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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r 30. 2023

포르투갈 리스본,
"오래된 것의 소중함"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14 _ Lisbon,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리스본,

세 번째 이야기: 오래된 것의 소중함.





포르투갈과 신항로 개척 시대



    아침 6시가 되어 휴대폰 알람은 울리기 시작했고, 꿈속에 있던 나를 다시 리스본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유럽여행 첫날부터 마치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한 듯 매번 아침 6시 전후로 기상하며, 해가 뜰 때쯤엔 여행을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곳에 방문해 박물관과 여러 관광 명소들을 구경하는 바쁜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리스본의 더위와 많은 관광객들을 피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나가기로 다짐하였다.


    오늘의 모험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눈을 뜬 순간 갑작스러운 근육통이 찌릿하게 온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전날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리스본의 수많은 언덕들을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무리해 걸어왔던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이두, 삼두근과 허벅지 근육에 그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축적되어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다행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고,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였다.


벨렝탑

    오후시간 동안 달궈진 리스본의 뜨거운 열기를 밤새 시원하게 식힌 서늘한 새벽 공기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너무 강렬했던 햇빛 탓일까 리스본은 '덥다'는 이미지만 있었는데, 일교차가 심한 것을 보니 '유럽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선하고 상쾌한 아침 날씨를 즐기며 어느새 근육통은 싹 잊은 채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타 개선문 바로 앞에 있는 정거장에서 노란색의 '15E' 트램을 타고 '벨렝 지구'로 향했다.


    '덜커덩'하는 소음과 함께 흔들리는 트램 안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트램 안에서 나는 알록달록한 리스본의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금세 20분이 지나며 벨렝 지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정거장에서 내려 테주 강 쪽으로 약 10분 정도 더 걸어갔고, 요트 선착장과 함께 작은 공원이 나왔다. 그리고 이곳엔 목적지인 '벨렝탑'과 '발견기념비'가 있었다.


    리스본의 유명 랜드마크 중 한 곳인 이 '벨렝탑'은 오랜 역사 속에서 요새, 감옥 등 다양하게 쓰였고, 현재는 전망대로써 사용되고 있다. 하얀빛의 석회암을 사용하여 약 30m 높이로 멋스럽게 건축되었으며, 가까이서 보면 조각 하나하나의 예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벨렝탑 근처로 작은 공원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상의를 탈의한 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니 유럽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벨렝탑에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살짝 돌리면, 높게 우뚝 솟은 또 다른 리스본의 대표 건축물 '발견기념비'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에 대해 생각할 때, "호날두"나 "에그타르트" 같이 유명한 단어들도 많이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바로 "신항로 개척"이다. 그리고 이 발견기념비는 그 신항로 개척과 영광스러웠던 포르투갈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현재 포르투갈은 인구 천만에 영토 면적은 남한의 영토 면적과 비슷하여 다른 유럽 열강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은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었고, 바다를 통한 새로운 교역로 개척과 동시에 해상 강국으로써 그 영향력을 전 세계적으로 펼쳤던 국가이다. 한 때 여러 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국가였으며, 그때의 역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이곳에 발견기념비를 세웠다.


    포르투갈은 유럽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쪽 변방에 위치하고 있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일찍이 '바다로 나선 것'이 피치 못할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륙 동쪽의 국가들과 연결되는 교역로를 개척함으로 각종 비단과 향신료를 직접 들일 수 있고, 또한 포르투갈의 작은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국가들과 교역을 통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드는 게 필연적이었다. 그렇게 바다로 나선 것이 대항해 시대의 시발점이 되었고, 유럽의 다른 많은 국가들도 바다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침략의 역사로 생각되기도 한다.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서구 문물을 전달하고, 전 세계를 하나로 엮은 영광스러운 역사로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신항로를 개척함으로 전 세계 곳곳에는 식민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에 따라 세계사에는 크고 작은 많은 새로운 변화들을 맞이하였다. 식민지를 겪었던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신항로 개척 시대에 찬탈과 약탈의 역사도 함께 겪으며, 그때에 대한 부정적이고 아픈 기억도 많이 존재한다.


    발견기념비를 보며 신항로 개척 시대의 긍정적인 부분만 생각해 보았을 때, 포르투갈의 선조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구평면설'을 믿던 과거에 바다를 개척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의 끝에 다다라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고, 거친 파도를 이겨내며 매 순간 생존을 건 위험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후손을 위해 그들은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두고 용기를 내야 했다. 그리고 용기를 냈었다. 그때의 용기 덕분에 '세상은 둥글다'는 증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항해술이 함께 발달했으며, 현대의 역사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명성과 업적에 걸맞게 발견기념비 또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부심을 담아 그런지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다.


발견기념비





포르투갈의 정취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포르투갈어'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취미로 외국어 공부를 하는 나에게 포르투갈어는 흥미롭게 들렸다. 묘하게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다 같은 라틴어 계열의 언어들이라 문법도 비슷하고 같은 단어들도 존재하지만, 신기하게도 언어별로 느껴지는 느낌은 다르다. 나에게 포르투갈어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포르투갈어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된 계기는 '보사노바' 음악을 통해서였다. 재즈, 블루스와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보사노바'에는 포르투갈어로 된 노래들이 많이 있다. 그 이유인즉슨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에서 보사노바가 많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보사노바 특유의 리듬과 밝은 멜로디는 상쾌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재즈와 블루스가 '몽롱하고 야심한 밤 자욱한 연기' 같은 느낌이라면, 나에게 보사노바는 '아침을 쾌활하게 깨워주는 모닝커피' 혹은 '노을 질 녘 바닷가에서 마시는 샹그리아 한 잔' 같은 느낌이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한 번이라도 포르투갈어를 더 들어보기 위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많이 있다. 언어가 예쁘게 들려서 그런지 어떤 뜻인지 몰라도 그 단어가 따뜻하고 친절하게 들렸다. 어쩌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착하고 정이 많아 그 말도 아름답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카페에 앉아 잔잔하게 들려오는 보사노바 음악과 함께 흰 잔에 담긴 따뜻한 카푸치노 향을 맡으며, 형형색색 파스텔톤의 리스본 풍경 속 인상 좋은 포르투갈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이미 내 마음은 극락에 있었다.


리스본의 사람들





도시의 색깔



    유럽의 25 국가를 여행하며 약 70곳이 조금 넘는 도시들을 방문하였다. 그중 색채가 가장 알록달록하며, 색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리스본'을 제일 먼저 고를 것이다.


    리스본의 쨍한 햇빛 아래 오색빛깔 찬란한 풍경을 카메라로 담는 것이 즐거웠다. 언덕길이라 조금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누비며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기에 바빴다. 연분홍, 연노랑, 연파랑, 연보라 등의 색으로 칠해진 건물은 리스본의 맑은 하늘의 색깔과 너무 조화로웠다. 이 사이로 지나다니는 노란색 트램조차 완벽하게 느껴졌으며, 원색 계열의 쨍한 옷을 입은 리스본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획일화된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다가 유럽의 개성 넘치는 건물들을 보게 되면 당연히 그 매력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사실 오래된 유럽 건물들이 유지하기에 비용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많이 있겠지만, 도시의 미관 하나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이런 다양한 건축물들끼리 잘 어우러져 도시의 특징이 생기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방문하게끔 유혹하게 된다.


    리스본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카메라로 담으며, 다양한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것의 소중함



28번 트램


    리스본에서는 "트램"이 특히 유명하다. "일곱 개의 언덕"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리스본에는 수많은 언덕이 자리 잡고 있고, 언덕 사이를 버스와 같은 다른 대중교통수단이 들어서서 운영되기엔 한계가 있다. 대신 트램을 활용해 도시의 골목과 골목을 연결하고, 시민들을 언덕 위로 편하게 이동시켜 주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조금은 낡은 트램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 중 뒤를 바라보면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리스본의 전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먼 과거 서울 도심 속 교통수단으로써 트램이 운영되었지만,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리스본이나 유럽의 번화가 속 차들과 함께 유유히 지나다니는 트램을 보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리스본에서 트램은 밝은 노란색으로 색칠되어 있는데 멀리서도 단번에 트램임을 알아볼 수 있으며, 그 모습이 리스본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잘 어우러져 그 매력을 더해준다.


    많은 여행 블로그 글들을 참고하였을 때, 리스본에서는 '트램을 꼭 최소 한 번 이상은 타야 한다'는 글을 많이 보았다. 특히 "28번 트램"이 가장 유명하다. 그 이유는 '28번 트램'의 운영 코스가 리스본의 주요 관광 명소들을 모두 지나가 트램 안에서 리스본을 한번 쭉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28번 트램 안에서 구도를 잘 잡아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으나, 항상 관광객이 많이 탑승하므로 시간대를 잘 맞춰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래된 것


    리스본과 유럽에서 운영되는 트램을 보며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현대 많은 도시에는 지하철 혹은 버스가 트램의 자리를 대신해 운영되고 있다. 기술이 점점 발달되어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 트램의 가치는 더욱 하락하고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한정된 비용과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서 가치가 떨어진 오래된 것을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할 일을 다하고 퇴역하는 오래된 것들을 바라볼 때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오래된 것을 보고 있으면 과거의 향수를 느낄 때가 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먼 과거이지만, 옛날 어떤 한순간을 담은 흑백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진 속 그때의 상황에 몰입해 옛날의 풍경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가끔 인물에 대입해 '이 사람은 이때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는 질문도 한다.


    "오래된 것"이라는 건 '과거에 존재했다'는 뜻이자, 지금은 그때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러 그 색이나 빛이 조금 바랬다는 뜻이다. 영원한 것은 없듯 세상은 계속 변하고 사람과 사물도 계속해서 바뀐다. 할 일과 본분이 끝나 옛 것이 되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우리의 곁을 지켜 오랜 시간 함께 했음에, 그렇기에 오래된 것에 있어 소중함이 더욱 느껴진다.


행복노트 #11

우리 곁을 오랜 시간 지켜온 것의 소중함을 알고 그만큼 더욱 가치있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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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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