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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r 27. 2023

포르투갈 리스본,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13 _ Lisbon,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리스본,

두 번째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리스보아)은 포르투갈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인 만큼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구시가지인 바이샤 지구를 중심으로 상업지역과 관광지역이 골고루 분포해 있으며, 외곽으로 갈수록 신시가지를 형성한다. 언덕이 많은 리스본의 특성에 따라 곳곳에 리스본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위치해 있으며, 노란색 트램, 거리에서 들려오는 '파두' 전통 음악, 그리고 드넓은 테주강이 리스본을 상징한다.




구시가지



    유럽에 도착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시차 적응도 덜 된 겸 리스본의 뜨거운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부터 리스본 시내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특히,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5월 말의 리스본에서는 아침에 돌아다니는 것이 더더욱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이롭다.


    숙소를 벗어나 관광명소가 많은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바로 리스본의 "명품 거리 (Av. da Liberdade)"였다. 울창하게 높이 우거 솟은 초록잎의 나무들이 중심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넓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도로 옆 건물들에는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명품 스토어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오전이지만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명품의 위엄을 리스본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좌) 호시우 광장 - 산타 후스타 승강기 - (우) 베르트랑 서점



호시우 광장 (Praça do Rossio)


    명품 거리를 따라 테주 강 쪽으로 조금 걸어오다 보면 '호시우 광장'을 마주하게 된다. 광장 중앙 부분에는 두 개의 분수와 함께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을 페드로 4세 광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드로 4세는 예전 포르투갈의 국왕이었고, 전쟁 중 프랑스 군대를 피해 브라질로 넘어가 추후 브라질의 초대 황제가 된 인물이다. 이곳을 방문하면 사방으로 둘러싸인 상업 건물과 수많은 인파들을 보며 리스본의 중심에 서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산타 후스타 승강기 (Santa Justa Lift)


    리스본에서 수많은 유명한 랜드마크 중 많은 이들이 꼭 방문해 보는 곳은 '산타 후스타 승강기'일 것이다. 랜드마크의 명성에 걸맞게 바이샤 중심 거리 사이에 눈에 띄게 우뚝 서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모여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를 통해 리스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긴 줄을 기다리는 게 싫었고, 다른 곳에서도 리스본 전경을 구경할 수 있음에 전망대에 올라가진 않았다.



베르트랑 서점 (Livraria Bertrand)


    리스본에서 나는 가장 방문해보고 싶었던 관광명소가 두 곳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베르트랑 서점'이었다 (다른 한 곳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1732년 개업한 이후, 현재까지도 운영하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막상 방문해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서점처럼 느껴지지만, "서점"을 좋아하는 나에겐 살면서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나는 서점과 도서관을 좋아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기보다 그저 많은 책들이 열거되어 있고 언제든 관심 가는 책을 바로 열람해 볼 수 있기에 "지식 창고" 같은 면에서 좋아한다. 평소 여유가 생기면 취미로 서점에 방문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반스 앤 노블', 한국에서는 '교보문고'가 나에겐 최애 장소였고, 틈틈이 방문해 책에 대한 안목을 길렀다. 나중에 은퇴하면 고즈넉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꿈일 만큼 서점을 좋아한다.


    우리 집에도 항상 벽 사면을 가득 채우는 서재 겸 다용도 방이 항상 존재했었다. 매년 집안 살림을 가볍게 하기 위해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책이 한 묶음씩 나오는 건 기본이었다. 지식에 대한 욕구인지 나는 책을 수집하는 욕심 또한 있는 편이며, 어릴 때 좋아하는 장르를 많이 가려 다양한 책을 많이 안 읽어본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번 베르트랑 서점을 방문했을 때 내부는 여느 서점과 다를 것 없는 평소 우리가 자주 봐왔던 서점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도 그 유명세에 힘입어 내부에는 관광객들이 많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였다. 한국과 관련된 책들도 찾아보고, 또 어떤 다른 흥미로운 책들이 있는지 여러 코너들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기념으로 책 한 권 소장하고 싶었지만, 혹여나 짐이 될까 봐 책을 구입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코메르시우 광장


코메르시우 광장 (Praça do Comércio)


    리스본의 대표 관광 구역인 바이샤 지구를 거쳐 테주 강을 접하는 끝부분까지 내려오면, 결국 '코메르시우 광장'에 도달하게 된다. 과거 이곳엔 궁전이 위치하고 있었지만 1755년 발생한 리스본의 대지진으로 인해 궁전은 무너지고, 재설계 과정에서 궁전이 아닌 광장으로 건축되어 지금의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아우구스타 개선문이 광장의 웅장함을 더해주며, 리스본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야 할 대문 같은 인상을 준다.


    리스본 곳곳에서 하얀빛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화려하게 조각된 이런 웅장한 건축물들이 리스본을 특별하고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코메르시우 광장은 리스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이곳에서 도시의 상징인 노란색 트램, 테주 강 등 리스본의 모든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테주 강


    코메르시우 광장의 아우구스타 개선문과 중앙에 위치한 기마상도 충분히 웅장하고 멋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반대편에 넓게 흐르고 있는 '테주(타구스) '이었다. 처음엔 그 넓이가 많이 넓어 바다인 줄 알았으나, 정확하게는 강 하구로써 바다와 만나는 접점쯤에 위치한 곳이었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테주 강 연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았다. 강을 따라 리스본 도시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밝은 햇살 아래 깊고 푸른 테주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함께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에 대해 각별한 인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우연히 보게 된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큰 정보 없이 '리스본의 예쁜 풍경을 담은 로맨스 작품이겠거니'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포르투갈의 아픈 근대사를 담은 무거운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진지한 주제를 전달하고 있었다. 감상이 끝난 뒤에도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고, 이후 리스본을 바라볼 때 마냥 아름다워 보이기보다는 도시의 과거 슬픔과 그림자가 함께 보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는 리스본의 예쁘고 다양한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걸었던 그 장소들을 하나하나 직접 방문해 보며, 영화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도시와 거리 곳곳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기록되지 않은 도시 속 작은 역사를 써 내려갔다.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이 도시를 거닐 수 있지만, 과거 어떤 한 시점에는 이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싸운 이들도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현재에도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을 살아오다 우연히 겪은 한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변화됨을 느끼는 것', 우리는 살면서 이런 경험을 마주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영화 속에는 과거 포르투갈 억압적인 독재 정권에 맞서며 벌어진 비극적인 일들로 인해 현재까지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그들은 과거의 순간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현재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그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고, 현재의 그들과 대화함으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교훈을 깨달음과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과거에 머물러있기도, 혹은 반대로 현재에 더 집중해 살아가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연한 사건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우리가 살면서 우연히 겪을 한 사건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또 그 사건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다. 인생은 많은 사건들의 집합과 연속이고, 그 사건들에서 찾은 의미로 인해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잊지 못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변화해 왔다. 가끔은 나의 엄청난 잘못들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뜻밖의 시련들을 겪으며 성장하기도 했다. 싫으나 좋으나 그 기억들이 전부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어, 현재의 삶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비록 과거의 일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좋은 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한참 흘러 10년, 20년, 아니 50년 뒤 문득 지금을 되돌아보았을 때, 현재의 기억으로 인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엔 고결함이 있다."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中


행복노트 #10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p. 44)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p.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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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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