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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Apr 06. 2023

포르투갈 리스본,
"리스본을 떠나며"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16 _ Lisbon,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리스본,

다섯 번째 이야기: 리스본을 떠나며.





리스본의 흐린 날씨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아왔다. 언제나 늘 그렇듯 항상 도시를 떠날 때가 되면 마음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오늘은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지만,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유럽여행의 첫 시작 국가인 포르투갈에 도착하기 위해 공항에서부터 고군분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포르투갈을 이제 떠난다니 믿기지 않았다.


    다음 여정은 스페인이다. 밤 9시에 출발하는 야간버스를 타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럽여행을 계속 이어나간다. 문제는 밤 9시 저녁 늦게 출발하므로 그 시간까지 딱히 계획도, 있을 곳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짐은 호텔에 잠시 맡겨두면 되니, 오늘 오전만큼은 푹 쉬다 오후에 여유롭게 즉흥적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전 11시쯤 호텔 체크아웃을 진행하고 밖으로 나선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분명 여행 첫날부터 어제까지 살인적인 햇빛과 더위로 나를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리스본의 날씨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흐린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흐린 날씨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 좋아하지만, 리스본에서 흐린 날씨라니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리스본 안에서 여행하며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곳들을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바이샤 지구와 아주다 지구에서 각각 하루씩 보냈으니, 오늘은 알파마 지구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언덕과 함께 예쁜 색깔로 꾸며진 동네가 매력인 알파마 지구인데, 햇빛이 없으니 그 색이 바래 영 느낌이 살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탁한 느낌으로만 찍혔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괜히 마음도 울적해지는 듯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싫어했던 리스본의 뜨거운 햇빛이었는데, 갑자기 그 햇빛이 이상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햇빛이 없는 리스본은 왠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행 내내 갈증과 더위로 나를 괴롭힌 녀석이지만, 그 햇빛 덕분에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고, 리스본만의 매력을 부각해 주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햇빛에서 '영원한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하는 철학적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밤 9시까지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닌다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카페도 가고, 테주 강을 따라 걷기도 하고, 바이샤 지구를 한번 더 돌아다녔음에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쌀쌀한 날씨 속 테주 강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사색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도저히 흐르지 않아 결국 호텔로 다시 돌아갔다.



    호텔 로비에 있는 작은 카페에 앉아 가져온 랩탑을 켰다. 지금까지 리스본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큰 화면으로 처음 접했는데, 리스본의 예쁜 색감이 잘 살아있어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진을 찍을 당시, 실제로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을 통해서 보니 그 느낌이 더욱 잘 살아있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보니 오늘의 날씨가 흐린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리스본을 떠난다는 아쉬움이 함께 밀려왔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



    슬슬 버스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해 버스 터미널로 서둘러 이동해야 했다. 버스 터미널은 호텔로부터 걸어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며칠 전의 교훈을 깜빡 잊은 채 이번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걸어가기로 다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마 날씨도 안 덥고 하니 조금이나 천천히 더 리스본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호텔을 나와 버스 터미널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을 마주하였다. 공원의 저 높은 언덕을 보니 본능적으로 '큰 일 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곳을 지나 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내 손에는 여김 없이 28인치 대형 캐리어가 있었고 등에는 10kg 이상의 백팩을 메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똑같은 실수라기보다는 재밌는 경험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이 어느 정도 적응 되었는지 첫날보다는 확실히 힘듦이 덜 느껴졌다. 날씨 몫이 큰 것 같았다. 이번에도 높은 언덕을 오르며 뜻밖의 상체, 하체 운동을 골고루 하고 있었고, 가파른 언덕을 큰 짐과 함께 올라가는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주위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 같아도 쳐다봤겠다. 진짜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뿌듯함(?)과 함께 공원 언덕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 언덕을 열심히 올라 정상에 도착해 뒤를 돌아봤을 땐 지금까지의 고생이 전혀 헛되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덕 정상에서 바라본 탁 트인 리스본은 전망과 함께 멋진 장관을 연출하였다. 맑은 날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흐린 날이었음에도 리스본의 예쁜 풍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30분 정도 쉬면서 리스본 전경을 아쉽지 않을 만큼 눈에 담았다.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이는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은 그간의 리스본 여행 중 방문했던 곳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 전경





리스본을 떠나며



신시가지 건물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을 지나 리스본의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시가지의 현대적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형식의 건물들과 대형 쇼핑몰 등 구시가지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시가지라곤 해도 조금은 허름한 그 모습에 내심 조금 당황스러웠다.


    신항로 개척 시대의 찬란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들어 포르투갈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연합 내에서 입지가 좋지 않은 편이며, 실제로 여행 중 본 포르투갈의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포르투갈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포르투갈만의 투박하고 따뜻한 정서를 거리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으며, 그 특유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조금 더 사람 사는 동네 같은 인간적인 미도 확인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친절해 여행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었다.


    포르투갈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리스본과 포르투만 방문했던 게 아쉽게 느껴졌다. 나중에 또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포르투갈 내 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순례길도 걸어보고, 다양한 해산물 요리와 빵도 먹어보며, 친절한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게 여행하고 싶다.


행복노트 #13

친절과 배려, 따뜻함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러나 그것의 감사함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다.





스페인 마드리드행 야간버스



    리스본 세테 리우 (Lisbon Sete Rios) 버스 터미널에서 마드리드행 야간버스에 올라탔다. 밤 9시 반에 출발해 아침 7시쯤 도착하는 무려 10시간에 가까운 장시간이지만, 이것도 재밌는 경험이겠거니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탑승했다. 야간열차를 이용할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스페인으로 이동할 때, 기차보다는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는 정보를 접하였고, 이에 따라 야간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버스 내부 공간은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보다도 더 좁았고,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협소한 공간이었다. 다행히 올라타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려서 그런 불편함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감사하게도 옆에 타고 있었던 승객이 버스가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다음 정차역에서 내려, 남은 8시간은 훨씬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운행 중 버스의 흔들림에 따라 자연스레 두세 번 정도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창 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포르투갈인지 스페인인지도 모르겠지만, 잔잔한 불빛과 함께 오래된 높은 성벽이 몇 킬로미터는 이어지는 예쁜 야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암흑 속 사람들이 사는 작은 시골 동네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저 낮에 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윽고 아침 해가 밝아오고, 도로 옆 간판에서 마드리드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안락하지 못한 좌석이었음에도 다행히 큰 불편함 없이 개운하게 잘 수 있었다. 오래 잔 것은 아니기에 아직 몸에 피로가 쌓여있었지만, 마드리드 도시에 들어선 순간 마음속엔 또다시 모험심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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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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