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빌뉴스,
"어둡고 외로운 길"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87 _ Vilnius, Lithuania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리투아니아 빌뉴스,

두 번째 이야기: 어둡고 외로운 길.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거대한 욕망과도 같다.
불빛 아래 펼쳐진 세상은 얼마나 거대한가,
기억의 눈으로 봤던 세상은 얼마나 자그마한가.

어느 날 아침 우리는 떠난다, 열정으로 가득한 생각,
앙심과 씁쓸한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과 함께.
우리는 간다, 파도의 리듬을 따라,
유한한 바다 위 우리의 무한함을 달래며.

...

진정한 여행자는 오직 떠남을 위해 떠나는 자들이다,
풍선과 같이 가벼운 마음과 함께,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으로부터.
이유를 모른 채 그들은 언제나 가자고 말한다.

그들의 욕망은 구름의 모양을 띄고 있고,
그들은 마치 신병이 대포를 꿈꾸듯 꿈꾼다,
알려지지 않은 다양하고 거대한 즐거움을,
그리고 사람이 절대 형언할 수 없는 정신을.

샤를 보들레르, <여행> 中


19세기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표현한 진정한 여행자에 대한 묘사는 마음속 깊은 울림을 주었다. 몇 세기 앞서 살았던 인물이 남긴 시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으며, 사유하는 경험은 인문학과 예술이 왜 중요한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마치 나에 대해서 줄줄이 읊은 듯한 내용은 몇 백 년, 몇 천 년, 아니 몇 만 년 전에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고, 그들이 남긴 경험과 기록, 유산으로부터 삶의 방향성을 참고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철학과 예술은 분명 존재한다. 모종의 사유로 혹여나 소실되고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연한 사건과 계기로 인해 다시 등장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이는 인간이 사회를 꾸려 살아가는 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마치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강을 올라가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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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시와 닮아있다. 여행과 시, 경험과 인지의 순간, 개개인의 기억과 가치관에 의해 느끼고 깨닫는 바는 제각기 다르다. 직접적이지 않은 함축과 은유 속 내재되어 있던 감정이 안개처럼 뿌옇고 흐리게 퍼지며, 다양한 형태와 색깔로 서서히 스며들어 바닥 깊은 곳 저 끝까지 닿아 미처 몰랐던 무의식의 영역까지 마음을 적신다.


시와 사진도 닮아있다. 롤랑 바르트가 그의 저서 '밝은 방'에서 언급했듯 일반적인 아름다운 사진을 보았을 때 사회와 문화적 맥락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인 '스투디움'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진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경험과 받아들이는 깊이에 따라 강한 자극을 받는 '풍크툼'이 있다.


여행과 시, 사진. 이들 모두는 개인적 기억과 경험, 감정과 가치관 속 복잡한 연결을 일으켜 내부세계에 대한 확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내부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일, 또 외부와 연결시켜 교감하고 확장하는 일. 다양한 수단을 통해 창조 본능을 결과물로 남길 때 우리는 발견하고, 소통하며, 공감하고, 영원한 진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역사는 변했어도 사람은 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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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빌뉴스에는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몇몇의 높은 언덕들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 덕분이기도 하고, 빌뉴스 내에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전망대 중 가장 유명한 전망대는 과거 리투아니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공작의 이름을 딴 '게디미나스 성'이다.


'게디미나스 성'은 빌뉴스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게디미나스 언덕 위에 지어진 성이다. '게디미나스 성'을 지은 장본인이자 과거 리투아니아의 수도를 빌뉴스로 천도한 대공 게디미나스는 빌뉴스를 넘어 리투아니아의 정체성과도 같은 인물이다. 당시 사이가 좋지 못한 서방의 세력과 동방의 세력 사이에서 유연한 외교와 빈틈을 파고드는 책략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입지를 잃지 않고 버텼던 인물이다.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 위치한 리투아니아의 지정학적 특성상 이 두 강대국들의 대립구도와 영향권 속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특히, 게디미나스 대공이 리투아니아를 통치할 당시, 현재는 흔히 가톨릭이라 일컬어지는 서쪽 교단의 교황이 지배하는 신성로마제국과 그리스, 발칸반도, 러시아로 이어지는 동방 정교회의 두 교단 사이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었다. 서쪽에서는 동방의 이교도들을 정복하기 위해 '튜튼 기사단'이라는 조직이 설립되어 각종 만행을 부리며 동쪽으로 진격했고, 동쪽에서는 그런 서쪽 기사단 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게디미나스는 양쪽 진영 그 누구에게도 존속되지 않게끔 긴장감을 활용해 주권을 지켜나간 인물이었다. 게디미나스 대공이 리투아니아의 주권을 지켜낸 덕분에 지금까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록 종교와 정치 체제가 전부 변한 현재이지만, 리투아니아는 여전히 양쪽 진영 사이 완충지 역할을 하며 지정학적 운명을 버티고 또 이겨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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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의 상징이자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게디미나스 성'이었지만, 사실 나의 선택은 '게디미나스 성'이 아닌, 그 뒤에 위치한 '삼십자 언덕'이었다. '게디미나스 성'을 포함한 전경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고, '게디미나스 성'보다 조금 더 높은 고도로 인해 더 멀리까지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비록, 삼십자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숲 속의 오솔길을 지나는 힘든 길이었지만, 언덕 끝에 다다라 땀방울이 금세 날아갈 듯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빌뉴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고생에 따른 충분한 보상이 되어주었다.


'삼십자 언덕'도 빌뉴스의 상징이라 할 만큼 빌뉴스와 오랜 세월 함께 했다. 기록에 의하면 17세기 초반 현재 위치에 처음 지어졌으며, 역사에 따라 무너지고 재건되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무너지지 않는 리투아니아처럼 세 개의 십자가는 언제고 다시 부활해 사라지지 않고 현 위치를 지금까지 굳건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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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자 언덕'에 오르자 빌뉴스의 노을 지는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구름 낀 흐린 날씨가 조금은 아쉬웠어도 저 멀리 해가 넘어가며 나타나는 하늘의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게디미나스 성'과 더 넘어 빌뉴스의 또 다른 상징인 'TV 타워'가 보였다.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TV 타워'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방송 송출 목적으로 지어졌다. 언덕 위 홀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서울의 남산타워가 연상되어 어딘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TV 타워'에도 리투아니아의 슬픈 역사가 담긴 것을 알게 됐다.


구소련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던 1990년 당시, 리투아니아 또한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이 무너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모스크바는 리투아니아에 대한 제재를 가했으나 독립을 향한 불씨는 더욱 타올랐고, 결국 군대까지 파견해 봉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리투아니아 언론을 통제하고자 소련군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통신시설인 빌뉴스의 'TV 타워'였다. 그러나 빌뉴스 시민들은 타워를 빼앗기지 않으려 무기가 없었음에도 소련에 저항했다. 이에 결국 소련군에 의해 민간인 사상자가 여럿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전 세계로 삽시간 퍼져나가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전 세계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지하는 결과를 자아냈다.


그렇게 'TV 타워'는 리투아니아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외부 세력으로부터 지속 간섭받아온 리투아니아지만, 과거부터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겠다는 오랜 독립 정신처럼 'TV 타워'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높고 곧은 기상을 잘 보여준다.






우주피스 공화국



빌뉴스를 여행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예술 작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벽화와 조각, 공예품 상점 등 도시와 공명하듯 자연스레 녹아있는 예술품들을 볼 수 있는 것은 가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는 자칫 단조롭고 밋밋할 수 있는 거리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이며, 때때로 다양한 상상력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작품들은 주로 현대 예술의 특징을 많이 띄고 있었는데, 이는 젊은 예술가들이 빌뉴스 안에서 적극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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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안에는 '우주피스 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독립국이 존재한다. 마치 이탈리아 수도 로마 내 바티칸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비록 UN이나 다른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아니지만, 우주피스 공화국은 그들 나름대로 국민과 영토, 헌법과 정치체제가 있으며 과거에는 군대를 보유한 이력까지 있는 국가다. 실제로 우주피스 공화국에 입국하면 전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된 헌법문을 볼 수 있으며, 이들 국가는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겠다는 일념을 담아 국기에 구멍 뚫린 손바닥 문양을 그려 넣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됐기에 오랜 역사를 자랑할 것 같지만, 이 국가는 사실 1997년 독립을 선언해 역사가 채 30년도 안된 신생 국가다. 그렇다면 이 국가가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길래 교황도, 달라이 라마도, 전 세계 유수 유명인사들도 이 국가에 관심을 가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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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주피스 공화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의 기능을 위해 독립을 선언한 곳이 아닌 하나의 '예술 행위'로 인해 탄생한 국가다. 국가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을 참고 시, 우주피스 공화국의 사상이 인권과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상징적인 국가로 볼 수 있다.


빌뉴스 이름이 도시를 흐르는 '빌니아 강' 즉 '잔물결'이라는 뜻으로부터 유래한 것에서 착안하여 '우주피스 공화국'의 이름은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라는 뜻에서 빌려왔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위치가 실제 빌뉴스의 구시가지 옆 빌니아 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국심사도 없이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입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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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피스 공화국'의 탄생배경을 볼 때 예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과거부터 빌니아 강 건너에 살았던 가난한 예술가들, 특히 보헤미안과 집시로 대변되는 방랑하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고자 만우절에 실시한 예술 행위로부터 생겨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헌법 조항에서 휴머니즘의 색채가 뚜렷이 나타나듯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향한 염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투 속 탄생한 국가라 볼 수 있다.


현재 '우주피스 공화국'은 그들의 헌법을 단순히 거주민과 영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그들의 사상,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 즉 인권보장을 위해 자신들의 헌법을 내세우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선언문처럼 사람을 가장 우선시하는 그들의 가치는 평화와 자유, 박애, 사랑, 예술 등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그 가치관을 따라 살 수 있게끔 독려하는 실물적 상징의 본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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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외로운 길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인 보헤미안, 평화와 사랑을 추구하는 히피 문화 등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 그들은 감성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하며, 이상적이고, 통제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납득시키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등 여러 대표적인 특징들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은 정신병인가. 이 논제에 대한 갑론을박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단순, '정신병으로 인해 예술이 생겨난다'는 명제가 아닌, 특정 성향의 사람들,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들,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등 다양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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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예술을 받아들이는 부분에 있어 이중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아주 모순되면서 특이하게 양가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인데, 바로 예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예술을 고상하고 고급진 무언가로 받아들이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쓰레기 혹은 이상만 담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예술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예술이 가진 한계를 알고 있다는 뜻이며,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이 주로 '관중/대중'이 될 때가 많다.


혹자는 예술을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 알랭 드 보통 작가의 저서 <불안> 중 시인이자 평론가인 매슈 아널드가 인용한 표현을 빌려 과거 예술을 "인간의 곤궁에 바르는 향기 나는 고약 (<불안>, p.163)"으로 비유한 여론이 있었다. 현재도 예술은 쓸모없고, 생산적이거나 실용적이지 못하며,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이상 속에서 살거나 주변에 피해만 끼친다는 등 예술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예술은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당장 쌀이 없어 굶어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에게 몇 조원의 가치를 지닌 모나리자 그림을 쥐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삶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게 그 사람에게 중요할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저 현실 속에서 마주한 고통을 잠시 잊고자, 궁핍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스스로를 달래고자 하는 정신승리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을 더욱 연약하게 만들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법에서 멀어지게끔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예술의 비실용성이다.


또한 공예품이나 디자인과 같이 상품과 서비스가 있는 상업적 예술을 제외하고, 소설과 시, 그림과 같은 순수 예술작품들은 물질적 형태를 띠지 않기에 그 가치를 매기기 어렵다. 재화와 상품처럼 살림살이를 더 풍요롭게 만들거나 일상의 효율성을 직접적으로 향상해 주는 것들이 아니며, 사용성이 불분명하고 가치 불측성으로 인해 사회와 시장에서 외면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술가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에 주로 금전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으며, 혹시 운이 좋아 잘 풀린다 하더라도 그 명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확실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벌이가 지위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패배자'라는 인식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게다가 예술의 난해성 혹은 기괴함 또한 예술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데 일조한다. 기존의 것들을 타파하고 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예술의 특성, 즉 흔히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으로 인해 익숙하지 못한 불편함에서 오는 피로를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들이 시간이 흘러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과하며, 생각의 틀을 깨는 충격이 지속되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술작품을 받아들이려 마음을 연 관중에게는 작가의 의도 혹은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러한 자극들은 소음이자 잡념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이 긍정 혹은 부정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있어 결국 관중과 대중의 몫이 중요하다. 예술가가 지닌 철학과 사상을 관중이 공감하지 못할 경우, 관중에게 그 작품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된다. 예술가는 어느 정도 이런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인식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예술의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이 좋아 예술을 하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 오로지 자기표현을 위한 예술가도 있기 마련이다. 후자의 경우, 예술활동을 주체적으로 계속 이어나가지 않으면 어려운 경우가 된다.


거의 대다수의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을 대중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한다. 이는 예술의 영감을 외부로부터 얻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내부에서 조합되고 완성되어 안에서 바깥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내면을 향해 복잡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종종 외부인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창의력, 자기표현에 대한 집착, 창조 본능이라는 개인성 혹은 주관성의 특징이 진하게 드러날 경우, 이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정신병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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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 나는 '뇌과학'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 예술이 정신병이라는 말은 다소 과장된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실제로 예술은 뇌의 영향 및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은 선천적인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는 사람별로 반응하는 자극과 그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감정기능, 현실감각, 연산법칙, 메타인지 등 사람별로 뇌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 있고 이들의 균형과 조합이 꽤 많은 부분 사람의 성향과 성격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이 맞다면 예술가들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진 뇌의 특징들로 인해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것이다. 공통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에 취약하고, 현실 너머의 것들을 보기에 비현실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며, 이런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 특징이 정신병이라면 정신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의문이 드는 점은 상대적으로 감정기능이 옅고, 공감능력, 지극히 물질적이고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도 '동물 같다' 혹은 '기계 같다'는 표현으로 비난하고 매도해도 되는 것일까.


분명 자신의 예술성과 그릇된 신념에 취해 분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할 가치가 없는 예술가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이 가진 내면에서 어떠한 오류나 잘못된 신념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받아들이고 있는 생각과 가치, 더 나아가 현실과 세상이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무엇이든지 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이 되며, 다양한 시선을 두는 만큼 통찰력을 얻고,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예술가가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 과정이다.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p. 163)
...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로서 늘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p. 164)
...
예술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 (p. 165)
...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p. 185)

알랭 드 보통, <불안>


창의 본능을 지닌 사람들 중 주변 사람, 공동체, 사회의 변화를 위해, 더 나아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현실에 매몰되어 있거나, 잘못된 신념으로 군중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이건 아니라며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인 이상 영원한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근처에 다가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예술가들은 철학자들과 그 궤가 동일하며, 이는 곧 그들의 예술이 표현방식만 다를 뿐 철학과 본질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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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인이다.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만의 수필작품을 써 내려가고 있고, 사진작가로서 나만의 시선이 담긴 사진을 찍는다.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거나 작품을 통해 수입을 얻는 위치까지는 아니지만, 언젠가 내 작품이 인정받고, 공감되며, 작품에 담긴 메세지와 신념이 퍼져나가 내가 추구하는 세상을 향한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내 꿈과 목표가 되었다.


길고 긴 어두움의 터널.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케이채, <사진가의 길> p. 230


예술가의 길은 태생적으로 외롭고 불안하며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그저 묵묵히 길을 걸어 나갈 뿐이다. 앞서 얘기했듯 창조 본능 때문에 예술가가 된 운명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며, 다행히 현재로서 작품활동하는 데 있어 스스로의 힘으로 잘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일평생 내가 원하는 꿈과 목표를 못 이룰 수도 있다. 다만, 적어도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 한, 내 작품을 그 어느 누구한테 보여줘도 절대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그 누군가가 몇 백 년, 몇 천 년 뒤의 사람들이라도.


이처럼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려면 시지프스,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리 일에만 전심한다 해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으니
유명한 무덤에서 멀리 외따로 떨어진 묘지를 향해
내 마음을 가린 북인 양 장송곡 치면서 나아가누나.

수많은 보석이 잠자고 있다.
어둠과 망각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도 닿지 않는 곳에
수많은 꽃들이 마지못해 풍기누나. 마지못해 풍기누나.
비밀처럼 감미로운 꽃향기를 심오한 고독 속에서.

샤를 보들레르, <불운>


행복노트 #84

세상이 담은 모든 빛과 소리, 이야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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