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담 Apr 27. 2023

스페인 세비야,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1 _ Seville,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세비야,

첫 번째 이야기: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야. 근데 어른이 되면서 노는 법을 다 잊어버려.

영화 "예스맨" 中




세비야로 가는 길



마드리드 아토차역

    톨레도에서 마드리드에 잠시 들렀다 환승해서 세비야로 넘어가는 스케줄이었다. 여행 첫날부터 비행기를 한번 놓친 뒤, 트라우마로 인해 보통 30분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 날은 무려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1시간 전이나 일찍 도착했었고, 여유 있게 역 내부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배가 조금 출출해지자 역 내부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 작은 샌드위치점을 찾았다. 그런데 샌드위치 하나가 무려 8유로(약 11,000원)에 달했다. 거기에 한 500ml 되어 보이는 음료수가 4유로(약 5,000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말 이건 순 바가지였다. 특별히 다른 대안이 없어 마음이 불편했지만 샌드위치 세트 하나에 12유로를 사용했다. 웬만하면 기차역에서 음식을 사 먹는 건 피하도록 하자.


    세비야로 가는 길도 매우 험난해질 뻔했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역 터미널 내부에서 내가 탈 기차 플랫폼 넘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기차표에는 출발시간 [13:30]으로 있었으나, 1시 20분이 지나도록 전광판에는 아무 표시가 나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혹시나 잘못 예약한 것이 아닌가 싶어 티켓의 시간과 날짜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실수한 것 같진 않은 게, 터미널 내부에는 나와 같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차 출발시간인 1시 반이 지나서야 갑자기 탑승 플랫폼 넘버가 나왔다. 기차가 연착된 것이었다. 플랫폼 넘버가 나오자마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열차에 잘 탑승했고, 세비야로 성공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보통 우리나라 서울역에서는 늦어도 탑승 시간 20분 전에는 철저히 안내해 줬던 것 같은데, 서비스에 있어 비교가 되는 부분이었다.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임을 한번 더 깨달았다.



    스페인의 넓고 건조한 땅을 가로지르는 기차는 확실히 경치를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높은 산이나 큰 언덕 없이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약 두 시간 반을 남쪽으로 달렸고, 드디어 그토록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 '세비야'에 도착했다.






현대적 건축물



    '세비야 산타 후스타'역에서도 어김없이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이었다. 마드리드보다 조금 더 남쪽으로 이동해서 그럴까 세비야의 햇빛은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숙소까지는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신발끈을 꽉 조여맨체 숙소를 향해 열심히 이동했다.


메트로폴 파라솔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우연히 세비야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메트로폴 파라솔'을 지나쳤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목조 건물로써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세비야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는 꼭 방문해야 할 필수 코스 중에 하나이다. 특히, 입장료를 지불하면 파라솔 구조물 위 산책로를 걸어 다닐 수 있으며, 26m 높이의 테라스에서 보는 노을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밤늦게까지 운영하므로 이곳에서 야경을 보는 것 또한 추천한다.


    이 건축물도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완공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XX랜드'처럼 부지 공사 도중 과거 유적이 발견되어 중단되었었다. 거기에 더해 건축되는 과정에서 시공사와의 법적, 기술적으로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며 현재의 메트로폴 파라솔을 볼 수 없을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잘 완공되어 현재는 세비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써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그 모양이 버섯을 닮아 또 다른 이름으로 '세비야의 버섯 (Setas de Sevilla)'이라 불리고 있으며, 현지인들 사이에선 그냥 '버섯 (Las Setas)'이라 불리기도 한다. 나는 항상 이런 독특한 모양을 가진 현대적 건축물들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낀다. 뉴욕의 벌집 모양을 옮겨놓은 '뉴욕 베슬', 런던의 '테이트 모던 아트 갤러리', 그리고 서울의 문화복합공간 'DDP' 같은 건물들의 예술적이고 웅장한 느낌을 좋아한다. 특히, 사람이 없는 아침 시간이나 새벽 늦은 시간에 이런 공간들을 거닐고 있으면, 꼭 꿈속 세상을 홀로 다니는 듯한 몽환적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은 현대적 건축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어놓고 얼른 도시 탐험에 나섰다. '세비야'는 내가 스페인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인만큼 마음속 두근거림이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비야를 빠듯하게 돌아다니면 하루 안에 주요 관광지는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2박 3일의 여유 있는 일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날만큼은 아무런 계획 없이 마음 이끄는 대로 걸어 다니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서 한 10분쯤 걸었을 때, 눈앞에 바로 나타난 것은 세비야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 (Guadalquivir)'이었다. '과달키비르'라는 이름은 '큰 강'을 뜻하는 아랍어 단어에서 유래하였고, 그 이름에 걸맞게 이베리아 반도에서 5번째의 긴 길이를 자랑한다.


과달키비르 강

    과거 세비야의 사람들은 이 강을 활용해 이베리아 반도 내부의 다른 도시들과 교역하였고, 더 나아가 대서양 바다로까지 진출해 항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세비야 도시 성장에 아주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강이다. 과거부터 세비야 사람들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현재도 과달키비르 강은 다양한 역할로 세비야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과거의 과달키비르 강이 세비야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졌다면, 현재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을 책임지는 듯하였다. 조정과 카약을 즐기며 강 위로 유유히 떠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세비야를 방문한 이 날은 화요일이었고, 해가 이제 막 중천을 지난 오후 약 2-3시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유를 만끽하는 세비야 사람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 위로 조깅과 사이클링 등 각종 실외활동을 즐기는 시민들이 가득하였고, 평일 오후 시간을 이렇게 취미로 보낼 수 있는 세비야 사람들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나도 여느 세비야 사람들처럼 강가 그늘 아래의 한 벤치에 앉아 혼자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야에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꼬마 두 명이 보였다. 꼬마 녀석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사소한 것에도 서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지치지 않는 그 녀석들의 체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니 아무런 세상 걱정 없이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 녀석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외동으로 자란 나에겐 세상이 정말 문자 그대로 ‘놀이터’였다. 형제가 없어 심심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름 재미있게 놀았고, 온 세상 모든 만물들은 내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어른들이 나를 보시면 항상 “너는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구나”라며 농담을 하시곤 했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전형적인 명랑하고 개구쟁이 성격을 가진 철없는 남자아이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신비함으로 가득했던 세상이 지금은 어느새 두려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책임질 것들이 늘어나고,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며, 해결책 없는 걱정이 쌓일수록 세상은 나에게 그저 시련과 고통을 주는 존재로 변모하고 있었다. 인생을 '즐기자’가 아닌 ‘버티자’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순간, 세상에서 노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 같다.


    살아오며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쟁과 비교, 갈등을 통해 나만의 개성인지 고집인지 모를 모난 부분들이 둥글둥글하게 깎여져 나간다. 완벽한 구체는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제법 잘 굴러다닐 수 있는 찌그러진 구체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모난 부분이 다른 사람들을 찔러 상처 주지 않도록 다른 부분들을 채워 포용력을 기르기도 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버티고 멀리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깎고 다듬으며, 상상을 벗어나 현실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이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꼬마 녀석들처럼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 웃을 수 있으며, 사소한 것들에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거대한 놀이터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자리 그대로 변한 것은 없다. 변한 건 우리 자신이다.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만 바뀐 것이다. 어차피 세상살이 녹록지 않다면, 마음만큼이라도 아이들처럼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삶에 대해 깊게 사유했다. 한편으로 조금 씁쓸했지만 이 시점 나에게 꼭 필요했던 생각들이었다. 여기 이 아이들만큼은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세상을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늘진 어두운 곳이 아닌 지금처럼 따뜻하고 밝은 햇빛 아래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야. 근데 어른이 되면서 노는 법을 다 잊어버려." ... 영화 "예스맨" 中

"The world is a playground. You know that when you are a kid, but somewhere along the way, everyone forgets it." ... from 'Yes Man'
행복노트 #18

한때 세상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거대한 놀이터였다면,
지금도 세상은 우리에게 늘 즐거움이 가득한 놀이터가 될 수 있다.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톨레도, "과거가 머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