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배터리를 잃어버렸다.
가끔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방금처럼 공항에서 내 물건을 빼앗겼을 때 그렇다. 여권에 도장 찍을 빈틈이 없을 정도로 뻔질나게 해외를 다녀본 내가 이렇게 멍청한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위탁 수화물에 보조배터리를 넣어도 될 것 같았다. 벽에 붙은 주의사항을 보고서도 그림처럼 생긴 배터리가 아니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결정은 그렇게 아주 거침없고 멍청했다. 배터리는 위탁으로 보낼 수 없으니 체크인 카운터로 다시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이미 기내 안전검사의 문턱에 와 있었다. 대기 인원을 보니 이 줄을 다시 서면 꼼짝없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서 나는 내 배터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 빵빵하게 밥을 줬던 녀석이라 더 안타까웠다.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실수로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놓치고 나면 그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물론 돈이든, 시간이든, 마음이든 투자했던 나의 것들이 아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게 아니라, 무언가가 나를 떠났다는 깨달음이다.
공항에 네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체크인 카운터가 미리 열리지 않았고, 하필 책임감 없는 공항 직원의 응대로 더 오래 대기를 해야 했고, 어쩜 평범한 평일 오후에 불과했던 오늘따라 공항이 너무 붐볐고, 그냥 이 모든 우연을 다 무시해도 애초에 내가 그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부터가 말도 안 되게 이상했다. 내 손을 떠난 배터리가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던 것, 사실 이것은 배터리 스스로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쉽게 모든 만남과 이별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떠날 리 없고, 내가 아끼는 내 반려동물은 필히 오래 살 것이고, 내가 소중히 다루는 내 물건은 내가 버리기 전까지 그의 주어진 몫을 다 해낼 거라는 믿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들은 착각에 가깝다. 하물며 그 대상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일지라도, 우리는 그것과의 이별이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과신에 빠져선 안 된다. 모든 것과의 이별은 우연 같은 만남처럼 언제든 순식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을 다시 되돌려본다. 나는 밤을 새우며 오늘 가지고 갈 짐가방을 싸고 있다. 옷을 찾느라 서랍장을 열어 이리저리 뒤져보니 내 기억에도 한동안 잊혀있던 오래된 옷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보자마자 나는 각각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나와 연이 닿은 옷 들인 지가 바로 떠올랐다. 내가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할 때에도 옷장 가장 구석의 컴컴한 곳에서 다시 부름 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그 녀석들. 그저 ‘옷’ 이상의 가치와 서사를 담고 있는 그 친구들.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 보살펴줘도 일방적으로 나를 떠나는 누군가가 있으면,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지내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누군가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내 정신을 홀려가면서까지 나를 떠나버린 무언가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본인 의지대로 선택한 새로운 환경에서는 차라리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배터리의 새로운 여정에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