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나요?

by 최예또


기다리던 오디션 합격 연락은 오디션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 까지도 끝끝내 오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이틀 동안 김칫국을 사발로 마셨던 터였다. 밤이 깊어지다 못해 해가 어스름히 떠올 때까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선잠에 들었다가 몇 번이나 깨서 혹시나 연락이 왔을까 하는 맘에 밤잠도 설친 나의 꼴이 우스꽝스러워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게 큰 공연에서 감히 경험도 실력도 없는 나를 뽑아줄 리 없지. 패배는 씁쓸했고 인정은 허망했다.


그다음 오디션 일정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나는 다시 자유연기를 손보고, 독창적인 자기소개까지 준비하며 다시 한번 만전을 기했다. 이번에 오디션을 보는 곳은 현장에서 지정연기(지정된 대본으로 하는 연기)가 주어지는 곳이어서 극장에 도착한 후에 내가 지원한 배역의 대사를 받아볼 수 있었다. 관람한 적 없는 공연이라 대본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대본에서 최대한 내가 잘 살릴 수 있을만한 포인트를 캐치한 후 무대에 올라섰다.


객석엔 총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앉아있었다. 그들은 여느 오디션장에서처럼 나를 잠깐 훑어보고는 다시 서류에 눈길을 묶어두며 자기소개를 요구했다. 나는 그들의 정수리가 아닌 두 눈이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참신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한 마디를 내뱉기가 무섭게 그들은 바로 고갤 들어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你好!认识你们很高兴!
안녕하세요! ㅇㅇ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이번에 준비한 필살기도 역시 중국어였다. 비록 이 연극 안에서 내가 지원한 배역은 중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배역이었지만 뭐가 됐든 강하게 임팩트를 남기고 싶다는 게 내 목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쨌든 내 목표는 성공한 셈이었다. 적어도 한동안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느닷없는 외국어에 그들은 당황하며 나에게 중국사람이냐 물었고, 나는 그런 건 아니지만 중국에서 6년을 유학하고 좋은 대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과 나의 끼를 주체할 수 없어 이곳에 섰노라고 말했다. 당돌한 나의 태도에 그들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냉정을 되찾더니 그럼 어디 한 번 준비해 온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그들은 나의 자유연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지정연기를 요청했다. 내가 센스껏 '호호호'라고 적힌 지문을 콧소리를 감미하여 '홍홍홍'이라고 표현했더니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들을 웃겼다는 사실만으로 꽤나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연기가 끝나고 다시 객석을 바라보니 방금 내 연기를 보고 가장 크게 웃은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신반의하는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머지않아 오른쪽에 앉은 한 중년남성이 이야길 시작했다.


"센스는 있는데 기본기가 없어 연기에. 연기가 너무 날 것 그 자체야. 아, 참 아쉽다. 연기 어디 가서 조금 배울 수 없나? 학원이든 극단이든 반년 정도 배우고 와. 근데 극단을 들어가면 돈도 못 벌고 고생일 텐데 견딜 수 있겠나?"


그러자 내 연기를 보며 가장 크게 웃었던 젊은 남성이,


"그런데 저는 그래서 더 좋은데요? 연기 배운 사람들이 하는 뻔한 연기 말고 저는 오히려 이 날 것 자체의 느낌이 좋아요. 여기서 조금만 다듬으면 되는 문젠데 괜히 학원 가서 남들이랑 똑같은 연기는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며 중년남성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내 앞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들을 몇 번 정도 주고받다가 마침내 고생했다며 나를 내보냈고, 내가 극장을 나가는 순간까지 내 연기에 호평을 남겼던 젊은 남성은 "파이팅!" 하며 나를 북돋아 주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내 연기를 좋아하고 응원해 준다는 자체만으로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집을 가는데 머릿속이 어지러워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는 기분이었다. 이 나이에, 이 상황에 극단을 들어가? 아님 학원을 등록해? 그러면 돈은 언제 벌어? 그러다가 나이만 먹으면 어떡해? 아니,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면 제대로 연기는 언제 해? 무대에 설 수나 있을까?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게 맞나? 재능으로도 전공자와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는 걸까? 내가 지금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 지금 잘하고 있나?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싱숭생숭한 기분이 나아질 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집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내일 집으로 놀러 오는 친구들에게 대접해 주기 위한 음식 재료들을 사는 중에도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때가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 내일은 좋은 날인데.


그렇다. 하필이면 내일은 고대하던 내 생일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