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7 _ Jungfrau,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유럽의 지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위스의 융프라우로 올라가기 위해 조금은 복잡한 산악열차 여행코스를 숙지해야 한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일반적인 여행객들은 스위스 다양한 도시들과 철도로 연결되어 있는 '인터라켄'에 먼저 도착할 것이다. 융프라우행 산악열차의 기점이 되는 곳이며, 인터라켄 동역에서 융프라우까지 올라가는 '6-way train ticket'을 구매할 수 있다. 산악열차를 총 6번 탑승해야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기에 '6-way train ticket'인 것이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티켓을 구매했다면,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린델발트'를 거쳐서 올라가는 방법과 '라우터브루넨'을 거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어느 마을을 거치게 되든 그 끝에는 '융프라우요흐'에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클라이네샤이덱'이라는 곳으로 모이기에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보통은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코스를 다르게 선택해 두 마을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게끔 계획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도 올라갈 때는 '라우터브루넨' 내려올 때는 '그린델발트' 코스를 선택해 모두 둘러보았고, 두 마을 다 꼭 방문해야 할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들이었다. 특히, 산악열차 표값이 20만원 정도의 거금이기에 되도록 두 마을 다 방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융프라우를 왕복으로 다녀오기 위해 각각 약 40분 시간이 소요되는 기차를 총 6번 타야 한다. 탑승객의 대부분이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여행객들이며, 계속 같은 열차로 환승하고 마주치기에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을 익히게 된다. 특히, 여러 번의 환승이 필요한 복잡한 코스이기에 주변에 계속해서 그들이 보이면 내가 맞는 열차를 탔음에 안심하게 되고, 승강장에서 다음 열차를 찾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여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융프라우를 다녀오는 기차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행복한 대화를 나눴던 추억이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모두 친절히 응해주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기차 안 가족들과 떨어져 우연히 내 옆 자리에 앉게 된 남자 꼬마아이가 있었다. 가족들이 멀리 있었기에 내심 불안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에게 씩씩한 웃음을 보이는 이 꼬마가 귀엽고 대견했다. 나는 이 친구가 안심하며 재미있는 여행 추억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인도에서 온 이 친구는 가족들과 2주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시선에서 보는 유럽은 어떨지 궁금해졌고, 그 아이가 여행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이 친구는 이탈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넘어왔고, 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도시들을 여행하였다. 인도의 공기가 안 좋기에 유럽의 이런 맑은 공기를 부러워했고, 또한 환경이 좋음에 이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자기는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 환경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여행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을 자신의 꿈으로 삼게 될 만큼 시선을 넓혀주는 '여행의 힘'이 대단하다 느껴졌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그 친구를 보며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금방 30분이 지나 도착역에 다다랐고, 헤어지기 전 그 친구는 해맑은 아이 웃음으로 좋은 여행을 하라며 나에게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다른 기차 안에서 나는 마주 앉게 된 한 노부부를 만났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구경하며 마치 아이의 눈동자를 한 그들에게 문득 먼저 말을 걸고 싶어졌다. 이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 트래킹 후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스위스를 들린 것이라 했다. 나이가 있음에 체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걷는 내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음에 좋았고, 스스로를 많이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살아오며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도 많이 하고, 지금은 은퇴 후 또 새로운 일을 생각하며 일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유학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삶에 대한 연륜이 느껴지는 이분들에게 나는 20대로써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그분들에게 여쭤보았다. 그분들은 나에게 젊을 때 최대한 많은 것들에 부딪혀보고 도전해 보라는 조언을 주었다. 각 나이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다 다르고, 기회는 한 번 지나가면 절대 돌아오지 않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할까 말까 할 때는 웬만하면 모두 해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지금 하는 나의 여행이 훗날 내 인생에 엄청 큰 자산이 될 것이니 지금 여행하는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라고 말씀하셨다.
여행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진 아이'와 '과거를 돌이켜 본 어른' 각자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을 다른 시선에서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들과의 대화 속 공통점은 '꿈'이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삶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눈은 매우 빛났다.
행복노트 #34
'꿈'이 있는 사람의 눈은 밝고 빛난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해 라우터브루넨, 클라이네샤이덱을 지나 최종 목적지인 '융프라우'에 올라오는데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초록빛 넓은 초원을 지나 급경사를 오르는 터널을 가로질러 산악열차는 해발 3454m의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고도가 높아 산소가 적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온도도 한겨울 날씨처럼 차갑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고산병 증세를 난생처음 경험해 보았고, 또한 머무는 동안에 집중력이 다소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점진적으로 계속 어지러워졌기에 얼른 구경하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융프라우에 있는 어둡고 차가운 얼음궁전을 지나 겨우 햇빛이 드는 밖으로 나갔을 때 아름다운 알프스 전경을 마주할 수 있다.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있는 산들과 높은 해발고도에 따른 만년설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힘든 고산병 증세를 이겨낼 만큼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하얀색 만년설이 비추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 눈이 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조금도 놓치기 싫어 열심히 눈에 힘을 주며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즐기고 있던 감동을 바로 깨버리는 방해요소가 등장했다. 바로 시끄러운 여행객들이었다.
특히, 단체투어를 하며 등산복을 입은 한국 여행객들의 소음이 가장 심했다. 단체로 와서 그럴까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다른 이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대한 잘못됨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순간들이었다.
사실 여행을 하며 이런 비매너적인 여행객들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경험이 많다. 특히 타국의 여행객들이 아닌 한국 여행객들의 비매너적 행동을 볼 때마다 대신 수치스러웠던 적이 많다. 해외에서 행하는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국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봤을 때, 기본적인 매너조차 지키지 못하는 한국 여행객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여행 때문에 들뜬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도 즐기는 관광지이자 공공장소인 만큼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조심히 행동하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여행 전 그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이나 문화에 대한 지식을 미리 숙지하고 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국격을 더욱 높이기 위해 보다 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다 같이 여행매너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것은 어떨까.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융프라우'에서 다시 '클라이네샤이덱'으로 내려왔고, 인터라켄으로 되돌아갈 때는 가보지 않은 마을 '그린델발트'를 경유하기 위해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클라이네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까지 내려가는 트래킹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접하였고, 문득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보다는 왠지 걸어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트래킹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일반 스니커즈 슈즈였으며, 인터넷 데이터도 연결되지 않아 리스크가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기차를 타고 바로 하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풍경이었으며, 조금 더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때 그냥 포기하는 내가 아닌 걸 스스로 잘 알기에, 그렇게 즉흥적으로 4시간의 트래킹 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6월 여름의 쨍한 햇빛아래 내려가는 길 내내 뜨거움으로 고통받았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안 즐긴 순간이 없었다. 걸어내려 가며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이었으며, 하산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행복하다'는 생각만 가득하였다. 푯말을 보며 길을 찾는 재미가 있었고, 종종 마주치는 트래킹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남들이 쉬이 가보지 않는 곳을 탐험한다는 것에 설레었다.
만약 기차로 내려갔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작은 집들, 신기한 모양의 나무들,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만나며 성큼성큼 트래킹 코스를 내려갔다. 가끔 너무 더워 지칠 때면 여유롭게 그늘에 앉아 다시 풍경을 즐기고, 중간중간 흐르는 작은 개울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우물에서 목을 축이기도 하였다. 예쁜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사진 찍는 것도 있지 않았으며, 정말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트래킹 코스의 끝지점인 '그린델발트'에 거의 다다랐을 때, 산 중턱 마을을 하나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있는 한 집에서 노부부가 두 손을 꼬옥 잡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걸 보았다. 나이가 지긋이 들었음에도 갓 만나기 시작한 연인처럼 외출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었고, 그 뒷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해외를 여행하다 보면 손을 잡고 다니는 나이가 지긋한 커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이에 국한되지 않은 그들의 애정표현을 볼 때마다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국내에서는 남사스럽다는 이유로 애정표현을 기피하는 분위기지만, 서양 문화권에서는 인식이 달라 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나이가 들었을 때 하는 애정 표현들을 보면 오히려 서로 너무 존중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사랑의 깊이 또한 보인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됐음에도 끊임없이 마음을 표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깊어진다. 상대방에게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음에 시간이 지나도 관계가 안정됨을 느끼고, 스스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확인하며 더욱 특별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그만큼 '표현하는 것'은 사랑을 느끼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그들의 이런 애정을 표현하는 문화를 배우며, 먼 훗날 미래에 나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끔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행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트래킹 코스를 즉흥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런 소중한 모습들을 보거나 생각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융프라우를 방문하며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접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할 많은 주제들을 찾았던 뜻깊은 여행이었다. 앞으로 다양한 사건들로 채울 내 인생의 미래가 기대되고, 적어도 그 인생이 즐거울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언젠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같이 인생을 탐구하는 젊은 청년에게 재미있는 인생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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