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5 _ Malaga,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총 25 국가 약 70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할 계획을 세우며, 스페인의 "말라가"라는 도시를 특별히 여행 계획에 추가한 이유는 단지 "쉼"이 필요해서였다. 장장 약 4개월에 달하는 여행기간을 고려하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돌아다녔다가는 여행도중 체력적으로 지쳐 쓰러짐이 분명해 보였다. 장기간의 여행을 보다 더 집중해 즐기기 위해서는 나에게 약 1주-2주 간격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무계획의, 그냥 숙소에서 쉬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날들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도를 펼쳐 여행을 시작하고 약 2주 간격으로 내가 어디쯤에 있을지 예상해 보았고, 그 근방에 사람이 적고 복잡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휴양지 위주로 도시를 찾아보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눈에 띈 곳은 스페인 본토 남쪽에 위치한 말라가였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해변에서 바다를 보며 상그리아와 함께 여유를 즐기기에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근교에 "프리힐리아나"와 같은 유명 여행지와 인접하고 있어 위치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3박 4일 동안 말라가에 머물며 장기간 여행 중 달콤한 휴식을 즐기게 되었다.
말라가의 '마리아 잠브라노' 기차역을 벗어나 도시로 한 걸음 내딛자마자 지중해 연안의 고온다습한 날씨와 소금을 머금은 듯한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여행했던 리스본, 마드리드와 같은 대도시들에 비해 말라가에서는 한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저 멀리 보이는 청량한 바다가 고된 여행자의 몸을 잠시 내려놓고 쉬고 가라며 반겨주는 듯하였다. 앞으로 말라가에서 지낼 3박 4일이 매우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양손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얼른 내려놓고 저 시원한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었다. 기차역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바다가 나를 재촉하듯 숙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점차 빨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말라가에서 바닷가만 보는 것이 아닌, 도시를 거닐며 거리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은 단연 살구색, 베이지색 톤온톤 계열로 채색된 말라가의 건물들이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도심의 높은 건물들부터 산중턱에 위치한 주택들까지 통일된 색감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중간중간 언제 지어졌을지 모를 역사가 깊어 보이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말라가에 개성을 더했다.
해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시종일관 여름 분위기의 신나는 음악들이 들려오고, 그릴의 연기와 함께 군침을 돌게 하는 길거리 음식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해변에는 맥주나 칵테일을 들고 큰 소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열심히 발리볼을 즐기는 힙한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한적한 해변으로 갈수록 책을 읽거나 조용히 일광욕을 하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한적하고 조용한 것을 선호하던 나는 다행히 이곳에서 지중해 바다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말라가에서 잊지 못할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었다. 바로 여행에서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멍청비용"을 지불하는 일이었다. 말라가에서의 둘째 날, 말라가 근교에 위치한 "네르하", "프리힐리아나"를 방문하고 저녁쯤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무더운 날씨에 멀리 가기 싫었던 나는 숙소 근처의 식당을 알아보게 되었고, 다행히 걸어서 5분 거리에 스페인 전통음식인 "빠에야 (Paella)" 맛집이 위치하고 있었다.
초저녁 조금은 붉게 물든 하늘이었다. 저 멀리 들려오는 시원한 바닷소리, 선선한 바람에 야자수 잎이 스치는 소리는 배경음악이 되었고, 나는 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며 바위언덕 아래 식당을 향해 산책했다. 식당 앞에 다다랐을 때, 맛집임을 증명하듯 식당 외부 테이블과 내부 스탠드바까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문 앞에서 서성이면 가장 친절해 보이는 종업원이 다가와주었고, 나는 종업원에게 이곳의 메인디쉬인 "해물 빠에야"를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빠에야를 포장주문할 수 있지만, 굳이 빠에야를 포장해 가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락 같은 포장트레이에 빠에야를 담아줄 것이라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빠에야 볶음 전용 무거운 팬(pan)에 담은 채 통째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냄비 보증의 일환으로 '€10 (약 ₩14,000)'를 요구했고, 나중에 냄비를 반납할 때 해당 보증금을 다시 받아가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마트에서 구매한 저렴한 와인과 함께 편하게 식사하고 싶었던 나는 고민 없이 보증금을 지불하였고, 숙소로 돌아와 빠에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행복한 저녁만찬을 즐겼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오전에 외출하며 빠에야 냄비를 반납하는 계획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길 모퉁이를 지나 건물이 나타날 때쯤, 멀리서부터 식당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이 보였고 인기척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란 마음에 식당 영업시간을 급히 검색해 보았고, 일요일인 그날은 식당이 휴업하는 날이었다. 당장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떠나야 하는 여행 스케줄상 냄비를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10'가 엄청 큰돈은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로 낭비된 것에 미리 확인해보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쓰라린 마음을 느꼈다.
그래도 식당과의 약속은 지키기 위해 문 앞 야외테이블 구석진 곳에 빠에야 냄비를 얹어놓았다. 그리고 냄비와 함께 미안함을 표하는 쪽지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 오픈할 때까지 그 누구도 냄비를 가져가지 않고 종업원이 발견하길 바랄 뿐이었다. 이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미리 정보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기로 다짐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앞으로 지출하게 될 멍청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었다.
행복노트 #22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경험"이다.
다만, 수강료가 조금 비쌀 수는 있다.
말라가에서 지냈던 숙소는 마치 B&B처럼 백발의 노부부께서 본인들의 집을 열어 운영하시는 숙소였다. 말라가를 떠나는 날 아침 설거지를 위해 키친으로 내려갔고 우연히 주인 할아버지와 마주하였다. 좋은 인상을 가진 친절한 할아버지는 멀리 동양에서 온 나를 극진히 환대해 주셨고, 몇 마디의 스몰토크 후 '앞으로의 여행과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응원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감동과 감사함을 느끼며 문 밖으로 나섰다. 말라가에서 휴식의 시간 동안 체력과 에너지는 금방 충전되었다. 좋은 기억과 교훈을 간직한 채 '말라가 마리아 잠브라노'역 오전 10시발 바르셀로나행 렌페 기차에 올라탔다.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이자 내 여행계획 속 스페인 마지막 도시인 "바르셀로나"를 기대하며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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