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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Apr 24. 2023

스페인 톨레도,
"과거가 머물다"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0 _ Toledo,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톨레도,

과거가 머물다.




톨레도로 가는 길



    톨레도는 버스를 타면 마드리드로부터 불과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마드리드 '엘립티카'역에서 출발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어느새 드넓게 펼쳐진 황야를 지나고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수도권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환경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도시 지역에 모여 산다. 스페인 땅은 넓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이 비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건조한 기후의 비어있는 땅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풍경을 감상하였다.


    아침 9시의 버스는 고요했다. 나를 포함한 승객 대부분이 모두 톨레도를 관광하기 위해 방문하는 여행객들 같았다. 넓은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해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마드리드로부터 꽤 멀리 달려왔음을 깨달았을 때, 드디어 스페인 전통과 역사의 도시, '톨레도'에 도착하였다.






중세의 도시



    톨레도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과거 오랜 시간 전부터 천혜의 요새 자리를 매김 하며 스페인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약 500년 전 마드리드로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톨레도가 스페인 왕국의 수도였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지리적으로 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기 수월했을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높은 언덕을 중심으로 성벽이 둘러져 있었고, 그 아래로 강이 언덕을 감싸 흐르고 있었다. 강을 넘어 성벽을 통과해 내부로 침입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톨레도 도시 내부는 큰 변화 없이 옛날 그 모습 그대로를 대체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높은 성벽과 과거 돌로 지어진 거대한 대문을 통해 옛날 역사 속 모습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톨레도 성벽의 거대한 입구를 통과했을 때, 마치 중세 시대를 잠시 방문한 느낌이었다.


    성문을 지나 작은 언덕들을 하나씩 오르다 보면 곳곳에서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톨레도의 건물들은 대체적으로 베이지색 혹은 채도가 낮은 주황색 벽돌과 타일로 지어졌다. 스페인의 건조한 땅과 색감이 잘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간혹 어떤 이들은 마드리드에 방문하는 이유가 톨레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드리드보다 더 오랜 시간 스페인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온 만큼 도시 미관만큼은 확실히 마드리드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지 톨레도 거리 곳곳에서는 중세 시대의 검과 갑옷을 판매하는 상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상점 내부에 들어가 보았을 때 모형이 아닌 실제 진검들이었다. 검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에서는 판매될 수 없는 다양한 무기들이 공공연히 전시되어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톨레도에서 생산된 검은 예전부터 그 명성을 널리 떨쳤다고 한다. 먼 과거부터 도시의 자랑으로 함께 해서 그런지 이런 무기 상점들은 어떠한 위화감이나 이질감 없이 톨레도 도시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톨레도 도시 내부는 과거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돌바닥 길과 건물들 등 도시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도시의 작은 부분들이 조금씩 현대적으로 바뀌어가는 중이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곳에서 과거 중세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톨레도의 거리를 걸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물 외벽 혹은 공중에 매달려있는 가로등이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톨레도에 머물지 않아 톨레도의 야경을 보지 못했음이 많이 아쉬웠다. 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한 등불들에 불이 켜지면 그 운치가 더욱 황홀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또한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기 위해 길마다 햇빛 가리개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햇빛을 피해 그늘 속에서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실제로 스페인의 뜨거운 날씨를 직접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만약 이런 천막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면 거리에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스페인의 역사가 가장 잘 담겨있는 곳이 바로 이곳 톨레도인 것 같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이질적인 건축적 양식에 감탄한 적이 많았다. 역사 속 다양한 제국과 세력들이 이곳을 뺏고 점령하다 보니, 톨레도는 과거부터 많은 문화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독교의 성당, 이슬람의 모스크, 유대교의 회당 양식이 묘하게 섞인 건물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톨레도만의 독특한 도시 매력을 한껏 더해준다.


톨레도 신호등

    톨레도에서의 여행은 하루 중 반나절 정도의 짧고 아쉬운 일정이었다. 도시를 걸어 다니며 예쁜 경관을 눈에 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점심이 지나 오후가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더위에 지쳐있었다. 6월 초 이미 여름이 시작된 시기라 뜨거운 햇빛 때문에 도시 안에서 더욱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정말 뜨겁게 달궈진 바닥 열기 때문에 신발 밑창이 녹아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할 만큼 엄청난 더위였다.


    마지막 일정으로 도시 바깥으로 이어진 길을 통해 톨레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전체적은 예쁜 모습을 눈에 담고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 내내 그늘이 하나도 없었고, 뜨거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30분 넘게 걸었다. 이곳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도 있었지만, 그냥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다. 이렇게 도시와의 작별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과거가 머물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 톨레도를 한 바퀴 크게 감싸고 있는 초록빛의 강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한국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톨레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지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흔히 말하는 사회의 트렌드,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편이며, 그런 것에 관심도 크게 없는 편이다. 새로운 것들보다는 익숙한 것들을 더 선호하고, 클래식과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더 사랑한다. 정말 가끔 익숙한 것에 질릴 때면 자발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긴 하지만, 원치 않게 변하는 것들에 적응해야 할 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어떤 이들의 시선에선 내가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현대의 러다이트(Luddite) 같은 사람인 것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많은 변화들이 이루어져 왔고, 또 현대에서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우리는 미래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좋은 변화인지 나쁜 변화인지는 모른 채 세상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항상 변해왔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지와 상관없이 시시각각 제멋대로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만 했다. 정말 가끔은 이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 익숙한 것과 머물며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싶을 때가 많다.


    과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인터넷이 생소했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스마트폰이 없고,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시간을 더 윤택하게 쓴 것 같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상상과 함께 신비한 감정을 자주 느꼈다. 유튜브 시청이나 인터넷 서핑이 아닌, 다른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더욱 알찬 하루를 보냈다. 기술의 발전이 지금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더욱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준 것은 인정하지만, 현대 기술이 없던 과거의 나는 스스로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며 감정과 영혼이 지금보다는 더욱 생기 있게 살아있었던 것 같다.


    정작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손쉽고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보니 인내심과 끈기를 잃어버린 것 같다. 많은 것들에 노출되다 보니 남들과 비교하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던 바깥세상을 바라볼 때 신비로움과 설렘보다는 무관심한 감정이 더욱 커진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과 멀어지는 것 같았다.


행복노트 #17

나에겐 누리고 사는 것보다 생기 있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가 머문 톨레도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졌다. 과거의 향수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도와준 곳이었다. 물론 내가 살지 않았던 아주 많이 먼 과거였지만, 오히려 그때의 삶과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었기에 더욱 즐거웠다. 아무런 현대적 기술 없던 과거에서 만족하고 살아간 사람들을 상상해 보며, 그들이 어떤 것에 행복을 느꼈을지 함께 상상해 보았다.


    '과거'에 대한 많은 생각과 함께 톨레도와 작별인사를 했다. 톨레도를 떠나 다음 행선지는 안달루시아의 대표 도시 '세비야'다. 내가 스페인에서 제일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로 항상 일 순위로 뽑는 곳이었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간직한 도시, 톨레도를 뒤로하고 세비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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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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