하고, 잘못된 터미널로 넘어갈 뻔하기도 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나 말고도 바라하스 터미널을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수많은 무리를 발견했다. 우린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비행기를 탄다는 것을 눈빛을 통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많은 이들이 합류해 일단 사람들이 많이 뛰어가는 쪽으로 다 같이 뛰었다. 육상 마라톤의 한 장면처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마침내 게이트에 도달하였을 때, 게이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공항을 많이 이용하였지만 한 가지 생각 못한 사실이 있었다. 보통 비행기는 출발 20-30분 전에 탑승 수속을 완료하고 게이트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닫힌 게이트 입구 앞에는 나와 함께 달려온, 그리고 우리처럼 비행기를 놓친 여행객들이 약 열댓 명쯤 한 무리를 이루었다. 우리는 서로 묘한 연대감을 느끼며 항공사에 하나둘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같은 편이라 든든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게이트에 있던 항공사 직원은 우리에게 '터미널 밖으로 나가 항공사 데스크에 가서 항의하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비행기를 놓쳤다는 현실을 자각할수록 점점 자괴감좌절감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한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까지 어떻게 갈 것이며', '떠난 비행기와 함께 날아간 내 짐은 어떻게 되찾을 것이며' 걱정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나름 공항 이용에 베테랑이라 자부하던 나는 그 자만심 때문에 유럽 여행 시작부터 큰 고비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무너질 수 없었다. '어떻게 온 유럽여행인데' '3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최대한 멘탈을 붙잡고 침착해지기로 다짐했다. 이런 고난을 겪는 것도 지나고 나면 추억일 거라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좌절해 봤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믿고 의지할 거라고는 나 밖에 없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인한 중압감을 버텼다. 비행기를 못 타면 야간버스라도 타서 '어떻게든 여행을 지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조금 전 항공사 직원의 말이 기억나 일단 터미널 밖으로 나가 '항공사 데스크'로 향했다.


    터미널 밖 항공사 데스크에는 조금 전 나처럼 비행기를 놓친 승객들이 많이 있었다. 국적과 외모, 나이 모든 것이 달랐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우리는 함께였고, 동지애를 느끼고 있었다. 약 1시간에 달하는 대기시간을 거쳐 마침내 항공사 데스크에 해당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이곳이 아닌 항공사 고객센터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내 인내심은 바닥나기 시작했고, 우리 무리 중 이미 절반 이상은 자리를 뜬 후였다 (아마 버스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것 같았다).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공사 고객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항공사 고객센터에서 또 1시간을 대기하였다. 느린 업무처리 속도와 함께 총 2시간을 대기한 후에야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을 놓고 항공사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학부 시절 배워놓은 스페인어를 드문드문 활용하며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외국어를 배웠던 것이 이럴 때 활용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항공사에서 '입국심사 지연으로 인해 비행기를 놓친 사유'는 정책상 다음 비행기 편 표를 무료로 보상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없이 혼자 포르투로 날아간 내 짐도 공항에서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 포르투 공항 짐 보관소에서 찾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걱정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잘 해결되었다. 그렇게 나는 포르투로 2시간 뒤에 떠나는 비행 편 좌석을 확보하였고, 새로운 보딩패스를 받아 공항 터미널 내부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아찔하고 급박한 순간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감사함을 표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시 공항에서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입국심사랑 시큐리티 체크 구간에서 만나 나와 같이 비행기를 놓쳤던 포르투갈 커플
영어 잘하고 공항에서 나와 함께 다녀주었던 비행기 같이 놓친 재미있는 브라질 친구들
항공사 고객센터에서 새로운 보딩패스 티켓팅 적극적으로 도와준 고마운 직원 아저씨
공항 인포데스크에서 걱정해 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던 공항 직원 할아버지 할머니
모르는 것을 영어로 자세히 설명해 주며 도움을 많이 주었던 초록색 조끼 공항 직원 친구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얼굴, 어쩌면 존재조차 기억 못 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기며 감사함을 표한다. 한분 한분 진심으로 너무 감사하다.


행복노트 #3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친절은 감사함과 훈훈한 인류애를 느끼게 해 준다.





여행의 이유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함으로 뜻밖의 기회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 공감 가는 구문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여행의 이유, p.22)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 p.24)

    

    이번 사건을 겪고 나니, 여행 중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잘 극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적으로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 중 마주하는 시련들로 인해 당장은 고생하고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분명 지나고 나면 더 다채롭고 즐거운 일화로 남아 사람들에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란 사실을 알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통해 배우고 더 성장하기로 했다.






포르투 프란시스쿠 드 사 카르네이루 공항 (OPO)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 비행기를 놓쳐버리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뒤에야 드디어 포르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느낀 뒤라 많이 지친 상태였다. 포르투로 가는 약 두 시간 정도의 비행을 하는 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창문 밖 노을 진 풍경을 뒤로하고 잠에 곯아떨어져버렸다.


    아주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계획했던 당일 무사히 유럽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성공적으로 포르투 공항에 잘 도착하였고, 짐도 무사히 잘 찾았다. 앞으로 여행 중 벌어질 많은 일들이 너무 궁금하고 기대되기 시작했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에서 많은 일들을 즐기기로 다짐하였다.


    이렇게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진짜 나의 유럽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포르투 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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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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