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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Nov 21. 2023

스페인 프리힐리아나,
"인생에 색을 더하다"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26 _ Frigiliana, Spain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페인 프리힐리아나,

인생에 색을 더하다.




    유럽의 하얀색 도시를 떠올릴 때면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산토리니를 제외하고도 하얀색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으니, 바로 스페인의 "프리힐리아나"다.


    프리힐리아나는 스페인 본토 남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중해 넓은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프리힐리아나로 가기 위해서는 말라가에서 출발해 근교 도시인 네르하로 향하는 버스를 약 한 시간 넘게 타야 한다. 네르하 시내에 들어왔다면 프리힐리아나행 버스티켓을 구매한 뒤, 약 30분 정도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버스로 환승해야 한다.


    그리스 '산토리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그런지 '프리힐리아나'로 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버스를 바꿔 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고, 말라가에 정차하는 버스 정류장도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보겠어'하는 생각에 프리힐리아나 여행에 대한 내 의지는 강했고, 휴식 일정 하루를 활용해 아침 일찍 프리힐리아나에 가기로 다짐하였다.






버스를 놓치다



    첫출발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골목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는 이른 아침의 배차를 타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네르하로 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도 숙소에서 30분은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을 겨우 움직였고, 아침을 알리는 수탉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도착하고도 버스가 한참을 오지 않자 기다리는 동안 하염없이 도로 너머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아침 피로를 이겨내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약 30분을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분명 스케줄 표에 따르면 이 시간에 이미 도착했어야 했다. 출발 시간 무려 10분 전부터 서성이며 기다렸지만 근처 어디에서도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볼 수 없었다. 배차는 1시간 단위라 다음 버스를 타려면 또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예매했던 티켓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계획에서 벗어나자 상심한 나는 숙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콩코드 효과' 때문인지 이미 씻고 준비해 나와 기다린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 새로운 버스를 한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정확히 30분 뒤, 네르하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지 1시간 만이었다. 버스 기사분께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아침에 버스가 오지 않은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아마 예정 시간보다 훨씬 일찍 정류장을 지나친 것 같다. 그래도 버스 기사분께서는 추가 요금을 받지 않으셨고, 외국인 여행객에 대한 작은 호의를 보여주시는 듯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창밖 구경을 하며 약 1시간을 달리니 네르하에 다다랐다. 프리힐리아나행 버스로 환승해 약 3시간에 걸쳐 드디어 프리힐리아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얀색 도시, 프리힐리아나


 

스페인 프리힐리아나


    프리힐리아나라는 작은 마을을 들어가는 입구부터 이곳의 특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의 모든 곳이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다. '누가 이 마을을 설계했을까?' '어떤 계기로 모든 건물을 하얀색으로 칠하게 되었을까?' 마음속 궁금증과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햇빛을 받은 쨍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갖가지 색이 하얀 벽들 사이로 수줍은 모습을 드러낸다. 꼭 흰색 도화지에 절제된 방식으로 물감을 찍으며 여백의 미를 강조한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오전 11시, 프리힐리아나에는 이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원색의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성분들이 치마를 흩날리며 인생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을의 모든 곳이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어디로 걸어가든, 어디를 사진 찍든 포토존이 되었다. 이곳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집 문 밖을 나섰을 때 깔끔한 하얀색 마을을 마주하면 내 마음까지 정화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은 조금 힘들게 느껴질 것 같다.



    프리힐리아나는 산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수많은 계단과 언덕을 넘어야 한다. 더운 날씨에 오르막길을 걷는 것은 체력 소모를 가속화시킨다. 다행히 골목이 좁아 건물 사이로 응달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겨 조금만 있어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 다니니 어느덧 마을의 대부분을 훑어볼 수 있었다. 다시 언덕을 내려와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마을의 번화가로 향했고, 깔끔한 펍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펍을 운영하시는 아저씨는 친절했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봐주시면서 환영해 주셨다. 가게에서 안주로 출시될 새로운 메뉴 또한 무료로 시식할 수 있게끔 주시면서 맛이 어떤지 물어봐주셨다. 크래커와 케이크 같은 빵이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달달하고 맛있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니 온몸의 피로가 회복되는 듯했다. 프리힐리아나에서 또 다른 즐거운 추억을 쌓은 것 같아 즐거웠다.


La Domadora y el León, CRAFT BEERS STORE





인생에 색을 더하다



    "하얀색"은 모든 빛을 반사하는 색으로써, 가장 밝은 색이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깨끗함" "고결" "순결" 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깨끗하고 고귀한 것도 좋지만, 만약 그 하얀색에 작은 얼룩이 묻었을 때 과연 그것의 가치는 떨어지는 걸까? 그 아름다움을 해치는 걸까?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한동안 마음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여느 다른 때와 같이 아무런 의욕 없이 침대에 누워 유튜브만 하염없이 보고 있던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는 한 영상이 있었다.


'20대 꼭 보세요. 인생을 어떻게 살지 몰라서 힘들 때 반드시 힘이 납니다.'


    평소 자기계발 도서와 동기부여 영상을 많이 봐왔던 나는 영상 제목에 호기심을 느꼈다. 꼭 지금의 내 상황에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다. 마음속 작은 기대와 함께 영상을 감상하였고, 영상이 끝날쯤에는 가슴속 두근거림과 함께 큰 영감을 얻은 채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상 제작자 분은 '"인생"이라는 팔레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다양한 색깔들을 발견하고, 하얀색 도화지에 그 색깔들을 하나씩 칠해가는 것, 그렇게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황하기보다는 일단 작게나마도 관심 있는 일부터 하나씩 시도해 보는 것, 성공과 실패 결과 상관없이 그냥 도전해 보는 것이 영상 속의 핵심 메시지이다.


    인생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고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단번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하고 누리면서 다채롭게 사는 것이 내가 가야 할 인생의 방향임을 알 수 있었다. 명작이든 아니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20대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내 작품을 사랑하고 완성시키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죽기 전 인생을 뒤돌아보았을 때, '나 참 재미있게 살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행복노트 #23

무슨 색이든 상관없어. 일단 물감을 짜. 그럼 알게 될 거야. 다음엔 무슨 색을 골라야 할지.
('"20대 꼭 보세요. 인생을 어떻게 살지 몰라서 힘들 때 반드시 힘이 납니다." by 인생의지름길 쇼컷')


    어릴 때의 순수하고 깨끗한 하얀색 도화지 같은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게 된다. 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고 다양한 얼룩들이 묻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 얼룩을 활용해 색을 채워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애써 하얀 여백의 공간을 최대한 지키려 노력한다. 


    어떤 그림이 더 예쁜지 안 예쁜지는 모두 각자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음으로 정답은 없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면, 절대적으로 더 나은 그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색깔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된다. 


    흰색의 도시 프리힐리아나를 여행하며 하얀 배경 사이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고 알록달록한 색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색의 매력을 더욱 느낄 수 있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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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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