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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Apr 09. 2024

홍해의 얼굴들

-이집트 다합, 영원한 청춘들의 도시

 


 택시는 황량한 큰 길가 한편에 멈추어 섰다. 기사는 이곳에 세워달라는 내 말이 못 미더웠는지 이곳이 목적지가 맞냐며 거듭 내게 물었다. 나는 이곳이 분명하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사실 나도 속으로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핸드폰 화면 속 지도뿐이었다. 구글맵은 나의 목적지가 여기서부터 도보로 3분 거리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사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그를 등진채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나의 숙소는 ‘할랄하우스’라고 적힌 팻말을 지나면 나오는 파란 대문집이었다. 나는 20키로짜리 캐리어를 끌고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동서남북으로 제자리 돌기를 했다. 분명 이곳에서 가까운 곳인데 어느 방향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최소한의 힌트만 손에 쥔 채 관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방탈출 게임을 할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그렇게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어두운 밤에 한참 헤매고 있을 무렵, 나의 SOS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온 사람들을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 



 숙소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조금 좁은 느낌이 들었다. 방에서 간단히 짐 정리를 마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나까지 여섯 명이 거실에 모여 있으니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남자 셋에 여자 셋. 모두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듯 도망친 장기여행자이거나 다이빙이 너무 좋아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런 접점 없이 살아온 우리가 이곳, 이집트의 다합에서 우연히 만나 오늘부터 한 집에 사는 식구가 된 거였다. 어딘가 생경한 다합의 식구 개념은 이곳의 사람들에겐 숨 쉬는 것과 같은 당연한 경우이고 하나가 되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밤엔 대부분 맥주, 담배, 나른하거나 신나는 음악,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보따리가 함께했다. 어느 정도의 사회와 인생의 경험치가 쌓인 나이에 만난 우리는 여행, 연애, 결혼, 친구, 일, 꿈 등 같이 나누고 토론할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쩌면 그 편안함 속의 솔직함은 앞으로의 재회가 기약되지 않은, 1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만남이 주는 익명성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 포장 없는 날것의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 솔직함은 응당 존중받았다.



 우리는 술기운에 맘 속 깊은 곳에 있던 비밀 이야기들을 해가 떠오는 시간까지 나누다가 각자의 침대에서 기절하듯 잠에 들곤 했다. 느지막한 오후에 부스스 잠에서 깨면 다 같이 늦은 첫 끼를 먹고 바로 홍해로 향했다. 해변에 죽 늘어진 카페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음료를 시켜 몸을 덥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이미 먼발치에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향해 수영했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나였지만 물안경과 오리발, 그리고 프리다이빙에 익숙한 그들과 함께라면 어딘지 모를 곳에서 자신감이 솟았다. 우리가 그렇게 한참을 다이빙 연습을 하며 깔깔거리고 있으면 홍해를 붉게 비추던 태양이 질투하듯 이내 자취를 감추곤 했다.



 꾸밈없는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다합에서의 속 편한 시간들은 야속하게도 속절없이 흘러갔다. 남은 날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쉬웠던 나는 그즈음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엔 별자리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별들이 빼곡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나는 괜히 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다. 별 하나하나를 기억 속에 오래 새겨두고 싶어서 나는 그 모습 그대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면 까만 배경에 다합 식구들 눈 속에 간직된 고유의 별들이 다시 하나하나씩 아른거렸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때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지냈던 기억들이 꿈인 것 같아서 가끔 혼란스럽다. 그럴 땐 블루홀에서 다이빙 연습을 하다가 산호에 긁혀 흉터가 남은 곳을 보며 ‘그 기억이 진짜였구나.’ 한다.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내느라 아름다운 추억의 힘이 필요해질 때 나는 다시 택시를 멈춰 세울 것이다. 다시 불안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끌고 길을 찾을 것이다.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마중 나온 그들을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음껏 웃고, 즐기고, 행복할 것이다. 저무는 석양을 보며 감동에 벅차올랐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문득 그때의 우리가 그리워지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저 멀리 붉은 석양을 머금은 홍해에 여섯 청춘들이 유영하며 노닐고 있다. 마치, 그들의 청춘은 영원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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