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탈리아 베네치아,
"법의 역할"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58 _ Venice, Italy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이탈리아 베네치아,

첫 번째 이야기: 법의 역할.



어느덧 이탈리아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많은 인파와 더위 때문에 고통받은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막상 이탈리아를 곧 떠난다는 생각은 마음속 서운함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독립된 도시 국가의 역사가 오래된 탓일까 각 지역, 도시별로 갖가지 다른 매력과 개성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여행 중 사진 찍는 재미 또한 가장 풍부한 국가였다. 이탈리아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쨍한 색감과 화려함이 좋았다.


스위스에서 밀라노로 들어와 이탈리아 서쪽 연안을 따라 내려오며 대도시들을 한 번씩 방문하고 마지막 중부 로마를 찍은 뒤 이번에는 동쪽으로 다시 올라오는 여행 루트였다. 아시시와 스펠로에서의 2박 3일 쉼의 시간을 가진 뒤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이자 동유럽으로 가는 관문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하는 기차에 탔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6시간에 달하는 이동시간이었으며, 중간에 피렌체에서 한 번 환승해야 했다. 열흘 만에 다시 방문하는 피렌체가 반갑긴 했지만 기차 안 멀리서 피렌체 두오모만 잠깐 흘겨볼 수 있을 뿐, 환승 시간이 넉넉지 않아 곧바로 베네치아향 기차로 옮겨 타야 했다.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유럽여행 내내 기차만 적어도 50시간 이상 탄 나는 긴 답답하고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좁은 좌석과 긴 이동시간에 지쳐있었다. 이제 휴대폰 음악 플레이리스트 순서까지 꿰기 시작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리나라와 다른 유럽의 풍경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지 오래였다. 기차밖 풍경을 보며 생각하는 것도 더 이상 생각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같은 생각만 무수히 반복하는 지루한 상황 속 우연히 내 시선을 끄는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내 앞자리 선반 위에 올려진 'NOT YOURS' 태그가 달린 수트케이스가 내 시선을 끌었다. 유쾌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 장면이었다. 유럽에서 소매치기좀도둑은 일상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주머니 속 지갑과 휴대폰이 사라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기차 혹은 버스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짐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오죽하면 유럽여행의 필수품으로 자물쇠와 주머니 달린 복대가 포함될 정도다.


나도 소매치기나 분실사고를 겪기 싫어 여행하는 내내 백팩 지퍼에 자물쇠를 걸었다. 이마저도 불안해 여권, 지갑과 같은 중요 물품은 가방 깊숙한 손이 안 닿는 곳에 항상 넣어 다녔다. 또한 옷을 담은 큰 수트케이스에도 늘 잠금장치를 하고 다녔으며, 기차나 버스를 탈 때면 자전거에 채우는 줄 자물쇠를 이용해 기둥에 묶어놓거나 다른 짐들을 함께 묶어 쉽게 들고 가지 못하게,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예방하고 다녔다. 물론 여행 중 좋은 것만 보고 느끼기에도 모자랄 시간에 계속 짐을 신경 쓰는 게 번거롭기는 했지만, 혹여나 일어날 분실사고에 감정이 상하고 여행 중 안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럽여행 약 4개월 동안 기차를 14,705km 107번, 버스를 8번, 배를 4번, 비행기를 2번 타고, 무수히 많은 호텔과 호스텔을 이용하면서 소매치기나 분실사고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바르셀로나, 로마, 파리 등 좀도둑이 극성인 곳에서는 내 짐과 물건을 계속 쳐다보고 만져보는 등 온 신경을 집중했고, 거리를 걸을 때 무서운 인상을 쓰며 감히 건들지도 못하게끔 경계했다. 만만해 보이거나 방심하는 순간 사라질 거라 믿으며 짐을 들고 이동할 때는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tempImagetsh7Ru.heic


이처럼 유럽여행에 꼭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내 것은 내 것, 너 것도 내 것'이라는 기적의 논리에 당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 기차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며 베네치아에 곧 도착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네치아에 완전히 도착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이야기하는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본섬'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베네치아 본섬은 이탈리아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은 주로 기차를 통해 베네치아 본섬으로 들어간다. 지금은 베네치아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진 탓에 입장료(?)를 받고 있다지만, 어쨌든 이탈리아 본토의 베네치아 메스트레(Venice Mestre)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에 위치한 산타 루치아(Venice Santa Lucia)역에서 내렸다.


tempImagetFUmwr.heic





물의 도시, 베네치아



나는 수영을 못한다. 바다나 계곡, 워터파크에 가서 가볍게 물장구치는 것은 좋아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발이 바닥에 안 닫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두려움에 다시 발이 닿는 곳, 육지 쪽으로 사력을 다해 헤엄쳐 보지만 수영을 못하는 나는 허공에 몸부림치듯 겨우 3m 정도 움직인 것 같다. 쏟는 힘에 비해 전혀 효율성이 안 나오는 거리이기에, 옆에서 유유하게 물개처럼 헤엄치는 꼬마보다도 수영을 못하기에 늘 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친하지 않은 내가 의 도시인 베네치아를 처음 방문한 날, 이 삶의 일부를 넘어 생활 전반적으로 꼭 필요한 베네치아의 주민들의 삶을 보며 큰 충격에 빠졌다.


tempImageorTnzk.heic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베네치아 본섬을 여행하며 한 번도 차를 본 적이 없다. 모든 이동수단과 운송은 배가 자동차를 대체하고 있으며, 도로가 아닌 물길이 도시 곳곳을 이어주고 있었다. 가끔 바람이 조금이라도 심하게 불 때면 물이 첨벙이며 인도를 넘어오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홍수나 해일이 일어나는 순간 도시 전체가 그대로 그냥 잠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베네치아 주변 위치한 크고 작은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 파도가 덮칠 일은 적겠지만, 물 위에서 살아간다는 삶이 나에게는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과거 베네치아 인들은 어떻게 물 위에서 살아갈 생각을 했을까.


tempImager0hJTm.heic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다 위에 이런 거대한 도시를 지었음에 감탄했다. 현대에도 물 위에 도시를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과거 중세시대 때부터 섬 위에 건물을 올리고 삶을 일궈온 베네치아 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베네치아는 본래 습지와 개펄로 이루어진 작은 지역이었으나 삶의 터전을 넓히고 지키기 위해 그들은 간척하고 개척했다. 주로 약한 개펄 속 나무를 촘촘히 박아 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 높은 건물을 올리며 주거지로써 그리고 도시로써 기능을 완전히 하게 되었고, 운하를 활용한 해상 무역이 발전하는 등 점점 찬란하고 특색 있는 도시로 변모해 갔다.


tempImageD7evZj.heic
tempImagenKPax0.heic


이렇게 지리적 악조건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개척하며 극복해 나간 베네치아 인들에게 현시대 새로운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환경문제로 인해 극지방의 동토층이 녹으며 해수면이 갑자기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해수면이 조금씩 계속 상승한다면 베네치아가 물속에 잠기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베네치아를 실제 방문해 눈으로 본 사람들은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인류가 만든 최대의 아름다움 중 하나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베네치아를 지켜야 한다.


tempImagec00vvf.heic
tempImagelCMJv0.heic





베니스의 상인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베네치아를 무대로 희극을 하나 집필했다. 이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이며, 우리가 '베니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연상되는 제목 '베니스의 상인'이다. '베니스'는 베네치아의 영어식 표현이다. 유럽인들은 각 도시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언어로 발음하기 편하게 바꿔 말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탈리아 유명 도시들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밀란 (밀라노)', '플로렌스 (피렌체)', '롬 (로마)'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유럽 전역에 '비엔나 (빈)', '프라그 (프라하)', '워소 (바르샤바)' 등 영어식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에 같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도시인 줄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tempImagewkLhyF.heic
tempImageYD8wJ4.heic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좋은 희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야기 속 그 당시 시대상을 잘 담고 있고 인간 본성과 사회적 문제를 시사하여 보는/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16세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무역 상인인 '안토니오'와 고리대금업자 유대인인 '샤일록' 두 허구인물 사이의 갈등과 법적 다툼을 다루고 있다. 안토니오는 그의 친구 바사니오가 구혼을 위해 돈을 빌릴 때 옆에서 보증을 서주는데 하필 바사니오가 돈을 빌린 인물은 안토니오를 증오하고 있던 샤일록이었다. 이후 샤일록은 안토니오가 바사니오의 빌린 돈을 못 갚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안토니오를 고소하여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법적 공방 속 그들이 맺은 계약서의 허점들을 짚은 끝에 안토니오는 승리하고 샤일록은 재산 몰수, 개종까지 당하는 등 악인을 벌하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이한다.


tempImage2LZVpY.heic
tempImageOPb8x2.heic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해 낸 악역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인물이다. 중세시대에는 오직 유대인만이 고리대금업을 할 수 있었다. 이유인즉슨 빌린 돈에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것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도의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교황은 기독교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했으며, '돈을 만지는 일은 천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독교와 달라 이런 종교적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었으며, 더군다나 유럽 전역에서 미움받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리대금업밖에 없었다. 그리고 샤일록은 그 유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현대에도 제3금융권, 대부업체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이자율을 내세우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먼저 유혹한 뒤, 혹여나 그 많은 돈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그 끝에 인간의 존엄성까지 무너뜨리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애초에 고리를 책정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도의적으로 맞는 일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고민은 늘 있어왔다. 현재는 그래도 법적규제 안에서 금융업이 성행하지만, 이런 울타리가 낮았던 그 먼 과거에는 훨씬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과거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해했다는 이유로 종교적 혐오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업을 이유로 사회적 멸시와 각종 핍박을 받았다. '베니스의 상인' 속에서도 샤일록은 과거 안토니오에게 유대인이란 이유로 모욕을 받았기에 어쩌면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먼 과거부터 이렇게 고리대금업에 종사해 온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금융업을 발전시켜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주체자들이 되었다. 이 결과는 어쩌면 과거부터 받은 박해와 그들의 한이 만나 악에 받쳐 이뤄낸 성과 아닐까.


tempImageb8dhnt.heic
tempImageSdFGf0.heic
tempImagelq3aOW.heic


셰익스피어가 희극의 배경을 베네치아로 설정한 것에 있어서도 이유가 있다. 물론 베네치아의 미적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단순 이런 낭만적 배경을 원해 베네치아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금융업이 매우 발전한 도시였고, 이 금융업의 발전 아래에는 해상무역이 있었다.


금융무역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금융이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크게 발전한 데에는 해상무역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상업은 모두 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품 생산에 필요한 공장과 설비, 토지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 했으며, 생산된 물건을 육로 혹은 배로 이송하는데도 돈이 든다. 물건을 싣고 하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고 보관, 유통, 판매 등 전반적으로 모두 돈과 연관되어 있다. 그 말인즉슨, 여기서 한 곳이라도 잘못 삐끗한다면 돈이 샌다거나 큰 손해를 볼 수 있기에 상인들은 이런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보험계약서 그리고 현재 지폐의 모태가 되는 어음 등을 만들어냈다.


현재 나도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보험과 계약서 그리고 금융업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다. 법적 분쟁 발생 시 가장 먼저 계약서를 살펴보며 잘잘못을 따지거나 회피하기에 유리한 조항을 넣기 위해 상호 간의 계약서 수정이 수시로 이뤄지고, 거래에 이용되는 신용장과 선하증권 속 단어 스펠링 하나까지도 틀리지 않기 위해 몇 번의 검토를 거친다. 이 외에도 적하보험, 포괄보험 등에 가입하여 위험부담을 줄이고 환율 변화에 따른 환차손 방지를 위해 은행과 선물환을 체결하는 등 점점 무역과 금융 사이의 유착 관계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이렇게 '베니스의 상인'은 주요 인물들의 갈등과 이야기를 통해 당대 상업과 금융을 간접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으며, 각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게끔 우리를 고무한다.


tempImageW4FA5J.heic
tempImageAzeHkk.heic





법의 역할



결국 '베니스의 상인'은 법정 드라마다. 안토니오가 돈을 갚지 못할 시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살 1 파운드, 즉 그의 죽음을 요구한 것과 다름없지만 계약서 상 허점을 활용해 안토니오가 극적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차별받으며 살아온 샤일록은 한 번의 복수를 기획했다가 되려 거대한 법정 사기극에 당해 가진 것을 다 잃게 되는 비극이다.


이처럼 계약서의 조항 하나를 두고 해석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게 그리고 그 능력을 부여받은 게 ''이다. 법의 존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국가와 기업,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

두 번째로 사회의 치안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등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권을 보장하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권 내 분쟁 발생 시 상황에 맞는 올바른 정의 구현을 위해 은 존재한다.


세계 여러 국가들의 고등법원 앞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의 동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녀의 이름 그 자체가 'Justitia'로 정의를 뜻하며 그녀는 눈을 가린 채 양손에는 검과 천칭을 들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눈을 가린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도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겠다는 뜻이며, 천칭으로 잘못의 경중을 판단한 뒤 검을 사용해 판결을 엄격히 집행하겠다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결국 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가치로 귀결되는데 바로 공정성정의구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은 정의구현이 아닌 조금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법망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악해 각종 범죄와 비윤리적, 비도덕적 불의를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법의 심판을 요리조리 피해 간다. 허점을 논리적으로 잘 사용한다면 '베니스의 상인' 중 안토니오를 살린 것처럼 정의롭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현실은 이와는 다르게 대체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법 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에 비싼 비용을 지불해 가며 실력 있는 로펌, 변호사를 고용하는 이유가 된다.


반대로 법을 악용해 이득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너무 법을 잘 활용해 불의를 저지르는 경우인데, 예를 들어 경미한 사고에 드러누워 보험금을 타거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 또한 자신에게 들어올 이득을 위해 법을 남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한 경우다.


우리나라처럼 법치 국가는 의 힘이 크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법이 불합리해도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 당연히 법이 주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지만, 이런 제도를 통해 아무리 이상적 사회를 실현하려 노력하더라도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 때문에 제도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파온다.


tempImagetuva0b.heic


법은 공공의 양심이다

토마스 홉스


법과 질서가 없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고 악하여 생존을 두고 치열한 갈등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신변을 보호받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리 일부를 스스로 내어주고 국가 혹은 사회에 종속되어 살아간다는 '사회 계약론'을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주장했다. 그리고 그 국가 안에서 만들어지는 법은 그 국가를 이루고 있는 국민들이 가진 양심 혹은 정의로움 정도에 따라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정의의 위치는 어디 위치하고 있을까. 절대적인 정의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정의를 향해서 나아가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이 쌓이고 아는 게 많아지면 그 배움으로부터 고뇌와 깨달음을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로 더 약고 기민해져서 자신의 이득만 챙기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멍청하다는 둥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후자의 사람은 토마스 홉스가 주장했던 사회 계약론에는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국가와 사회에서 추방되어도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국가 이념 깊은 곳에는 홍익인간 정신이 있다. 이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이라는 뜻으로 사회 속에서 서로 잘 어우러져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라는 사려 깊은 뜻이 담겨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많은 곳에서도 공통적으로 과거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이타심의 미덕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지혜가 녹아있는 문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즉 언제 어디서든 양심 없는 이기적인 인간들은 늘 존재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법은 마음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정한 사람을 제지하기 위한 것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사회에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본능을 통제하고 타인을 향한 양보와 배려를 통해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을 받고 지성인이 되어도 도덕적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닌 순전히 법의 강제성과 사회 속 질타가 두려운 것뿐이다. 이렇게나마 각종 범죄가 줄어든다면 법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사회에서 법이 필요한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교활해진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를 마음대로 넘나들며 사회를 망쳐간다. 결국에는 어쩌면 불필요할 수도 있는 세부적인 법이 계속 생겨날 것이고, 우리는 모두가 불편하고 피곤한 가두는 사회를 우리 스스로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은 비성숙한 인간이 가진 양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사회 속 다른 이의 권리를 제한하고 피해 입히기 위한 수단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덜어내는 용도도 아니다. 법은 사회 구성원이 질서를 유지하고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그저 한낱 최소한의 방패막일 뿐이다. 사람들의 이타적 관념과 도덕, 양심, 성숙도에 따라 방패가 조금 더 두텁거나 얇을 뿐이다. 그리고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그 사회가 조금 더 각박할 뿐이다.


행복노트 #55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누구도 법 아래에 있지 않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