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모험과 성장"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63 _ Ljubljana, Slovenia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세 번째 이야기: 모험과 성장.



어느덧 시간이 흘러 슬로베니아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 슬로베니아 여행을 계획할 당시 동유럽으로 넘어가는 단순한 경유지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현지에 방문해 류블랴나 시내 곳곳을 돌아다녀본 결과 아름다운 풍경과 여행의 재미 그 이상으로 나에게 큰 깨달음과 잊지 못할 영감을 준 곳이었다.


류블랴나를 떠나는 기차 시간은 오후 1시쯤이었다. 이른 오전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부단히 돌아다니던 나는 류블랴나에서 짧았던 일정을 뒤로하고 이대로 떠나기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떠나기 전 아쉬움이 최대한 남지 않게끔 무얼 할까 고민하며 지도를 펼쳐보던 그때 문득 내 시선을 끈 한 장소를 발견했다.


유명한 관광지인지 류블랴나 여행 추천 목록에 있던 이 장소는 '성 미카엘 교회'였다. 교회의 사진을 무심코 눌러본 나는 첫눈에 '이곳은 지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숙소에 짐을 맡겨둔 채 카메라만 챙겨 바로 교회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tempImageSjgahx.heic
tempImage6p8bmx.heic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유인즉슨, 숙소에서 '성 미카엘 교회'까지 편도로 6km, 왕복으로는 12km에 달하는 아주 먼 길이었다. 이 정도 거리는 보통 하루 종일 여행하며 걷는 총거리와 맞먹을 정도로 긴 거리였다. 또한 내 성격상 특유의 무리한 모험을 즐기는 관계로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직접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직접 걷는 것보다 말도 통하지 않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대중교통을 탄다는 게 더 두렵고 귀찮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가 도심이 아닌 외곽 쪽에 위치하고 있기에 걸어가며 보게 될 풍경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휴대폰 지도 하나에 의지한 채 걸어서 약 한 시간 반 떨어진 '성 미카엘 교회'를 향해 남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tempImageWP4Pyn.heic
tempImage5Yi9YZ.heic
tempImageyB5HBr.heic
tempImage9tjE8M.heic


류블랴나 도시 자체가 작아서 그럴까 걷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되어 도시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한적한 목가적인 동네가 등장했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의 산책이었고, 혹여나 외진 위험한 곳으로 잘못 빠지게 될 경우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나 카메라를 목에 맨 채 누가 봐도 여행 중인 동양인은 눈에 더 잘 띄어 불미스러운 일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 이에 긴장한 채로 여정을 시작했지만, 막상 깔끔하고 평화로운 장소들이 나오자 어느새 긴장은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행복만 남게 되었다.


걸어가는 내내 즐거웠다. 꽃이 가득한 예쁜 집들과 잘 관리된 길 그리고 신기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현지인들 사이로 여유롭게 산책하며 가는 여정은 행복만 가득했다. 물론, 한 여름 뙤약볕은 나를 굽고 있고, 종종 인도가 없어 자동차 도로 갓길로 걸어가야 하는 위험은 있었지만, 이 조차도 나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류블랴나 외곽의 모습은 과거 미국에서 살 때 봐왔던 미국 시골 동네의 모습과도 묘하게 닮아있어 매우 익숙한 느낌이었다. 옛 생각들과 함께 걷다 보니 한 시간 반은 지루할 틈 없이 금세 지나갔다.


tempImagew0RsHr.heic
tempImageHbiXRP.heic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동네를 30분 더 걸으니 이제는 집들이 아닌 드넓은 자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류블랴나 주변을 둘러싼 산들까지 저 멀리 넓게 뻗어있는 평야를 보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류블랴나를 떠나기 전 아쉬움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여정이었지만, 이곳이 늘 그랬듯 기대 이상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으며 슬로베니아를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 나의 모험은 끝이 보였고, 저 멀리 이 여정의 목적지 '성 미카엘 교회'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tempImage7Dlsqh.heic
tempImage41mYI2.heic
tempImageZbIC8B.heic





성 미카엘 교회



St. Michael's Church


휴대폰 지도를 통해 '성 미카엘 교회' 사진을 봤을 때, 건축적 독특함에 매료되었다. 특히 건물벽을 타고 자란 담쟁이 식물과 교회 종탑에 위치한 난간 없는 계단 그리고 독특한 장식물들로 인해 내가 마치 비현실적인 어느 한 꿈속 장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종탑 벽 사이사이 아치형 공간을 통해 보이는 하늘로 성스러운 느낌까지 들며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만약 이곳이 정말 드넓은 들판 위 홀로 우뚝 서있는 건물이었다면 아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 중 한 곳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내 상상과는 달리 민가 어느 한 동네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가 그리고 공사현장들이 있어 이질적인 장소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조금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축물 자체가 좋았던 나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머무르며 몇십 분이고 물끄러미 교회를 쳐다봤다.


tempImageqSsRX7.heic
tempImagevewQr5.heic


'성 미카엘 교회'에 즉흥적으로 오게 되었지만, 교회에 대해 조금 조사해 보니 어쩐지 내가 매료됐던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인 '요제 플레치니크'가 1940년 지은 건물이었다. 또한 건축적 아름다움으로 인해 슬로베니아 문화재임과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건물이다. 실제로 교회를 보면 그 크기가 조금 아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크기와 상관없이 압도감과 독특한 인상을 준다.


교회가 가진 높은 명성과 달리 내가 머무는 시간 동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일까 오랜 시간 관광객이 나밖에 없는 것이 의아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또 좋았다. 혹여나 다른 누군가가 이곳을 서성이면 교회가 주는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분명 반감됐을 것이다.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아쉽게도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나는 이곳의 잔디밭에 잠시 앉아 건물 외관만 지켜보았다. 살면서 한 번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외딴 장소에 와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고,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홀로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가지고 온 빵과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이곳을 충분히 감상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이제 나는 오후 기차를 타기 위해 류블랴나를 향해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모험과 성장



교회로 가는 여정은 새로움으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지만, 다시 류블랴나로 돌아오는 한 시간 반의 여정은 점점 체력적 한계에 다다르며 나는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맑은 날씨와 풍경은 나를 즐겁게 해 준 반면, 그로 인한 뜨거운 햇빛과 더위는 걷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한 번 지나왔기에 익숙해진 길을 다시 되돌아왔고, 기차가 출발하기 30분 전 '류블랴나'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렇게 슬로베니아 여정은 막을 내렸다.


tempImageFjZno8.heic
tempImagefg82kw.heic


모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모험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일본 영화들에는 '기쿠지로의 여름방학',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같은 영화들이 있으며, 미국에는 '킹오브썸머', '스탠바이미', 유럽은 '마이크롭 앤 가솔린' '비밀의 정원' 등 모험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날 것의 순수한 아이들에서 일련의 사건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과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서서히 어른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마음 한편 왠지 모를 먹먹한 기분이 든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통해 지금껏 마주하지 않던 문제들을 헤쳐나가며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가재가 껍질을 탈피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과 같으며, 헤르만 헤세가 소설 '데미안'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


보통 아이들이 성장하는 영화 속에는 일탈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살아온 가정과 학교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슬픔과 고통이 있는 세계, 아이들은 잘 모르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 어른들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민낯 등 여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던져지며 혼란과 위기를 이겨내며 성장한다.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낯선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위험에 맞서는 용기를 얻는다. 실패와 시행착오 속 자신만의 통찰력을 터득하며 점점 성숙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런 모험과 성장 스토리는 사실 어린아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오랜 기간 삶을 살아오며 산전수전을 겪은 어른들에게도, 100세가 넘은 노인에게도 모험은 늘 존재한다. 단지 그 모험의 종류와 형태만 달라졌을 뿐, 분명 세상에는 끝없이 배울게 존재하고 새로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질 것이 많아진다. 그로 인해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 도전에 대한 의지와 빈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일 뿐 세상은 여전히 모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험할 용기 그리고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다른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내가 만약 '성 미카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류블랴나 외곽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유럽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선호하는 취향과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도전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나 스스로 삶을 꾸려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숱한 도전모험을 통해 성장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모든 이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려 걸음마를 시작했고, 스스로 신발끈을 묶었으며, 독립했고, 살아가며 여러가지 도전을 통해 성장했다. 때론 불편하고, 때론 두렵고, 때론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 여러 경험들과 감정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배우고 계속 성장해왔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끝나기 전까지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모험은 지속될 것이다.


나는 모험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로 인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 매일 아침 새로운 도전으로 설레는 하루를 기대하는 것, 조금씩 성장해 내가 계획한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날은 말과 다르게 행동으로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가끔은 새로운 변화가 두렵고 귀찮아 숨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목표에 계속 눈길을 주고 천천히라도 좋으니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모험들을 지속하다보면 언젠간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행복노트 #60

성장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은 필수적이다.


tempImage0GBuXu.heic


다음 행선지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 시작한 이 여행은 그동안 많이 접해보지 못한 유럽 동쪽의 낯선 땅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부터 서유럽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동유럽의 풍경을 보며 동유럽만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었다. 특유의 색 바랜 차가운 느낌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옛 건물 등 언젠간 현지에 직접 방문해 동유럽만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였고, 아주 완벽하고 기분 좋은 동유럽 여행시작이었다.


tempImageYRrnbX.heic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Republic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