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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Feb 22. 2022

드라마 엑스트라 촬영을 하며 느낀 점.

가진 것 없이 배우에 도전한다는 것의 무모함과 패기 그 사이쯤 어딘가에서



 다니던 직장을 호기롭게 때려치우고 연기를 하겠다고 한 지도 벌써 세 달째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나는 다이어트로 약 5kg 정도를 감량했고 교정도 마쳤고 연기학원도 다녔고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약 2년 전의 연극배우에 대한 도전 때 운을 다 썼던 탓일까, 아니면 도전하는 것마다 소정의 성과를 이루는 것이 신께서 못마땅했던 것이었을까. 이번 도전에서는 철저한 준비 끝에 열심히 이곳저곳에 프로필을 돌리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연기학원에서 선생님에게 연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하여 1월 말부터 드라마 촬영 현장에 보조출연을 나가고 있다. 우리말로 하면 보조출연, 영어로 하면 엑스트라다. 얼굴 한 번 제대로 잡히기 힘든 배경처럼 찍히는 그런 역할. 그래도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현장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이 더욱 중요했으니까.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한 후에 몇 곳의 회사에 소속될 수 있었다. 대부분 까다로운 기준은 없었으며 간단한 사진과 사는 곳, 나이 등의 정보만을 요구했다. 보조출연자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요구되는 건 바로 '의상'이었다. 상황과 장소에 맞는 의상이 촬영 씬의 종류에 따라 여러 벌이 필요한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 특성상 사무실, 법원, 병원 등의 씬이 많기 때문에 정장은 기본이고 구두, 핸드백 같은 소품까지 필수로 구비를 해두어야 했다. 다행히 나도 한 때는 취직을 생각했었기에 포멀한 오피스룩은 준비되어 있어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처음 촬영을 나가기 전 날 밤, 의상을 몇 번이고 점검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해두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게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기대되는 만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잘 못하면 어떡하지', '준비한 의상이 안 어울린다고 욕을 먹으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촬영 현장엔 보조출연자들을 통솔하는 반장이라는 직책의 관리자가 있는데 그 반장의 성격에 따라 일이 힘들기도 하고 쉽기도 할 수 있다는 후기글을 많이 보았던 터였다. 다행히 그날 처음 만난 반장이라는 분은 크게 까다롭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첫날이라고 얼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눈치껏 행동했다. 다행히 큰 사고나 지적 없이 첫 촬영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수많은 드라마에 보조출연을 했다. 처음에는 화면으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또 경우에 따라서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는데 이 일도 반복되다 보니 그런 흥미나 호기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생각보다 복잡했으며 사람들은 예상보다 예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장면 장면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가는지를 알고 나니 모든 촬영 스태프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날은 사무실 씬을 찍는 날이었다. 파주에 위치한 실제 사무실을 섭외하여 주말 동안 촬영이 진행되었다. 약 스무 명 정도의 남, 녀 보조출연자들이 동원되었는데 개중에는 비주얼이 꽤나 좋은 편이라 '왜 보조출연을 하지?'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보조출연을 하며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기에 '나와 같은 배우 지망생인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몇몇은 보조출연이 아닌 단역으로 섭외가 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하구나.'라고 여기고 촬영에 임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단역이라면... 적어도 대사 한 줄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촬영이 아침 9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진행되었는데도 몇몇의 단역배우들은 대사 한 마디조차 내뱉지 못했다. 그저 다른 보조출연자들에 비해 주연배우들과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는 것. 그것 말고는 보조출연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역이 보조출연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엔딩크레딧에 배역과 이름이 포함이 된다는 점인데 대사 한 마디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자 프로필을 내고 오디션을 거쳐서 단역이라는 역할을 얻게 되었을 텐데 대사 한 마디도 주지 않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단역에도 급이 존재하는구나. 그 얼굴만 비추는 단역 하나조차 따내는 게 이렇게 막연한데, 나는 언제 저 위로 올라갈 수가 있을까? 갑자기 배우라는 목표가 엄청나게 멀고 어려운 목표처럼 느껴졌다.


 길고 긴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모두가 코를 고는 차 안에서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칠흑 같은 어두운 밤길을 창문 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며 여러 생각들을 했다. 내가 방금 느낀 그 감정은 무슨 감정이었던 걸까. 박탈감? 열등감? 자기합리화? 자기혐오? 아니면 세상부정?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 한편에서 아버지가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토록 반대하던 배우, 즉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희끄무레 웃으며 응원하겠다던 아버지. 같이 티비를 보며 채널을 돌리다가 연예인 자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더니 불평을 늘어놓으시는 거다.


 "아니 부모가 연예인이지 자식이 연예인이야? 연예인 부모 둔 놈들은 저렇게 티비에 얼굴 몇 번 비추고 다 연예인 해 먹지.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돼."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듣자 왈칵 속에서 불이 났다.


 "아빤 왜 내가 열심히 하겠다는데 거기다가 찬물을 끼얹어? 요즘은 아무리 부모가 연예인이라도 자기가 실력 없으면 절대 못 떠. 그리고 부모덕 보는 게 연예계만 그래? 회사에 낙하산은 없을 것 같아? 왜 시작도 전에 기죽게 그런 말만 하고 그래?"


 내 말을 듣자 아버지는 미안해진 모양이었다. 내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니었다'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나는 내가 하려는 직업을 안 좋게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미웠다. 열심히만 하면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서. 나도 내가 유명해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을 것 같다며 꼴에 관대하게 이해하는 척을 하면서.


 그런데 그날 촬영을 마치고 집을 가는 그 차 안에서 갑자기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막연하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불안감.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이 아버지는 내게 주지 못해 느끼고 있었던 거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을 좋아했던 아이. 자기와는 다르게 활발하고 사교적이며 자기표현에 거침이 없던 아이. 아버지는 나의 재능을 진작에 알아봤지만 특히 여자라면 위험한 일이 많은  업계를 가서 상처받게 될까  항상 노심초사하셨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땐 항상 나의 행복이 우선이었기에 어쩔  없이 응원하겠다고 하셨을 테다. 이왕 이렇게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데 돈도, 인맥도 아무것도 도와줄  있는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람들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혹시라도 아이가  도전에 실패하거나 실망하게 되었을 , ' 탓이 아니라  업계의 이러한 패악 때문이야'라고 위로라도 해줄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욕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힘들고 성공 가능성도 낮은 가시밭길을 이제 와서 굳이 가겠다던 아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왜 그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수많은 생각과 후회의 감정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도 어째선지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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