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란한 마음은 뒤로하고 일어나자마자 바지런히 요리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십년지기 친구들이 내 생일파티를 위해 우리 집으로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자취 생활로 꽤 능숙하게 요리를 하는 나는 친구들에게 뻔한 배달음식 대신에 내 정성이 담긴 요리를 직접 해 주고 싶었다. 아니 사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조금 부지런을 떨면 음식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아낄 수가 있었다.
최대한 일찍 준비를 시작한다고 했는데도 중간중간 빠진 재료를 사러 다시 나갔다 오고 여러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하려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혼자서 먹을 양을 간단히 만들어 먹은 적은 많지만 여러 명이 먹을 양을 한 번에 조리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정신없이 눈앞에 닥친 임무들을 해치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요리하느라 바빠서 정신도 없었고 저장도 안 된 모르는 번호였지만 그 전화는 왠지 꼭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옷에 닦고 급하게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ㅇㅇㅇ 배우님 되시죠?"
"(엇, 무슨 일이지?) 네. 맞는데요."
"어제 오디션 보셨던 '마법 같은 사랑'(가명) 팀이에요. 리딩 오디션 오실 수 있나 해서 연락드렸어요."
"리딩 오디션이요?"
"네, 뭐 간단하게 대본 한 번 리딩 해보는 시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어... 그럼 저 합격인 건가요?"
"네. 일단은요. 리딩 오디션이 2차 오디션 개념이에요."
"아, 네. 스케줄은 따로 연락 주시나요?"
"네. 오늘 안에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멍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묘한 성취감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 오디션 붙었대!!!" 동네방네 떠들고 싶었지만 최종 합격은 아니었기에 또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들뜬 나를 달래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일단은 지금 끓고 있는 닭발에 양념을 푸는 게 더 급선무였기 때문에.
마늘 족발, 국물 닭발, 떡볶이에 참치 주먹밥. 그렇게 오늘의 생일 주인공이 직접 차린 (비주얼은 썩 파는 것에 못 미쳐도 맛은 그럴듯한) 생일상이 완성이 되었고 우리는 지난 추억을 더듬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면서 오랫동안 묵혀놓은 회포를 풀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즐거운 생일날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나는 내 마음속 꿈과 목표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수많은 축하 메시지와 선물들보다도 가장 소중했던 생일 선물은 단연 "오디션 합격"이라는 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많은 사람들 앞에 드디어 당당히 배우로서 설 수 있는 날이 곧 오는 걸까.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나면 보이지 않던 길이 드러나는 것처럼 막연했던 꿈이 조금씩 선명하게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