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담 Jul 27. 2024

스위스 루가노,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40 _ Lugano, Switzerland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스위스 루가노,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




    기차를 타고 여행하며 먼 곳을 응시하는 것, 눈은 풍경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현실너머 생각의 심연에 있다. 현실과 자아가 분리되어 순간적으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극히 사적인 세계 혹은 사고의 차원으로 여행을 잠깐 떠나오는 느낌이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체적으로 휴대폰을 덮어두고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동시에 늘 이어폰을 착용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감성을 더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흘러가는 현실 속 나만의 특별한 환경을 만들어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고, 그 생각의 가지가 퍼져나가 다양한 사고를 하는 것. 나에겐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비효율적이고 느린 차편을 선택해 천천히 가는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평소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현실과 사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이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들을 확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그릇을 키우고, 인격적으로 성숙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풍부한 삶의 경험치'와 '깊고 넓은 사고의 틀'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생각한다.





이탈리아를 담은 도시, 루가노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던 당시, 왠지 사람들에겐 덜 알려진 나만의 특별한 여행 장소를 찾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럽 내에서 도시들끼리 기차 교통편이 잘 연결되어 있기에, 구글맵 스위스 지도를 펼쳐놓고 기찻길을 따라가며 보이는 도시들 이름을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웹에 올라온 사진들과 거리뷰 이미지들을 참고하며 그렇게 발견한 도시가 스위스 루가노였다.


    호수를 배경으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느낌이 맘에 들었다. 생각했던 스위스와 다른 풍경을 가진 루가노 도시에 흥미가 생겼고, 누군가 여행하며 대충 찍었을 사진들조차 예쁘게 보였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접하기 때문에 스위스 보다는 이탈리아의 풍경과 똑 닮아있었고, 사람들도 이탈리아어를 써 이탈리아의 정체성이 다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였다. 스위스 다음 여행 목적지는 이탈리아였기에 그 길목에 위치한 루가노를 잠깐 들르기로 마음먹었다.


    약 2주간의 스위스 여행을 거의 마치고 스위스를 떠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도시를 둘러싼 자연들을 보며 많은 힐링을 했던 좋은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방문하지 못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스위스 여행 마지막 도시인 루가노로 향했다.


    취리히를 떠나 점점 남쪽으로 향할수록 지금까지 봐왔던 스위스 도시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의 건축 양식이 이탈리아와 닮아가며 어느 순간 '내가 이미 이탈리아에 도착해 있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과거 이탈리아 영토였던 곳이 스위스 연방에 합류했기에 이곳은 사실상 이탈리아와 아주 흡사한 정체성을 가진 것이다. 


    스위스 연방은 확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 험준한 알프스 산맥 속 위치했던 마을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높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산과 물, 자연밖에 없는 이곳에 강했던 주변 국가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롭던 이곳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제국이 13세기 침략하였고, 이에 반발한 여러 지역들이 동맹을 형성함으로써 스위스 연방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로도 끊임없는 주변의 간섭과 침공, 전쟁 등으로 자치권에 위협을 받자 시간이 흐를수록 해당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동맹에 동의하는 지역들이 많아졌고, 조금씩 천천히 스위스 연방은 확대되어 그 영역을 넓혔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로 인해 지금도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지역 자치권이며 그들의 정체성을 중앙정부에서 함부로 통제할 수 없고, 지역적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


Lugano, Switzerland


    이탈리아 정체성을 가진 루가노에 도착하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언덕들이었다. 스위스 지리의 특징인 것 같으나 늘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엔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언덕을 따라 마을들이 형성돼 있다. 루가노 기차역도 높은 언덕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번화가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과 도로를 꽤나 내려가야 했다. 


    특히 한 손에는 짐가방이,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지 10분 만에 체력은 바닥을 향했다. 가파른 경사의 언덕길과 걷기에 불편한 돌로 이루어진 도로는 빠른 속도로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여유롭게 도시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만 슬쩍 둘러보고 남은 시간 동안은 그저 언덕 위에 앉아 탁 트인 풍경을 감상했다.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



    스위스가 지역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존중하기에 그에 따라 스위스는 4개의 공용어를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근접해 있는 국가의 언어를 사용한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프랑스와 근접해 있는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를, 이탈리아에 근접해 있는 지역에서는 이탈리아어를,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지만 로망슈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기에 이렇게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언어를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들어와 스위스 중앙부를 여행하고, 또다시 남쪽으로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분명 제네바에서는 프랑스어로 된 표지판을 보았지만, 어느 순간 독일어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그 끝에 루가노에 닿아서는 이탈리아어로 변했다. 한 나라 안에서 다양한 언어가 쓰이는 게 너무나도 재밌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소통에 있어 그들이 가진 불편함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위스 연방 주별로 각자의 공용어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스위스 정부는 늘 지역 별 언어와 문화 등 각각의 특색을 유지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문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사용해야 하며, 교육 과정에서 다른 공용어를 1개 이상 의무적으로 가르치게끔 만들었다.


To learn a language is to have one more window
from which to look at the world.



    다양한 언어를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는 스위스의 환경이 개인적으로 부럽게만 느껴졌다. 사실상 해당 언어들을 모두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최소 중급 이상의 실력을 보유할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영어까지 더해 기본적으로 3개 국어 이상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있다. 많은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다중언어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짧게 태국을 여행했던 기억이 있다. 내 인생에 있어 첫 해외경험이었다. 그 때면 한국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애기였을 때지만 공항에서 나와는 다른 언어들을 구사하는 많은 외국인들을 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세계관을 확장해 세상은 넓다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자라오며 외국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되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었다. 주한미군과 관련된 사람들을 알게 되어 생소했던 미국 문화를 접하고, 그들과 어울리며 외국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또한 중학교 당시 미국인 가정에 짧게 홈스테이를 다녀오며, 외국어를 통해 외국인과 생각을 공유하며 내 세계관을 더욱 확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외국어에 대한 재미필요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걸 좋아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걸 좋아했다. 그중 하나가 적극적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흥미가 가지 않는 과목들은 공부하기 싫어 성적이 낮았지만, 늘 영어만큼은 내가 애정하고 진심으로 공부하는 과목이었다. 물론, 문법 중심의 한국식 영어교육은 혐오했지만, 읽고 말하고 듣고 이해하는 직접적인 영어는 매우 좋아했다. 그 끝에 영어에 대한 도전과 욕심으로 결국 미국 학부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문화를 흡수하는 과정이다. 문장의 구조와 단어 등을 배우며 언어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문화와 철학, 사고의 방식을 알게 된다. 단어의 기원이나 관용구의 쓰임새 등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알 수 있다. 또한 해당 언어권의 사람들과 직접 소통함으로 그들의 문화에 노출되고 세상을 이해하는 영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다.


행복노트 #37

외국어를 통해 훨씬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세상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른 언어들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스페인어(중남미), 프랑스어(아프리카), 독일어(유럽)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독일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라틴어 계열이기 때문에 영어와 비슷한 단어를 많이 공유하여 금방 배울 수 있었다. 2년 정도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1년간 프랑스어를 공부해 현재 중상급 자격증을 목표에 두고 있다. 아직 자유로운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유럽여행하며 알림이나 표지판 정도는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음에 큰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꼈다.


    현재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수화'까지 7개 언어 꿈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해당 언어들을 모두 구사할 수 있는 나를 기대하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Gate on Lake Lugano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위스 취리히,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