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6 _ Interlaken,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알프스 산맥은 유럽 가장 중심에 있는 산맥이며, '유럽의 지붕'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진다. 넓은 산맥의 면적은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다양한 유럽 국가들에 걸쳐 있으며, 스위스는 이런 알프스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나라이다.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은 이런 알프스의 웅장한 자연환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즐기기 위해 스위스를 방문하게 된다.
나도 여타 다른 많은 관광객들처럼 스위스의 아름다운 경관과 알프스를 즐기기 위해 스위스를 찾았다. 높은 알프스 산맥을 따라 펼쳐져있는 푸릇한 초원을 상상했고, 깊은 숲 속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스위스 전통 가옥들을 기대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잘 느낄 수 없고, 알프스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웅장한 감성을 느끼고 싶었기에 스위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알프스의 여러 명산들 중 관광으로 가장 유명한 산 봉우리는 '융프라우요흐 (Jungfraujoch)'다. 산 꼭대기 봉우리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산악열차가 설치되어 있고, 올라가는 길 내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융프라우요흐에 방문하기 위해 반드시 들려야 하는 도시가 있으니 바로 '인터라켄'이다.
스위스의 소도시 인터라켄은 반나절 정도 가볍게 산책하면 도시를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면적에 비해 도시를 방문하는 여타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도시 중심부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복잡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마치 아무도 몰랐을 고요하고 평온했던 한 산골마을 작은 도시가 어떤 계기로 인해 많은 이방인들로부터 침범당해 평화로웠던 일상이 정신없는 날들로 바뀐 느낌이었다.
물론, 매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만큼 활발한 경제활동과 관광수입을 통한 이득을 볼 것으로 짐작되기에 주민들에게는 여러 의미로 호재일 수 있다. 그러나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생성된 소음과 혼잡한 환경은 새로운 공해가 되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외지인들로 인해 일상의 불편함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라켄을 산책하며 느꼈던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인'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인터라켄을 방문할 당시 '22년 코로나가 막 끝나는 시점이었고, 유럽 전역에서 한국인을 포함 아시아인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스위스 이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를 약 한 달여간 여행하였지만, 아시아인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특히 한국인은 더더욱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 전역에 있을 한국인이 마치 '인터라켄'에 다 모여있는 듯, 인터라켄에는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을 만남에 반갑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 중에는 이상하게 한국인들보다 '외국인'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물론, 어떤 사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행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는 종종 부담감이 느껴진다. 여행지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어떠한 편견 속에서 자유로운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더 즐거운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과거에는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이 반가워 인사하며 대화하고 같이 여행하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면, 이제는 관광이 많이 보편화되었기에 서로 한국인임을 단번에 알아보지만 모르는 척하며 지나가는 재미있는 하루였다.
인터라켄 중심부에서 걸은지 약 30분이 지났을까,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사람들이 없는 한가로운 마을과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조용하고 평화로운 알프스의 자연 분위기를 혼자서 만끽할 수 있었다. 바다인지 구별이 안 될 만큼 드넓고 푸릇한 호수가 눈앞에 있었고,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마치 호수를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인터라켄(Interlaken)은 그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독일어로 '두 호수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Thurnersee'와 'Brienzersee' 두 호수가 인터라켄 마을을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두 호수는 마을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펼쳐진 모양임에 흥미로웠고, 그 모양만큼이나 인터라켄 마을을 높이 불리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고 복잡한 환경을 벗어나, 호수가 일렁이는 모습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산들 사이로 서서히 저물어 명암을 형성하는 햇빛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마치 인터라켄 마을 양 옆에 있는 두 호수처럼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으며,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다. 이렇게 대척점에 있는 두 가지를 두고 동전의 양면을 나누듯 극단적으로 분류하고 구별하는 오류를 쉽게 범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이 극단적인 이분법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양극화된 정치적 성향이 야기한 갈등이 있었으며, 단순한 잣대로 편을 나누어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 없어져야 할 적으로 간주했다. 분명히 세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오른쪽, 왼쪽뿐 아니라 위, 아래도 있고, 낮과 밤 사이에 새벽과 저녁이 있으며, 하물며 동전에도 테두리 면이 있다. 이렇듯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대단히 경계해야 하며, 다른 쪽의 존재도 인정하여 공존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브라이언 헤어, 바네사 우즈 작가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사람은 생존을 위해 적으로 간주하는 집단을 자연스레 비인간화하여 그들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본능을 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공격했던 집단은 적자생존으로 살아남기보단 오히려 주위 적들을 많이 만들어 생존에 불리했고, 반대로 최대한 다양한 집단과 접촉하고 교류했던 집단은 상호보완하며 현대의 발전적인 사회를 형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p.300
이런 거창한 이론적 설명 없이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는 이유는 단순히 '본인이 틀리지 않았음'을 집착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의 존재만으로 본인의 존재와 가치가 큰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대척점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중 한쪽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빛과 어둠 명암이 있어야 물체를 볼 수 있으며, 그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빛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듯 양끝 사이를 이루고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관용의 자세로 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라 생각한다.
인터라켄 호수 옆 벤치에 앉아 해 지는 노을을 본 지 약 1시간이 지났을까, 어두움이 점점 짙게 드리움에 따라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스위스의 악명 높은 물가를 생각해 감히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 소소한 저녁거리와 맥주 몇 캔을 사들고 들어왔다.
내가 머물렀던 인터라켄 숙소에는 옥상 테라스가 있었다.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 후, 테라스로 올라가 맥주를 마시며 인터라켄 마을 풍경과 석양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또 다른 여행객 한 명 앉아 있었고, 괜히 대화를 해보고 싶음에 용기 있게 먼저 가서 말을 걸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혼자 여행 온 이 친구도 노을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얘기했다. 본인의 할머니가 헝가리 분이라 본인도 유럽국가 시민권을 신청해 유럽으로 이민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에는 교류하지 않는 먼 친척만 있을 뿐 사실상 연고도 친구도 없는 그런 낯선 땅이라 고민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타지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있어 많은 공감이 들었다. 과거 나도 미국에서 혼자 유학할 당시, 가족과 친구가 없어 두려움에도 꿈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일까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며 금방 친해졌고 깊은 대화로 이어지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여행의 이유이자 생각의 주제인 "행복"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싶어서 지금 혼자 여행한다고 설명했고, 인생을 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그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생각에 잠겼다.
Happiness, it cannot be a state of constant euphoria.
It is only a moment.
Just enjoy those special moments.
그리고 그 친구가 나한테 해준 말이었다. 행복은 지속적일 수 없으며, 순간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감정들이라 얘기했다. 그렇기에 행복은 희귀하고, 그 희귀성에서 큰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왜 나는 항상 행복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조금 전 말한 명암처럼 삶의 힘듦과 고통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고, 그 어두운 순간들 덕분에 행복한 순간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행복한 순간이 희귀하고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희귀하고 소중하다.
인생에 밝은 순간만 있다고 해서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두운 순간들을 극복하며 스스로 더욱 단단해지고, 그때 느낀 감정과 생각을 통해 다른 이들과 보다 더욱 깊게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고, 인생에 새로운 사건들을 마주할 때 더욱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즉, 어두운 순간들 덕분에 밝은 순간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행복한 감정을 더욱더 깊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인생의 어두운 부분들까지 사랑하기로 했다. 그 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고, 좋은 순간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행복노트 #33
'빛'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둠'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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