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55 _ Vatican City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UN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195개의 국가들 중 가장 작은 나라가 있다. 면적이 0.44 제곱 킬로미터에 그쳐 서울의 경복궁보다는 약간 더 큰 정도이며, 인구는 채 1,0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의 영향력만큼은 여타 다른 어느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고, 각국의 많은 정상들이 이 나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작지만 큰 나라는 '바티칸'이다.
우리는 '바티칸 시국'을 교과서를 통해서 그리고 뉴스를 통해서 수없이 접해왔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교황이 사는 국가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바티칸의 역사는 2천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됐다. 로마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바티칸은 4세기경 로마의 성 베드로 무덤 위에 처음 성당이 세워졌고 이곳은 금세 신성시되었다. 성 베드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자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던 인물이다. 숱한 기적을 목격하고 종교적 교리를 직접 배웠던 그는 삶의 끝 순교할 때까지 1세대 교회를 이끄는 데에만 집중한 장본인이며, 현재 초대 교황으로 추대받고 있다. 14세기말 무렵 교황청이 바티칸 시국으로 돌아온 뒤 이곳에는 성 베드로 성당, 시스티나 성당 등의 경이로운 건물들이 지어지며 현재까지 가톨릭 천주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교황(敎皇)의 뜻은 '가르칠 교'에 '임금 황'이다. 즉, 세상의 시선에서 해석하자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종교 지도자'라는 뜻이다. 가톨릭 종교가 오랜 기간 유럽과 서양 국가들에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현대에도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관심을 받으며, 한 종교의 지도자답게 작은 언행과 행동에 존경받기도 다른 한편으론 책망받기도 하는 무거운 자리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톨릭 인구가 많은 국가들을 제외하고도 그는 대체적으로 어느 국가에서나 귀빈 대접을 받는데, 그의 정치적 영향력도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가톨릭 종교도 어떤 영향력이나 권력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인 것이다.
제일 아래에는 일반 신도들이 있고, 그 위로 사제들, 그리고 그 위에는 주교들, 그 위에는 추기경들, 그리고 그 끝에는 교황이 있는 구조다. 이는 교황을 중심으로 종교가 중앙집권화가 된 결과인데, 전 세계 어디서나 가톨릭 종교와 성당은 교황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같은 종교적 뿌리에서 시작된 '이슬람'이나 '유대교'에도 종교 지도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국가 혹은 분파 단위에서 그치거나 심지어 그 안에서도 종교적 갈등이 있는 등 가톨릭처럼 한 종교 전체를 아우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징적 인물은 없다.
이렇게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그런지 종교가 절대권력을 가졌던 중세시대에는 교황의 과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존경받지 못할 악행과 착취를 저질렀고, 결과적으로 왕들과 대립한다거나 각지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등 점점 그 힘을 잃어갔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었고, 가톨릭 교회도 세속적 간섭을 되도록 지양하고 종교적 활동에만 집중하는 등 그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가는 추세다. 근래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세대를 반영하여 파격적이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발언과 행동을 통해 기존 가톨릭의 보수적이었던 이미지는 다시 점차 우호적으로 변화 중에 있으며, 대중의 민심은 이런 열려있는 교황을 향해 호감을 키워가는 중이다.
내가 로마를 방문했던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이 바티칸 시국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이 위치한 곳이며, 이곳이 주는 어떤 종교적 상징과 의미를 느끼고 싶었다. 또한 '혹시나 교황을 직접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유치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드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나라다. 너무 자그마하다 보니 방금 국경을 지난 건지, 이곳이 로마인지 바티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명목상으로는 국가이지만, 사실상 상징적 의미로 국가가 된 작은 동네에 더 가깝다. 약 1천 명 국민의 대다수가 성직자들이며, 국민들보다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은 나라다.
바티칸 시국 안에서 목적 없이 이곳저곳 산책하다 보니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한 많은 관광객과 성직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티칸 시국을 방문하는 것은 성지순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바티칸을 방문한 그들의 표정에 어떤 평안함과 만족감이 자리 잡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고, 바티칸 여행 내내 그들에게 시선이 머물러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이 아닌 신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온화함만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고통과 불안, 슬픔과 두려움 속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종교란 무엇일지' '우리 삶에 신앙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바티칸 시국'에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고이 보관 및 전시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안에는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등의 예술가들이 남긴 종교적 작품부터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 때에 제작된 유물과 조각상 등 각종 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에 넓은 박물관을 몇 시간이고 천천히 걷다 보면 어딘가 본 것 같은 익숙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고, 실제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길과 붓질을 볼 수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내부는 마치 궁전 혹은 신전처럼 고급스럽고 신성한 느낌이 들게끔 설계되었다. 특히 조각상이 사방으로 채워진 방이나 줄지어 이어진 큰 회랑에 들어서면 작품과 공간이 주는 묘한 압도감에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이런 웅장함과 유명세에 맞게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것이었다. 작품에만 집중해 조용히 감상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바티칸은 나에게 흥미로움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도 흥미로운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탄생하고 유지되고 있는 바티칸 안에서 운영되는 박물관 안에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작품들도 존재하는 게 신기했다. 기독교 성서에 의하면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우상은 금기시되어 있다. 하나님을 대신해 금송아지를 섬겨 벌을 받았던 일화가 있으며, 이에 우상과 이방신에 대해 조심하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가톨릭의 본산이 되는 바티칸에서 이런 작품들이 공공연히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그들도 우상이기보다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기며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바티칸을 둘러싼 흥미로운 많은 음모론들도 있다. 어느 곳이나 권력이 있는 곳에는 각종 음모론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특히 바티칸과 같이 종교적이고 비밀스러운 곳에는 사람들의 각종 상상이 더해져 음모론이 생겨나기 더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티칸 지하에는 금고 혹은 창고가 있고, 그곳에 각종 종교적 성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알려지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비밀문서들도 존재하는데, 대충 내용은 악마, 외계인, 혹은 마법 관련된 것들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음모론은 바티칸과 연관된 비밀 종교단체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증거는 없으나 나름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바티칸은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그 의미가 크기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곳이고 그에 따라 화제성을 가진 곳이다.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 교황의 영향력 등 면적은 가장 작을지 몰라도 거대한 영향력만큼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현재에도 유지 중인 듯하다.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교회를 다니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갔었다. 그래서 그런지 종교에 있어 큰 거부감은 없는 사람이다. 어릴 때는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싫어 교회에 나가기 싫다고 떼쓴 적도 많고, 오로지 교회만을 위해 일요일 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게 다가왔다. 그러나 반대로 사춘기쯤 되어 교회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교회에서 악기를 배우는 등 어느 순간 교회에 나가는 재미가 생겼던 나날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 미국에 혼자 있었을 때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의지할 곳이 필요해 교회를 찾는 순간이 많았다. 이처럼 종교는 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현재 나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신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교인은 아니다. 이는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신앙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신과 관련된 철학을 가지면 신앙 그리고 그 신앙을 바탕으로 공동체 혹은 집단이 형성되고 그와 관련된 의식과 활동하는 것은 종교다. 즉, 내적인 신념, 가치관, 믿음은 신앙이고, 이 신앙과 가장 가까운 어떤 집단에 속해 규율을 따르고 행동하는 것이 종교다.
나는 신앙인이지만 종교에 지쳐있는 사람이다. 이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오며 교회 내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목격하거나 직접 겪으며 종교에 많은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교회에서 본인 이익을 따지며 추한 밑바닥까지 무너지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성숙함을 쫓고 이웃을 사랑해야 할 교회에서 정치와 상처로 얼룩진 공동체의 모습을 봤다. 잘못된 신념 때문에 사람의 인격을 말살하는 종교의 모습을 봤다. 결국 교회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곳이고,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나쁜 종교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종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해석하고 이상한 신념을 가진 채 이행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교를 이유로 벌어진 모든 역사적 갈등과 전쟁은 종교를 해석하는 과정 중 의견에 마찰이 생긴 인간들의 전쟁이지 신들의 전쟁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철학과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는 교리를 두고 생길 수 있는 해석과 갈등의 여지가 사람 수만큼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신을 제외한 인간이 절대적 진리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모든 것을 깨우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이에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태도는 오만에 가깝고, 더 넘어 자신이 신이 되는 신성모독에 가깝지 않을까.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근본적이지만 절대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것들인 '존재 이유와 목적' '삶과 죽음'의 답을 각종 경전과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자신만의 답을 굳게 믿는 것도 좋지만, 그 답을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타인의 답은 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존중하는 것도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종교적 갈등이 생겼을 때 그 속을 한 번 냉정하고 날카롭게 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정말로 갈등이 종교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각종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심리로 발생된 갈등이지만 종교를 핑계로 남을 헐뜯고 공격하고 죽이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종교 또한 인간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갈등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종교는 사람의 마음 내면 가장 깊은 곳에 믿음을 뿌리내렸기 때문에 갈등의 강도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종교적 갈등은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우리가 만약 종교적 교리를 차치하고 순수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 삶의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만을 두고 고민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종교로 인한 많은 갈등이 발생했을까.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삶을 얻어 죽음을 향한 여정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명을 달리했을 때, 우리가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날지 혹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지금 삶이 주어졌으니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삶의 목적을 찾고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행복했다 불행하고, 기쁘지만 슬프고, 평온하지만 불안하고, 두렵지만 버텨내며 삶을 살아간다. 불확실성으로부터 피해 평온함을 얻고자 종교를 선택한 것이며, 결국 현실인 이 세상에 적응해 자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자 종교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종교를 선택했음에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다.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어서는 초월적 어떤 존재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현실을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저 현실을 열심히 살자. 중요한 건 이뿐이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없을 수도 있다.
행복노트 #52
현실을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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