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극단 사람들은 약 한 달간 매일같이 만나 낮부터 저녁까지 연습을 했다. 처음엔 리딩(대본을 보며 읽는 것), 그리고 블로킹(동선 및 액션을 맞추는 것)을 거쳐 런(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진행하는 것)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지하에서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밤낮없이 공연을 준비해야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그 모든 과정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이 순간 이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분에 겨울만큼 행복했다. 정말이지 이때의 나에게 물어봤다면 열정이 밥을 먹여준대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왜 신은 항상 내 편일 수는 없는 건지. 그렇게 한 달을 공들여 만든 공연을 드디어 관객에게 보여줄 때가 되었는데 세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한 폐렴'이라 불리던 미지의 바이러스는 점차 우리나라에까지 퍼지기 시작했고,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소극장 공연의 특성을 관객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의 공연은 줄 서서 마스크를 사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초창기의 직격타를 제대로 맞아버리게 되고 표가 팔리지 않아 공연이 취소되는 나날이 이어졌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이지 못하는 것도 속상한데 더 속상한 일은 내가 지인들을 초청해도 공연을 보여줄 수가 없다는 거였다. 기껏 공연을 보러 오려고 일정도 비워놨다는데 당일날 관객이 없어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말을 전해야 할 때마다 나는 점점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공연을 할 수가 없으니 주변에 나를 배우라고 소개하면서도 스스로를 배우라고 칭할 수 있는 건지 의구심이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우울의 구렁텅이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주변의 동료들은 이미 생활고로 인해 투잡에 쓰리잡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연 스케줄상 고정적인 일을 할 수 없기에 대부분은 택배회사나 물류센터로 일일 야간 알바를 나갔다. 나도 공연 스케줄이 잡혀있지 않은 날에는 열심히 단기 알바를 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메꾼 들 모아놓은 돈은 밑 빠진 독처럼 계속 줄어들고 있었고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는 사그라들만하면 다시 확산되기 일쑤였다. 나는 남들보다 부족한 게 많아서 오디션의 기회가 많아도 합격할 가능성이 적은데 새로 올라오는 배우 오디션 공고는 거의 씨가 마른 수준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