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탈린,
"사람과 국가"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89 _ Tallinn, Estonia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에스토니아 탈린,

첫 번째 이야기: 사람과 국가.




국경을 넘는 것.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관 확장에 대한 도전이다. 타자의 시선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아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전혀 관계없는 인격체들의 접점을 만들어 유대하고 연결감을 가지는 기회가 된다. 어떤 이에게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아주 지적이고 동적인 경험이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어쩌면 삶의 투쟁이자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될 수도 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선, 의식한 적 없지만 느껴지는 선. 누군가는 간절히 다가가고 싶지만 또 멀어지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지켜주기도 반대로 가두기도 하는 이해관계 속 좁힐 수 없는 간극. 피와 잉크로 수없이 지워지고 다시 그려진 국경이다.


국경이란 마치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처럼 느껴진다. 특히, 휴전국인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상의 국경은 금기된 선이다.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 심지어 부유하는 공기조차 소유하고자 우리는 생각이 맞지 않는 형제에게 총과 화약을 들이밀었고, 단절과 분단이라는 결과와 함께 그 은 더욱 짙어지고 굵어졌다. 그리고 몇 세대 지나 감정과 이성의 골이 얕아질 때쯤, 덩그러니 남은 선을 보고 있으면 원래의 의미와 목적은 희미해졌다. 오히려 결과였던 선이 지금은 원인이 되어 원인이었던 결과를 만들고 있다.


tempImagedd9XuA.heic


유럽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단연코 국경을 넘을 때였다. 우리나라는 물론 지금껏 살아오고 여행했던 미국, 일본 등의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국경에 있어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출국하는 것이 유일하고 당연했던 나에게 지상을 통해, 그것도 어떠한 신분검사도 없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입국'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했던 것과 달리 유럽여행 중 하루 만에 세 국가를 지나는 날도,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일도, 하루 건너 매번 다른 국가를 마주하다 보니 국경을 넘는 것에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비단 나만 겪은 일은 아니다. 아마 사람들은 인생에서 국경을 처음 넘을 때의 경험을 대부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폴란드의 대문호이자 언론인으로 전 세계를 누볐던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조차 그의 저서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일생일대 소원은 그저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고 했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저 폴란드가 아닌 곳에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테두리 밖의 세상은 늘 신비롭다. 우리의 안전지대이자 익숙한 반경을 벗어난 순간 우리는 야생에 던져진 것과 다름없다. 오감을 활용한 모든 신경을 바짝 세우고, 생존을 위한 가장 현명하고 효율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살고자 하는 본능이 여행의 경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고, 이런 다채로운 경험이 다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 세상 어느 곳이든 간에,
국경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나를 흥분시켰다.
지금껏 만나지 못한 사람들, 가보지 못한 길, 보지 못한 하늘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국경을 넘는 일은 늘 나를 흥분시킨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항상 그래왔다. 공항은 언제고 심장을 뛰게 하는 장소다. 과거 헤레도토스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마르코 폴로는 극동지역을, 마젤란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만났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과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 위해서일까, 혹은 여태껏 가져왔던 생각의 완성과 확신을 위한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저 단순히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트비아 리가에서 출발해 에스토니아 탈린로 올라가는 버스 안이었다. 퀴퀴한 공기, 창문이 떨리는 소리, 딱딱한 의자, 덜컹거리는 버스에 덩달아 내 마음도 덜컹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불쾌함이라는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은 없었다. 매 공간, 매 순간 새로움이 다가왔다. 마치 길 위 끝없이 이어진 솜사탕을 발견한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국경을 넘고 있고, 국경을 넘을 때의 두근거림을 즐겼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사이, 국경을 넘을 때 왠지 보이지 않는 어떤 한 공간막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국경을 지나면서 내가 지금 에스토니아에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에스토니아의 수도이자 최북단 도시 탈린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국경을 넘은 지도 몰랐다.


tempImageVT1VVu.heic





에스토니아



사실 나는 에스토니아와 관련된 생뚱맞은 경험이 있다. 허세로 점철된 스무 살의 뜨거웠던 시절, 당시 괜히 메신저 프로필 글귀에 누구도 모르는 언어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저 누군가가 궁금해하고 관심 가져 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단지 한국말로 직접 표현하기 오글거렸거나, 민망했거나, 아니면 뭔가 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나라 언어로 표현해 볼까 하며 번역기에 등록된 언어들을 구경하던 그때 괜히 눈에 띄었던 언어가 하나 있었으니 '에스토니아어'였다. 아마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도 그때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이곳이 유럽에 있는지 아프리카에 있는지도 몰랐으며, 문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였다. 단순히 '에스토니아'라는 이름이 좋았다. 그렇게 하찮은 의도와 함께 전혀 할 줄 모르는 언어로 하고 싶은 말을 번역한 뒤 누군가가 관심 가져주기만을 바라며 해당 글귀를 업로드했다.


며칠이 지났다. 여느 때와 같이 교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와중 최근 새롭게 만나 알게 된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대뜸 "너 에스토니아어 할 줄 알아?" 하며 말을 걸어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관심을 가져줬다는 마음에 내심 기뻐하며 "아니 그냥 언어가 예뻐서..."라고 괜히 변명했다. 또 동시에 어떻게 언어를 콕 집어 알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너는 에스토니아어인지 어떻게 알았어?"로 되물었을 때 친구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나 혼혈이야. 아빠가 중국 사람이고, 엄마가 에스토니아 사람이야. 나는 네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tempImageFu8LZC.heic


그렇게 에스토니아는 그 친구의 나라가 되었다. 또 그때의 대화 이후로 그 친구와 부쩍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가 어딘지도 몰랐던 나라에서 어딘지 알아야만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그 친구의 나라에 여행을 왔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도착하고,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골목을 누비고, 도시를 떠나는 순간까지 그 친구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계속 떠올랐다.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해졌다. 흘러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뒤따랐던 것 같다.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들어간 여행은 매양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tempImageXAH0YM.heic
tempImagekpeziC.heic


발트 3국의 마지막 여행국가 에스토니아다. 지도상 제일 위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유럽 남단 이탈리아부터 한 달간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위도가 높아질수록 하늘의 색깔이 더욱 투명하고 푸르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과학적으로 파장이 긴 붉은색 쪽의 가시광선이 대기에서 더욱 산란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에스토니아기는 아래서부터 하얀색, 검은색, 파란색을 띠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 가지 색깔이다. 흰색은 순수하고 밝은 희망, 검은색은 땅과 역사를, 그리고 파란색은 에스토니아의 푸른 하늘과 호수를 뜻한다. 방문했던 도시나 국가별로 상징처럼 특별히 각인되는 색깔이 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 리스본의 경우 주황색,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 빨간색, 스위스 그린델발트의 경우 초록색, 폴란드 바르샤바의 경우 회색 등 다양한 색감이 떠오르는데, 에스토니아는 나에게 파란색이었다. 언제고 에스토니아를 떠올릴 때면 '파란색'이 동시에 떠오른다. 에스토니아의 공기조차 파란색을 띠고 있는 것 같다. 파란색의 국가였다.


tempImageOXgnlw.heic
tempImageMh2ndP.heic


에스토니아 국기 중앙에는 검은색이 자리 잡고 있다. '대지'와 에스토니아인들의 '역사'를 뜻하는 이 색깔에 에스토니아인들의 슬픔이 함께 담겨있다.


에스토니아 역사는 어딘가 모르게 감정이입을 자아냈다. 지리적으로 북유럽 중앙 작은 반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에스토니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위치해 양쪽의 침략과 지배 속 살아야 했다. 고대 바이킹부터 게르만족, 이후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근세에 들어 러시아와 독일까지 지속적으로 강국들 사이에서 고통받은 암울하고 긴 역사가 있다. 특히, 역사 속 에스토니아인들은 주권이 없는 것도 모자라 무시와 멸시까지 받은 아픈 기억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들이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가진 지 1천 년이 지나서야 주권을 지닌 독립국가로 겨우 인정받은 배경에는 수많은 피와 눈물이 있었다. 그들이 얻은 이 귀한 '국가'. 영원히 기억하고자 국기에 새겼다. 그것도 아주 어둡고도 힘 있게 새겼다.


헤레도토스의 가장 큰 발견,
그것은 너무도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것,
또한 각각의 세계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tempImageKeGg9S.heic
tempImagewC9UVt.heic
tempImageslgtSD.heic





사람과 국가



만일 누군가가 '유럽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곧장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발칸반도 국가들 즉 그리스,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을 여행하지 않았던 것, 두 번째는 아일랜드를 가지 않은 것, 마지막 세 번째는 러시아를 가지 못했던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사실 자발적 선택에 따라 가지 않았다. 발칸반도의 경우, 정보가 너무 없었을뿐더러 치안 걱정도 뒤따랐다. 언어와 문화가 생경했기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거나 여행의 변수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판단해 계획을 마쳤지만 과감하게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추후 영국에서 튀르키예로 넘어갈 때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경유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아일랜드의 경우는 '굳이'라는 생각으로 방문하지 않았다.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더블린으로 가기 위해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여행의 막바지 정신적,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세 번째 러시아의 경우는 달랐다. 타의에 의해 가지 못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의 국경을 넘지 못했다. 넘을 수 없었다. 타 유럽 국가들과 달리 아주 선명하고 굵은 선이 보였다.


유럽여행을 몇 년간 계획했던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꼭 방문할 국가로 이미 선점하고 있었다. EU에도, 솅겐 협약국에도 소속되지 않은 러시아의 경우, 유럽 무비자 체류기한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여행 기간에 대한 부담이 없어 장기휴식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가 있는 점도 한 몫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여행 이후 기차를 타고 러시아의 국경을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며칠 머문 뒤 다시 기차를 타고 더욱 북쪽 핀란드 헬싱키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나에게 거의 파리, 런던만큼의 설렘을 주는 도시였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촬영한 영화 <러시아 방주(2002)>에서 그 아름다운 배경을 잊지 못한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외에도 과거 러시아 제국 수도답게 겨울궁전, 예카테리나 궁전, 카잔 성당 등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많은 관광명소가 존재한다. 무조건 방문할 도시로 이미 동선과, 관광명소, 체류일, 심지어 숙소 위치까지 모든 결정을 끝마친 뒤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러시아의 탱크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 장면을.


tempImagerDgZWC.heic


그 당시 군대에서 전역을 약 한 달 앞두고 있었다. 2022년 2월 러시아 군대가 국경지역으로 밀집하고 있고 그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낙엽조차 조심해야 하는 말년병장은 혹시라도 위쪽 동네 북한이 자극받아 쓸데없는 도발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단순 군사적 압박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2022년 기준 군사력 2위, 3위를 왔다 갔다 하는 러시아가 21세기 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 전쟁을 일으킨다면 자칫 세계대전으로 확전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전쟁은 나쁜 것으로 배웠다. 늘 평화의 중요성을 배우고 자랐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때 배웠던 당연하다고 여긴 수많은 '상식'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후유증을 가진 세대가 사라진 뒤에는 마치 평화가 언제부터 당연했냐는 양 다시금 서로 문명을 파괴하는 일이 재발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 조차도 내면 깊은 곳에는 평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문화와 종교에서 비롯된 가치관의 차이, 약육강식 세계에서의 생존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안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본성이 모두 복잡하게 작용해 역사는 다시 광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똑같다.

<1984> 조지 오웰


tempImageYHwUnl.heic


유명한 격언 중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들이 흘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전쟁을 결정짓고, 지시하며, 명령을 내리는 이들은 보호 속 앉아있는 반면, 정작 전쟁터에서 목숨 바쳐 싸우는 이들은 아직 인생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 어린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위한 고귀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전쟁을 결정짓는 자신이 최전선에 나간다면 결정이 조금 더 신중해지지는 않을까. 사방이 위험으로 둘러싸인 현실에서 강인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다만, 자신이 가진 생명의 무게와 타인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는 착각에 절대 빠지면 안 된다.


당시에 사령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열 뒤에서 몸을 숨기거나 자신의 존재를 위장해서는 안 되었으며,
항상 군대의 최전방에 나가 싸우는 것이 관례였다.

<헤레도토스와의 여행> p.344,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과거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아시아와 유럽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하던 시기, 사령관과 장군들은 최전방에서 명예롭게 싸우고 죽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도자들의 모습은 그때와 조금 다른 것 같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패색이 짙어질 때 히틀러는 괴벨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총력전을 요구하며 끝까지 목숨 바쳐 싸울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1945년 5월 베를린이 함락될 때 그는 아주 어린 소년들까지 전장에 내몰았고, 그들이 피를 흘릴 동안 자신은 지하 벙커 속으로 끝까지 숨어들었다가 희망이 보이지 않자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외에도 권위를 앞세워 근엄한 척 나섰던 지도자가 말로에 겁을 먹고 찌질하게 도망친 이야기는 많이 있다. 타인의 목숨은 그저 자신의 안위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하나의 소모품이었을 뿐이다.


과연 지도자의 목숨은 다른 일반적인 한 개인의 목숨보다 무거운 것인가. 개인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은 몰라도, 강압적으로 행해진 죽음은 어찌 됐든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 죽음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어머니가 한 개인을 20년 이상 애지중지 키워온 생명을 단순 하나의 소모품으로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인가. 대의라고 하지만 그 대의는 누가 판단하며 누가 결정짓고 누가 강제할 수 있는가. 국가를 이루는 3요소 중 국민, 주권, 영토에서 국민을 위해 지도자를 선정했지만, 지도자 스스로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이 국가 자체라 혼동하는 것은 아닌가.


어느 시대에나 통치자들은 국민들에게 그릇된 세계관을 강요하려고 애썼다.

<1984> p.272, 조지 오웰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설국열차>에는 열차를 설계한 인물이자 열차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지도자 윌포드가 등장한다. 꼬리칸의 반란 세력이 열차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한 칸씩 앞으로 전진하며 그 끝에 지도자 윌포드를 만났을 때 영화를 관통하는 반전이 드러난다. 과거 꼬리칸의 폭동을 일으켰고 현재 꼬리칸의 정신적 지주이자 참모 역할을 하고 있던 길리엄이란 인물이 사실 머리칸의 윌포드와 내통하며 열차의 질서와 균형을 만들어가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꼬리칸의 사람들의 분란을 조장해 역모를 꾸미게끔 유도했고, 유혈사태를 통해 꼬리칸의 인구수를 줄여가는 흑막이었다.


길리엄이라는 인물을 단순 악역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길리엄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균형질서였다. 열차 밖은 죽음밖에 없는 상황, 모든 이들이 살아가려면 열차의 규칙에 따를 수밖에 없다. 문제가 있다면 계층 간 잔인한 차별이지만, 윌포드와 길리엄의 생각에는 이렇게나마 계층 간 구별이 확실치 않다면 자원이 한정된 극단적 상황 속 연쇄적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전복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처럼 불어나는 사람수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가장 합리적이고 고결한 방법이 혁명을 가장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질서도, 체계도 없는 자유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할 수 있었고, 그러한 무분별한 방종이야말로 윤리 의식이 실종된 무정부 상태와 마찬가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권력을 선점하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야수와 같은 만행을 일삼는 악의 세력들이다.

<헤레도토스와의 여행> p.239,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카푸시친스키가 20세기말 아프리카 공고를 방문한 뒤 남긴 말이다. 현재도 콩고에는 무장분쟁이 이어지고 있고, 이는 권력의 공백이 더욱 큰 무질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혹여나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혁명이 성공해 새로운 질서를 세울 때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었을까. 평등과 공동분배를 외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 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상의 선명한 국경을 가지게 된 이유이자, 평등과 공동분배를 외친 국가가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더욱 계층 사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본계급이 재산을 몰수당하면 사회주의가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것

<1984> p.284, 조지 오웰


인류가 등장한 이래 늘 지도자는 존재해 왔다. 지도자의 자격, 권위를 납득하고 인정하는 기준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피지배층의 불만은 항상 권력을 전복해 왔다. 그 불만족이 평등을 위해서든, 더 나은 삶을 위해서든, 권력과 자원을 향한 욕심이었든 갖가지 사유로 인해 투쟁의 역사는 반복됐다. 아무리 새로운 집단이 지배하고, 아무리 새로운 제도가 갖추어져도 늘 붕괴와 재건은 순환했다. 현실 사회는 정말 어쩌면 필연적으로 계층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이런 현실 사회에서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가는 방법만을 추구하고 배워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어디든 똑같은 피라미드형의 사회 구조, 반신성화된 지도자 숭배, 계속되는 전쟁에 의해 그리고 계속되는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똑같은 경제가 있을 뿐이다.

<1984> p.272, 조지 오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 사회는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한다.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 불평등을 방임하는 것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굳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망이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작은 사회와 공동체에서 작은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작은 친절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군집을 이룰 때 비로소 세상은 변화한다. 설령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게 해변가 모래성을 짓는 것처럼 덧없어 보여도 존재한 그 짧은 순간 아름답고 찬란하다. 붕괴와 재건은 반복된다. 그렇기에 현실은 야생이고 추악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이상을 가르치고 좇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높이려는 자는 결국 낮춤을 당하게 된다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tempImageJ7vEhz.heic


권력이 사람을 만들고, 때로는 권력이 사람을 집어삼키기도 하며, 권력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앞서 권력의 추악함만 부각해 이야기했지만, 다행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통 성군이라 일컫는 숭고했던 지도자들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인정치의 대표 인물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좋아한다. 로마 전성기의 로마 황제였지만, 그는 동시에 철학자였다. 그가 전쟁 중 남긴 명상록에는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함과 동시에 개인의 이득보다 공동체의 이득, 자연과의 화합, 이치를 따름 등 최고 권력가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여러 철학들이 많이 녹아있다.


"공동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너의 여생을 낭비하지 마라.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다른 일을 할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p.103

"왕이자 입법자로서의 이성이 인간의 이익을 위해 너에게 하라고 명하는 것만 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만일 누군가가 너의 곁에 있으면서 너 혼자의 생각을 교정하고, 바꾸려고 한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 다만 이 변화는 항상 그것이 옳거나 공동체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확신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게 행하려는 동기는 단지 하나로, 그것이 즐거워 보인다거나 대중적 인기가 있을 것 같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 p.127

"무지와 비굴함이 지혜보다 힘이 세다니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p.168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 인생은 짧다. 지상 생활의 유일한 수확은 경건한 태도와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 p.196

"명성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좋음이 타인의 행위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그 좋음이 자신의 감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성을 가진 자는 그 좋음이 자신의 행동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p.211

"인간 각각의 가치는 그 사람이 열심히 추구하는 대상의 가치와 같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p.217

"내가 하는 일은 오로지 공동체에 유익하고 조화로운 것만을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p.218

"인류는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르치거나 아니면 그들을 견뎌라." p.279

"염치없는 인간 … 그 인간도 세상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염치없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 … 관대한 마음" p.306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빌려 때에 따라 군주는 사자 같기도 여우 같기도 해야 한다. 플라톤의 사상을 인용해 철학하는 군주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지도자였다. 그는 공동체와 정의를 우선시했던 인물이다. 또한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은 많은 이들의 존경을 샀다. 그는 존경을 스스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에 따라 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며 성실히 살았을 뿐이다. 그는 명상록에서 당대의 위대한 인물들이 금세 잊히는 것을 상기하며 명예를 덧없이 여기며 살았지만, 역설적으로 아우렐리우스는 현재까지 위대한 지도자이자 철학자로 그 이름이 기억되고 있다.


행복노트 #86

누가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좋은 인간이어야 한다.


결국 국가와 국경, 사회와 제도 이 모든 사유의 끝 결론은 부조리, 불평등, 불합리 속에서 나의 역할을 가지고 살아남는 것을 택했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며, 인류애를 실천하고 살자는 다짐이었다. 나의 작은 선의와 배려가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더 키울 수 있다면,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인생관인 것 같다. 인간은 무너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어주는 것, 희망을 잃지 않는 것, 함께 나아가는 것. 나 같은 존재 또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중도의 의도가 담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Portugal - Spain - Switzerland - Italy - Slovenia - Croatia - Hungary - Slovakia - Austria - Czech - Poland - Lithuania - Latvia - Estonia - Finland - Sweden - Norway - Denmark - Germany - Netherlands - Belgium - Luxembourg - France - UK - Turkey


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 해당 글의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음을 밝힙니다.

* 해당 글과 사진을 출처 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해당 글을 모바일 앱보다 웹사이트 큰 화면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인용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헤로도토스와의 여행>, 크림슨, 2013.

조지 오웰, <1984>, 민음사, 200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명상록 헬라스어 완역본)>, 그린비, 김재홍,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