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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Apr 03. 2023

포르투갈 리스본,
"사람들이 사는 곳"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15 _ Lisbon,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리스본,

네 번째 이야기: 사람들이 사는 곳.




    리스본에는 대표적인 관광 구역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리스본의 번화가이자 리스본의 대표 명소들이 모여있는 '알파마, 바이샤' 지구이고, 다른 한 곳은 궁전과 박물관이 모여있는 '벨렝, 아주다' 지구이다. 벨렝과 아주다 지구로 가기 위해서는 리스본 중심에서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약 20-30분 정도 가야 나오는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 지구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아주다 지구의 아주다 궁전을 방문하기 위해 전날 코메르시우 광장 근처에 있는 리스본 투어 센터에서 "리스보아 카드"를 구입했었다. 리스보아 카드를 통해 정해진 기간 동안 리스본의 교통 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다수의 주요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관광객 입장에서 리스보아 카드는 리스본을 알차게 여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혜택들을 가지고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이른 아침 근처의 벨렝탑과 발견기념비에 들려 잠시 구경한 뒤,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참으로 매력적인 장소였다. 전체적인 건물의 색감과 웅장한 크기 덕분에 멀리서도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가까이에서 보았을 땐 조각 하나하나의 예술적 미를 감상할 수 있다. 1502년 완공된 이후로 현재까지 문화적 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유네스코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상태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개장 시간에 맞춰 일찍 도착했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을 때 여유롭게 수도원 내부를 둘러보며, 예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분 전 미리 도착하였음에도 수도원 근처로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이 서있었다. 군인들의 제복 같기도 했고, 경찰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수가 한 둘이 아니라 수십 명은 되어 보여 '혹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며 걱정하던 찰나,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린 아이들임을 깨닫고 안심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한눈에 봐도 앳된 친구들이 '왜 군인처럼 제복을 입고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조사해 보니 귀한 손님이 이곳을 방문할 땐 항상 이렇게 행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복을 입은 친구들이 시간에 맞춰 도로 중앙으로 집결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경찰관들이 도로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친구들이지만, 제복을 입고 군기가 바짝 들어 늠름한 모습으로 서있으니 왠지 멋있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마음속 또 다른 한 편으론 많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더운 날씨에 저렇게 긴 옷을 입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영광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혹시나 몇몇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와 이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군대를 다녀온 입장에서 이 행사를 준비하며 엄청난 고역이 따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이지만 현장에서 불평불만 없이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고 상당히 듬직해 보였다.



    깃발을 든 선봉장을 따라 뒤이어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따르고, 그 뒤로 소총을 든 친구들이 행진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실제 군복을 입은 통제관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진하는 도로 반대편에는 고급진 드레스와 멀끔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행진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도원으로 귀한 손님이 방문하였음이 확실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약 30분에 걸친 행사는 슬슬 마무리되고, 드디어 개장 시간에 맞춰 제로니무스 수도원 내부로 입장할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내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유럽 풍의 건축 양식을 처음 접하였는데, 장식된 조각 하나하나 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건축 디자인을 어떻게 설계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천천히 살펴보며 사소한 것에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벽과 조각들이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 수도원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작품이 되어 있었다.


    아치형 천장의 복도를 따라 수도원 중앙 정원과 분수를 구경하고 끝에는 수도원 예배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에는 종교적 주제를 담은 유채화와 성모, 성자의 조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옛날 이곳의 수도사로 지냈었다면, 종교적 전통과 유산을 오랫동안 지켜온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약 한 시간 조금 넘게 수도원을 둘러보며 포르투갈 문화유산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에그타르트



    아주다 지구로 방문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에그타르트를 먹기 위함이었다. 포르투갈 전역적으로 에그타르트를 많이 판매하지만,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 유명 맛집 "Pasteis de Belem"의 에그타르트가 특히 유명하다는 정보를 접하여 이곳에서도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유명 맛집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쯤 방문하니 가게 밖으로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심지어 가게 내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줄이 시작된 것이었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가게 내부의 공간도 엄청 넓은 편인데 그곳이 손님들로 가득 찬 것을 보니, 이곳 맛집의 명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야외 한쪽 구석 좋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았고, 에그타르트 외에도 맛있어 보이는 음료와 빵의 이름이 메뉴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리스본의 엄청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일단 가볍게 물 한 병과 초코 밀크셰이크를 먼저 시키고, 에그타르트와 함께 다른 빵도 먹어 보고 싶어 고기가 들어간 빵 "Folhado de Carne"도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정말 맛있었다. 달달하고 고소한 에그타르트 맛에 빠지게 되었고, "Folhado de Carne"도 왠지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크로켓 맛이 나면서 성공적인 주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빵을 많이 좋아해 왔다. 한 때는 밥보다 빵을 더 사랑한 적이 있으며, 집 식탁 한 구석에는 매일 빵이 한가득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빵을 주식으로 먹으며, 이곳의 베이커리는 나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지금껏 내가 먹어보지 못한 다양한 종류의 빵이 많이 존재하였고, 전문적으로 '빵'을 파는 곳과 '다과/케이크'를 파는 곳이 구별되어 있으며, 쇼윈도 너머로 보기만 해도 달달하고 고소한 그 풍미가 느껴지는 듯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취미로 베이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재밌기도 하거니와 직접 만든 노력이 더해진 음식을 먹는 것도 뿌듯할 것 같다. 아무래도 정량 계량을 중요시하는 레시피를 가진 빵 종류가 많다 보니 베이킹 자체의 난이도도 있기에 도전의식도 생길 것 같다. 예전 집에서 혼자 브라우니와 바나나브레드를 간단히 만들어본 경험도 있기에, 새로운 취미 거리를 찾은 것이 즐거웠다.






아주다 궁전



    브런치로 에그타르트와 빵으로 가볍게 배를 채운 뒤 다음 여행 장소로 향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버스를 타면 약 5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주다 궁전"에 방문하였다. 아주다 궁전은 내가 유럽에서 방문하는 첫 궁전이었다. 옛날 왕가가 살았던 궁전은 어떤 모습일까 많이 궁금하기도 했고, 평소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의 예쁜 궁전을 직접 방문해 본다는 것이 설레었다.


    오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이 없음에 당황스러웠다. 아주다 궁전을 겉으로 보았을 때 궁전 같기도 하고, 정부 청사 건물 같기도 해 내가 잘못 찾아온 건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 아주다 궁전이 맞았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나 다른 유명 관광 명소처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은 아닌 듯했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음이 좋았다.


    아주다 궁전 내부로 들어가 각종 연회실과 왕족이 사용하던 화려한 방들에 서있으니,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20세기 초까지 왕가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구들과 그림 등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한 때 누군가 사적으로 사용하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요한 정적 속 오래된 목재 바닥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주다 궁전을 아주 천천히 둘러보고 궁전 외부로 나왔다.


    궁전 내부의 각종 화려한 사치품들을 보고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현대에 들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공수할 수 있는 각종 귀한 물품들이 이곳 한 곳에 많이 모여있다는 게 당시 사회에서 왕가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그만큼 사회의 이목을 받는 자리이므로 얼마나 사생활이 없고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부담감이 강하게 들었을지 상상도 해보았다. 무엇보다 아주다 궁전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있는데, 베르사유 궁전같이 이보다 더 유명한 다른 궁전들은 얼마나 더 화려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



    아주다 궁전을 구경한 후 생각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이 남아 당황스러웠다. 계획할 땐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아주다 궁전을 방문한 뒤면 벌써 저녁 시간쯤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직 오후 3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오후 3시의 리스본은 해가 중천에 떠있어 여느 때와 같이 무더운 날씨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대로 리스본 여행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들었다.


    아주다 궁전 옆 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날씨만 안 더웠으면 리스본 구석구석 혼자 걸어 다니며 관광 명소 이외에도 다양한 곳을 구경했을 텐데, 도저히 이 뜨거운 햇빛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주다 궁전 직원 한 분이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리스본 여행은 재밌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리스본이 너무 좋지만 지금 날씨가 너무 뜨거워 호텔로 돌아갈지 고민 중'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니 직원분께서 '이대로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거라고, 이 근처가 아름다우니 여기 근처라도 잠깐 돌아보고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나는 용기를 얻어 이 아주다 지구를 탐방해 보기로 했다.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등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작은 생수를 몇 병 구입해 가방에 넣고, 카메라를 손에 쥔 상태로 더위 속 여정을 시작했다. 아주다 궁전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사람들이 사는 민가가 나왔다. 높은 건물들 없이 아기자기하고 잔잔한 색으로 칠해진 예쁜 건물들이었다. 도로에는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햇빛 아래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나 스스로가 괜히 민망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언덕 아래로 저 멀리 '테주 강'이 보였고, 강 위로 '4.25 대교'도 볼 수 있었다. 민가 사이 골목을 걷다 보니, 열려있는 문 사이로 신나는 파티를 준비하는 가족도 볼 수 있었고, 두 손을 꼭 잡은 할머니 두 분이 그늘 아래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계신 모습도 보았다. 리스본의 여느 관광지의 모습과 달리 아주다 지구에서는 리스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스본의 랜드마크인 코메르시우 광장이나 벨렝탑을 방문한 것보다, 이곳 아주다 지구를 방문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꼈다. 



    누군가 '리스본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주다 지구"라고 대답할 것이다. 리스본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이곳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며, 다른 어떤 유명한 관광 명소보다 내적으로 더 가까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다르고, 선호하는 관광지가 다르다. 어떤 이는 백화점이나 아웃렛, 상업지구에 방문해 쇼핑하는 것이 여행의 낙인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맛집을 탐방하며 먹을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좋은 호텔에 머물며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웃도어 액티비티처럼 활동적인 관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때에 따라,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위의 여행 스타일들도 다 선호하지만, 무엇보다 혼자 걸어 다니며 사람들이 사는 동네(neighborhood)에 방문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제일 즐겁다. 방문했던 곳들 중 리스본 사람들이 사는 삶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여기 아주다 지구라고 생각했고,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노트 #12

다른 이들의 삶의 방식,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움으로 인생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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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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