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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Jul 13. 2024

스위스 루체른,
"당연하지 않은 것들"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8 _ Lucerne,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위스 루체른,

당연하지 않은 것들.




    유럽 알프스 산맥의 중심이 되는 스위스 '융프라우'를 구경하고, '인터라켄'으로 내려와 스위스의 다음 여행도시인 '루체른'으로 향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해 기차로 약 두 시간정도 떨어져 있는 루체른으로 가는 동안 다시 한번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에 매 순간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Interlaken, Switzerland


    루체른으로 향하는 여정 중 비도 내리며 스위스의 흐린 날씨를 경험하였다. 비가 내리는 날씨는 맑은 날씨와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멀리 시야가 도달하지 않아 바로 앞에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기찻길 옆으로 심어진 잔디들, 거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전봇대들, 누가 볼까 싶은 작은 팻말들. 무심코 당연하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또한 그 풍경을 구성하여 이루는 소중한 일원이다.






스위스 루체른



    흐린 날씨, 하늘을 덮은 구름과 옅은 어둠 아래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고,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오후 기차는 루체른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분명 기차에서 봤던 흐린 하늘과 다르게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이 루체른을 스쳐가는 이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Lucerne, Switzerland


    지금껏 제네바, 인터라켄처럼 호수 옆에 있는 스위스의 도시들을 방문해서 그럴까 이제는 스위스의 투명하고 청정한 호수, 강물 색깔에 예전과는 같지 않은 작은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스위스 루체른의 경우, 개인적으로 제네바의 호수 쪽 부분만 따로 떼어서 가져다 놓은 것 마냥 제네바와 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독일, 프랑스의 건물 양식들을 섞어놓은 듯한 도시 경관은 충분히 방문할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루체른'은 스위스 '취리히'로 향하는 동선 안에 있어 잠깐 들른 것이기에 약 반나절 정도의 짧은 일정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규모가 크지 않고, 둘러볼 관광 스팟도 정해져 있기에 약 3시간이면 웬만한 유명한 곳들은 다 둘러볼 수 있다.


Chapel Bridge, Lucerne


    처음 루체른 역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나의 시선을 이끈 게 있다. 루체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펠교’다. 카펠교는 1333년에 지어져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이며, 280m 길이로 가장 긴 목조다리이다. 카펠교 위는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여름에도 햇빛을 피해 시원한 강바람을 느끼며 건널 수 있다. 또한 각 지붕 중심면에 스위스의 중요한 역사와 루체른을 대표하는 성인의 일대기를 다룬 그림들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하며 건너다보면 금세 280m를 지나 끝지점에 도달해 있다.


    루체른과 접하고 있는 로이스 강 위에는 수많은 요트와 유람선들이 떠다니고 있다. 로이스 강과 알프스 산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절경을 선사하고, 강을 따라 수많은 고급 호텔들이 편안함을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관광지를 선호하고, 사람이 많이 없는 한적한 스위스 휴양 도시를 선호한다면 스위스 루체른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Reuss River





당연하지 않은 것들



“스위스”


    스위스 사람들에게 한글로 쓰인 국가명을 보여주었을 때, 그 모양이 꼭 '두 산 사이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그 모양이 '스위스라는 나라를 정말 잘 표현하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현재의 스위스는 금융업, 공업 등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사는 국가 중 하나이며, 스위스 국가에 대한 인식 또한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스위스에 대해 떠올릴 때, 알프스와 같은 매력적이고 평화로운 자연환경을 떠올리는 반면, 또 다른 한편으론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 선진국, 중립국 등 좋은 단어들을 많이 연상하게 된다. 이처럼 현대 스위스의 높은 국가 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과거 중세시대만 해도 스위스 지역은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변두리 지역 중 하나였다.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서 마을끼리의 교류가 힘들었기에 산업이 발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농업, 목축업에도 적합하지 않았으며, 인구수도 적어 강대국으로 발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약이 따르는 환경 속에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용병업"이었다. 험한 자연환경 속 단련된 육체, 강인한 정신력,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강한 전투력이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적 앞에서나 용맹하게 전투를 치렀기에 '스위스 용병'에 대한 평판은 유럽 전역에서 늘 최고였다. 스위스 사람들도 그 부분에 있어 높은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위스 용병들은 절대 고용주를 배신하지 않으며, 설령 죽게 되더라도 그 계약을 이행한다는 것에 크나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 루체른

    역사적으로 수많은 유명한 일화가 있지만 대표적인 사건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15세기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이 있던 로마로 침공했을 때, 엄청난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을 보호하겠다는 맹세를 하였고, 거의 전멸할 때까지 전투에 임했던 일화가 있다. 이때 교황의 깊은 신임을 얻어 현재까지도 바티칸 교황청은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고 있다.


    두 번째는 18세기 프랑스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들이 루이 16세의 튈르리 궁으로 습격했을 때,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본분을 이행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들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스위스 '루체른'에는 '빈사의 사자상'이 세워졌고, 조각 속 사자의 심장이 꿰뚫려 있음에도 프랑스 부르봉 왕가 가문의 방패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두 일화의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이미 패색이 짙어져 결과가 정해진 상황 속 고용주였던 교황 그리고 루이 16세는 저항하기를 포기한 채 스위스 근위대에게 그만 고국으로 돌아가 목숨을 부지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스위스 근위대는 도망치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 신의를 지켰다. 그 이유는 바로 고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앞으로 살아나갈 후손들위함이었다.


    자원과 산업이 없는 스위스 지역에서 '용병업'만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유일한 수입의 원천이었기에 정말 목숨을 걸어야만 가정을 먹여 살리고 지켜낼 수 있었다. 그들은 혹여나 '스위스 용병'의 평판이 떨어질까 봐 늘 걱정했고, 후대들의 생업을 지켜주기 위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했다. 본인의 안위안식, 생존에 대한 본능을 억누르고 후손과 명예를 지키고자 고귀한 희생을 선택했다. 차원 높은 그들의 가치관과 헤아림 그리고 그들의 업적들로 인해 현재도 '스위스 용병'은 높이 칭송받고 있다.


    스위스 역사를 알고 나니, 현재 스위스가 누리고 있는 많은 풍요로움이 먼 과거 희생했던 조상들의 '고귀한 염원이 이뤄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절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본인의 삶보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삶을 포기하겠다는 결단이다. 사람의 생존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깊은 가치관이 형성돼 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과연 그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나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과거 수많은 침략을 받으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대 약 100년 전, '일제강점기' 치하 속 서러운 역사가 있고, 약 70년 전, 사상의 차이로 한 민족끼리 피를 흘린 가슴 아픈 '한국전쟁'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런 난세 속에서 영웅들은 늘 존재했다. 대의를 위해, 국가를 위해,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후손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본인의 삶을 희생했고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진정으로 지켰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 속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의 의행을 매우 존경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부터 생각할 때, 그들은 '신념'을 택했다. 그들의 신념과 행동은 절대 아무에게나 나올 수 없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내가 가진 가치관과 후대를 위해 나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했다. 과거 미국에서 모든 걸 그만두고 군 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올 당시, 18개월 복무에 불만을 가질 법도 했다. 그러나 과거 난세에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후대를 위해 목숨 걸고 희생하신 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 비하면 내가 하는 복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쁜 마음으로 입대했었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희생으로 지켜지고 남겨진 위대한 유산들을 잘 보존해야 할 의무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누리는 것에 있어서 만족을 못할 수 있지만, 우리가 현재 가진 이 모든 것들은 절대 당연한 것들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토대 속 피어난 꽃이며 열매이자 나무인 것이다.


행복노트 #35

우리가 누리는 모든 당연한 것들을 위해 누군가의 고귀한 헌신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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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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