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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Jun 01. 2023

스페인 코르도바,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4 _ Cordoba,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코르도바,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





즉흥적 경유지, 코르도바



    세비야에서의 즐거운 여정을 무사히 마친 뒤 다음 행선지는 스페인 남부 지중해 연안도시 '말라가 (Malaga)'였다. 이곳은 스페인 사람들의 휴양지 도시로써 나도 이곳에서 3박 4일 느긋하게 머물며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던 여행 속 작은 을 기대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말라가로 가기 위해 스페인 국영철도(Renfe) 기차 스케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눈엔 매우 생소한 도시 '코르도바'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세비야에서 말라가로 바로 가는 직통열차도 있었지만 출발시간이 멀어 많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신, 코르도바를 경유하는 열차를 타게 된다면, 지금 당장 출발해 코르도바를 약 4시간 정도 여유 있게 구경 후 말라가행 열차에 환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나는 즉흥적으로 결정해 새로운 도시 '코르도바'를 탐험하기로 했다.


"코르도바"역





코르도바 사람들







짧은 시간의 아쉬움



    즉흥적으로 선택한 나머지 코르도바에서의 일정이 짧아 아쉬웠지만, 나름 매우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피치 못할 기차 스케줄에 의해 우연히 방문하여 잠시나마 코르도바의 예쁜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여행 중 얻을 수 있었던 아주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도시 사이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코르도바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하였다.


    도시가 웅장하거나 화려한 것은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행객들이 적고,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작은 골목들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더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었고, 도시의 수수한 외관이 더 정감 있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코르도바의 한적하고 여유 있는 도시 분위기에 반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는 반나절이 아닌 며칠 동안 머물며 이곳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란다.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



내 마지막 숨을 지켜줄 사람 있을까
아직도 어딘가 난 꿈을 꾸게 돼

윤하 - Truly



    코르도바로 향하는 열차 속 창문 너머로 스페인의 넓은 평원과 드문드문 난 작은 초목들이 운치를 더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페인의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를 느낄 수 있었다. 운치가 있는 풍경을 감상하며 새롭게 추가한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즐기던 중 '윤하 - Truly' 노래가 들려왔다. 노래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가사에서 공감되는 생각들이 유난히 마음속 깊이 남아 열차 속 이동하는 내내 나도 모르게 계속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어느덧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3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여행에 대한 갈망, 특히 유럽여행에 대한 오랜 염원을 단번에 해소하듯 3주 내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남유럽 지중해성 기후 특유의 강한 햇빛과 더위 속에서도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도시를 종횡무진 누볐고 많은 발자국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바쁜 여행 스케줄 속에서 나를 점점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날씨도, 체력도, 계획도 아닌 바로 "외로움"이었다.


    사실 코르도바 여행을 시작할 즈음에 나는 기쁨과 설렘의 감정보다 마음속 왠지 모를 울적한 기분에 잠식되고 있었다. 혼자서 여행한 지 3주라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에는 점점 외로움이 드리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 들어설 때면, 저 멀리 어디선가 재밌는 농담 속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즐거운 소리가 들려왔다. 여유를 느끼기 위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따뜻한 햇살 속 푸른 나무 아래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그들만의 예쁜 추억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거리 곳곳을 거닐다 보면, 어디에서든 나이불문 수많은 커플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의 아름다운 배경이 더해져 그들의 모습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을 보며 내 마음속 자리 잡게 된 "외로움"은 혼자 하는 여행의 처연함이나 자기 연민이 아닌, 그저 이 행복한 순간을 같이 나누고 추억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한 "아쉬움"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수 윤하님의 'Truly' 노래 가사들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외로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감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감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폭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 그들과 쌓아온 깊은 관계들에 대한 생각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나는 상당히 섬세하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편이다. 외동으로 자란 탓인지 어릴 적 나는 친구들에게 사람관계에 있어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종종 큰 실망감, 배신감, 상처로 돌아올 때가 많았고, 이는 새로운 인연을 시작할 때 전혀 기대를 하지 않는 수준으로 바뀌게 되었다. 반대로 나 또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다. 많은 시행착오 속 배움을 통해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구별하는 법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고, 관계 속 불필요한 감정소모와 에너지 소비를 방지하는 법도 점차 터득하게 되었다. 관계를 대하는 섬세한 성향이 나를 더욱 내향적으로 만들었고, 결국 혼자 있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고 편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믿고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으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아주 모순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기심이 아닌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고, 그것이 당연히 최고인 줄 알고 있지만, 자칫 그것에 뒤따라올 수 있는 책임져야 할 부정적인 감정들을 소화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Truly' 노래 가사의 모순적인 내용이 내 감정을 대변하듯 특히나 많이 공감되었고,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혼자 장기간 여행을 하며 결국 '나는 절대 혼자 살 수 없겠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 행복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인연들의 존재에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저 즐거운 기억으로 그들의 삶에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과 평생의 인연으로 남기에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고단한 인생 속 웃음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행복노트 #21

비 오는 날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은 나랑 같이 무지개를 볼 자격이 있다.





코르도바의 로마 다리



    세비야에서 출발해 코르도바에 다다를 때까지 약 한 시간 남짓의 이동 중 기차 안에서 코르도바에 대해 정신없이 조사했었다. 코르도바에도 유명한 관광지가 많이 있었지만, 반나절 정도 즉흥적으로 방문하는 터라 아쉽게도 모든 곳을 방문하기엔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 많은 곳을 둘러보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며 도시의 분위기만 짧게나마 느끼기로 했고, 걷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목표지인 코르도바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로마 다리'에 다다랐다.



    이름에 "로마"가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추측할 수 있듯, 이 다리는 과거 BC 1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긴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수많은 재건축을 거친 뒤 약 AD 8세기에 지어진 모습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과달키비르강 위에 석조로 지어진 튼튼한 다리 위로 현재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지금까지 그 본연의 역할을 든든히 수행하고 있다.


    '로마 다리'를 중심으로 코르도바의 옛 과거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웅장한 성당(모스크)과 궁전들 뒤로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건물들 틈 사이사이로 사람 두세 명 겨우 지나갈 거미줄 같은 골목길들이 코르도바의 작은 장소들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적 건물들 주위로 코르도바의 신시가지 동네들이 형성되어 있다. 불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세기 전의 과거와 현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음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코르도바의 현대적 모습 그리고 과거의 모습까지 감상하며, 짧은 여행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말라가'로 향했다.


코르도바,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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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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