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나를 담아내기"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85 _ Warsaw, Poland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폴란드 바르샤바,

두 번째 이야기: 나를 담아내기.



단조로운 삶이 지속될 때 누군가는 변화를 갈망한다. 어딘가 가만히 머물고 있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자극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해방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일률적인 일상과 좁은 활동반경이 답답해 가끔은 그 세계를 넓히고자 모험을 선택한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낯선 나라의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 낯선 향기, 낯선 언어 그리고 낯선 분위기. 신선함과 두려움 사이에서 한 발자국 내디뎌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설 때 우리는 성장한다. 우리는 깨닫는다. 알게 된다. 지금껏 인지하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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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준 대한민국 출국자 수는 약 2,900만 명에 달한다.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에 달하는 사람들이 해외를 다녀온 것이다. 물론 이는 한 사람이 여러 번 출국하여 숫자가 중복 집계될 수도 있고, 여행이 아닌 업무상 해외를 나간 사람도 포함될 것이다. 다만 통계적 오류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대다. 과거처럼 해외로 출국하기 위해 정부의 허락을 받거나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법도 없으며, 누구나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살 돈만 있으면 해외를 다녀올 수 있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교통 인프라 발달로 인해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국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과거보다 확실히 행동반경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여행의 목적과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쉼을 위해, 누군가는 새로움을 위해, 또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떠난다. 쉼을 위해 떠나는 것은 휴가 즉, 바캉스(vacance), 라틴어로 '비움'의 의미다. 구속된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몸도 마음도 다시 회복하는 여행이다. 새로움을 위해 떠나는 것은 투어(tour), 즉 '순회'의 의미이며 낯선 곳을 한 번 둘러보는 여행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위해 떠나는 여행(travel)은 프랑스어 '일하다 (travail)'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경험, 어쩌면 고행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과거에는 여행을 목숨 걸고 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당시,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부랑자'라는 낙인이 찍혀 구금되었고, 설령 신분이 보장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치안적 측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낯선 장소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여행을 간다'라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모험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여행 중 얻는 고난의 강도도 달랐을 것이며, 깨달음의 깊이 또한 깊었을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지, 무엇을 마주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어떤 배움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면 그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맛집과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카페에 앉아있는 한 현지인과 진득한 대화가 오히려 그 세계에 대한 경험을 채워주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장소와 장소 사이 걸음을 통해 현지의 리듬을 발견하고 운율에 맞춰 그곳에 녹아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사진작가 마틴 파(Martin Parr)는 'Small World'라는 사진집을 발간하며 마치 유행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여행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왠지 모를 해학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이 담긴 것 같은 사진들에는 다른 한 편으로 관광산업이 커질수록 일률적인 여행 방식으로 인해 현지 고유문화와 특색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담긴 것 같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률적인 여행 방식이라 하더라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걸 보고 느끼고 배울지는 여행자의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성장은 늘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올 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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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구시가지



바르샤바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바르샤바 구시가지로 향했다. 확실히 내 취향은 근현대적인 장소보다 그곳의 오랜 세월 역사가 녹아있는 장소들을 선호한다. 바르샤바 첫째 날, 매우 흐린 날씨 때문에 도시 전체가 음습한 느낌이 났던 것과는 다르게 둘째 날에는 조금씩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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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볼 수 없었던 많은 인파들이 구시가지에 모여있었다. 현지인보다는 대부분 관광객으로 보였다. 유럽 특유의 은은하게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걷자 드디어 산업 위주의 현대적인 신도시가 아닌, 여행지에 온 느낌이 들었다. 구시가지 중심 넓은 광장을 향해 뻗어있는 도로와 그 사이를 촘촘히 메우고 있는 작은 골목들, 그리고 그 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흐린 날씨의 바르샤바 도심만 봤다가 그저 차분히 가라앉은 도시로만 기억에 남을 뻔했다. 구시가지에 햇빛이 들자 바르샤바만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도시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바르샤바는 여행하기 좋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넓은 구시가지 옆으로 흐르는 비스와 강과 강을 따라 이어진 푸른 녹지들이 마음의 평온함을 준다. 바르샤바에는 유난히 공원이 많았던 것 같다. 도시 안에 넓은 공원이 많이 있다는 것, 단순히 면적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빽빽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아닌, 도시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여유공간을 열어두는 것 같았다. 마음속 물이 가득 차지 않게끔 적절히 덜어내는 것.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끔 적당히 일렁이게 담아두는 것. 바르샤바의 위대한 도시 설계, 이것은 폐허 속에서 벽돌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쌓은 바르샤바 시민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사랑한 결과이며 삶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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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가 처음부터 폴란드의 수도인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의 전신이었던 폴란드 왕국의 수도는 직전에 여행했던 도시 크라쿠프였다. 유럽 중앙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폴란드는 과거부터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숱한 침략을 겪어야만 했다. 힘의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힘과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16세기

주변의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리투아니아와 연합하여 연방 국가가 되었으며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사이에 위치한 바르샤바가 새로운 수도로 선택되었다.


바르샤바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쪽 바다 그단스크만으로 나갈 수 있는 '비스와 강'이라는 해상통로가 있어 도시 및 국가 간의 무역에 유리했다. 또한, 육상으로도 넓게는 동양과 서양, 좁게는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에 바르샤바는 천도된 이후 급격한 성장과 함께 번성했으며, 지금도 유럽 중앙 산업, 경제, 교통 허브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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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아름다움에 샘이 났던 것일까, 아니 폴란드의 지정학적 운명인 걸까, 바르샤바는 도시의 주인이 끊임없이 바뀌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숱한 침략과 전쟁으로 폴란드를 둘러싼 대부분의 수많은 국가들이 한 번쯤은 바르샤바의 주인이 된 경험이 있었다. 독일과 러시아는 물론, 그 이전엔 스웨덴과 프랑스 등 바르샤바를 점령했었다. 무엇보다 1, 2차 세계대전의 주무대였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1945년 전쟁이 끝날 때 그 무엇도 온전히 서있지 않는 처참한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폴란드와 바르샤바 시민들은 다 무너진 폐허를 끌어안았다. 잔해를 서서히 치워나가고 다시 새로운 벽돌을 쌓았으며,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도시를 재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피와 땀이 섞인 이런 노력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또 많은 세계인들에게 감동이 되고 모범이 되는 사례가 되었다. 그렇게 폴란드와 바르샤바는 일어섰다. 보란 듯이 떳떳하게 일어섰고, 지금도 유럽 중앙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냉전시절 서구권을 양분했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에는 각각의 군사 연합체가 있다. 지금도 널리 알려져 활동 중인 북대서양조약기구, 일명 NATO가 있으며, 반대로 공산진영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 WTO가 있었다. 이는 바르샤바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례다. 소련과 동독 사이 위치한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군사 연합체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모순적인 것은 현시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주축이었던 구소련 현 러시아가 폴란드를 가장 위협하는 국가가 되었고, NATO의 주축국인 미국이 NATO를 위협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 세태를 바라볼 때 인간은 파멸과 창조 속에서 고통받는 필연적인 운명을 지닌 듯하다. 다만, 무너진다 하더라도 로운 사람들은 늘 그랬듯 언제고 또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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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쇼팽



프라하에서 재회했던 옛 친구 준하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준 장소가 있었다. 바르샤바 구시가지 근처 위치한 '쇼팽 공원'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음악가 쇼팽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프라하에서 나를 만나기 며칠 전 준하는 바르샤바를 먼저 여행하고 있었다. 준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같은 현악기 만드는 일을 할 만큼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다. 그런 준하가 바르샤바의 꼭 가볼 장소로 이곳을 꼽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 '쇼팽 공원' 정확하게는 '와지엔키 공원'에서는 여름 중 매주 일요일 무료 피아노 독주 공연이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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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에서 약 한 시간을 걸어 '와지엔키 공원'에 도착했다. 오랜 걸음 끝에 도착한 연주장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 연주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공원 한구석 풀밭에 자리 잡고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햇빛, 우아한 꽃, 사람들의 시선 끝에 머문 피아노는 고운 소리를 내며 공원 내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프레데리크 쇼팽은 위대한 작곡가이자 폴란드의 위인이다.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 거장인 쇼팽은 감미로운 선율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 속 숨겨진 감정들을 이따금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그가 작곡한 곡들이 피아노 교보재로 선택될 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며, 폴란드는 그런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사랑한다.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낭만주의 음악은 특히나 나에게 평온함을 준다. 가사가 없기에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고 집중할 때면 훌륭한 백색소음이 되어준다. 또한, 낭만주의 특유의 부드러운 선율은 감정상태를 차분하게 만들어 정서적 안정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때, 마음의 평안과 위로가 절실할 때 낭만주의 음악은 속박된 아니 어쩌면 살기 위해 스스로 구속했던 감정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연주가 진행되는 약 한 시간 동안 추억 속 애환의 감정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 나는 연주가 끝나고도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그 여운을 유지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경험한 이 행복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마음속에 새기고 싶었다. 서서히 그리고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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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담아내기



어릴 때 울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내 인생에 항상 피아노 학원이 있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시작한 피아노, 처음에는 그 생소한 소리가 나의 통제하에 하나의 음률이 형성되어 곡이 연주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연차가 오를수록 교보재를 하나씩 완주하며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 피아노는 나의 자존심이 된 시기도 있었다. 그 당시 피아노 치는 남자는 희귀했고, 그것에 대한 묘한 겉멋도 있었다. 다만, 일정 연차가 쌓이고 초급 수준을 벗어나자 정체기가 찾아왔다. 틀에 박힌 곡들을 연주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대가 되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거워 학원에 가지 않는 날들이 속출했고, 그때부터 피아노 학원 선생님과의 추격전은 일상이 됐다.


피아노를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다. 학원에서 시켰던 곡들이 아닌, 내가 개인적으로 좋게 느껴졌던 곡들을 연주하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괜히 피아노를 두드리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특히 울적한 기분이 찾아올 때면 응어리 진 감정을 표출하여 감정이 어느 정도 중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후로는 연주하고 싶은 곡들만 집에서 연주하며 피아노 인생 2막이 열렸다.


현재는 재즈에 빠져있다. 자유로운 음악, 기본적인 흐름이 있으면 그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표출하는 재즈의 형식이 좋다. 화성 안에서 어떤 음을 짚더라도 그 음은 정답이 될 수 있다. 박자와 리듬을 넘나들며 그런 무질서 안에도 질서가 있고, 때로는 그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도 하며, 무엇보다 연주하고 구성하는 모든 악기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가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듯 소통과 교감이 합주 내내 녹아있는 점이 좋다. 어쩌면 나도 어릴 때부터 나만의 재즈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선을 따라 한 음 한 음 짚어가며 자기표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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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비대한 나에게 자기표현욕구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큼이나 강한 것 같다. 내면이 복잡하고 잡념이 쌓이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배출하고 해소할 어떤 통로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그 통로는 음악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술이, 운동이, 여행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외면으로 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응축된 감정은 내면에서 곪아 자신의 정신과 감정을 서서히 갉아먹는 깊은 어둠이 된다.


내 삶은 어쩌면 평생 우울 기질에 저항하는 삶 같기도 하다. 선천적인 성격 기질로 인해 우울이 쌓이는 건지 혹은 우울 기질이 이런 성격을 만든 것인지 정확한 인과관계는 모르지만, 인생이 늘 우울과 함께했던 것 같다. 우울한 성향 때문에 힘든 날이 많았지만, 그저 삶을 비관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데에만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창조의 영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며, 동감이라는 그릇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과 사진,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다.


브런치 블로그를 시작한 지 햇수로 벌써 4년이 되었다. 만으로는 3년이 되었고, 앞으로 유럽여행기를 완료할 때까지 2년 더 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매주 의무감에 글을 쓰고 싶어도 정신적 체력이 다하거나 창작의 고통이 찾아올 때면 몇 주고 몇 달이고 쉰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닌, 늘 때가 되면 다시 찾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써 내려가며 연재 완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글쓰기는 우울질과 자기표현욕구에서 기인한 나만의 생존 방식이다. 머릿속이 항상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나는 글쓰기를 통해 잡념을 해소한다. 의식 속 흐르는 생각을 구체화하여 그대로 사라지게 두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생각을 보다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으며, 한 가지 생각에 심도 있게 몰두할 수 있게 되고, 미래에는 생각의 흐름과 변화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불현듯 불안하고 답답하며 우울해질 때가 꼭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이런 창조적인 행위에 집중해 감정과 잡념을 정리하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때때로 이런 행위에 집중하는 순간이 너무 좋으면 그 자체로도 몇 시간이고 며칠간이고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삶의 원기를 되찾고, 동력을 얻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한 개인의 파멸과 행복 사이 생겨나는 감정과 생각, 철학과 가치, 후회와 바람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것, 나는 그것을 인간으로 '살아있다'라고 명명한다.


작가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는 사람이다.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끔 남겨두는 사람이다. 연결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나와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믿는 것, 모두 같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유대와 공감, 같은 경험의 공유,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인정받는 것, 적어도 나 혼자만의 가치가 아닌 것에 희망위로를 얻는다.


행복노트 #85

자기표현은 나만의 생존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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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으로



바르샤바를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야속한 하늘은 빛과 물, 공기를 재료 삼아 그린 아름다운 파스텔 톤의 색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바르샤바 그리고 폴란드 여행을 끝내기 가장 완벽한 하늘이다. 언제고 다시 이곳에 돌아올 거라고, 언제고 동유럽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아쉬움 속 스스로 약속하며 다음 여정을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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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덮인 땅에는 빛과 어둠이 교차되며 흐릿한 잔상만 남긴 채 깊은 심연의 세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잃어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마지막 햇빛의 풍광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 집중해 보아도 하루의 여행이 남긴 피로로 인해 꿈결의 공간으로 나는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창밖의 빛이 눈동자를 스쳐 지나갈 때, 이것이 현실인지, 꿈의 한 장면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 없었다. 그저 미지의 세계, 북유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인지한 채 조용히 동유럽 여행을 스르륵 마무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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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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