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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Feb 24. 2022

잘해줘도 욕먹는 대한민국의 K-도터들을 위해.

효도의 반댓말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


 며칠 전 늦은 저녁에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약 두 달 전쯤 말다툼을 한 후 안 좋게 전화를 끊은 후로 통 연락 없이 지내오다가 보험비 청구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연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받지 않고 싶은 마음이 순간 일었으나 급한 용건일 수도 있으니 일단은 받아보기로 했다. 엄마는 조금은 어색한 기색으로 안부나 식사 여부 같은걸 조금 묻더니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돈이 필요한데 조금 해줄 수 있겠냐고.


 나는 그때 근무를 정리 중인 헬스장에서 수업이 끝난 후 남아 춤 연습을 막 하려던 참이었다. 일단은 지금 내가 밖에 있으니 일이 마무리된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연습 후에 영상까지 찍으려는 안무가 있었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로 다른 일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돈을 구해야 할까'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거절해야 엄마가 기분이 덜 상할까'의 문제 때문에. 한편으론 '전화를 받지 말걸. 문자로 거절했으면 훨씬 더 쉬웠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연습을 다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사정 딱한 건 알겠지만 내가 지금 여유가 없어서 엄마를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고. 엄마는 내 명의로 대출을 받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20대 후반 이제 막 사회생활에 적응하며 부딪히는 단계에서 마음에 부담이 될만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단칼에 잘라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실랑이가 이어질 것 같았다. 나는 확고하게 나의 입장을 통보했다. 엄마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넌 정말 남보다도 못하구나.


 엄마의 마지막 그 말이 자꾸만 내 가슴을 콕콕 찔러댔다. 불편한 감정은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꾸만 내가 나쁜 딸이 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과 친척들이 '매정한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새벽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새벽을 지새우고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는데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외할머니가 남긴 메시지였다.


 [네가 그런 아이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너를 낳아준 친엄마가 아니냐.]


 메시지를 확인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새벽 내내 두통처럼 내 머리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빠르게 온몸을 빠져나간 듯이 온몸에 한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나. 할머니도 손녀보다 딸 편이구나. 내가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할 때 엄마와 할머니는 내 흉을 보고 있었던 거구나. 순간의 죄책감과 미안함의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된 후 이성이 되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며칠간 내 생각을 곰곰이 정리한 후에 할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할머니, 저는 어려서부터 아빠가 돈 아끼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절약하면서 살았어요. 학생 때 용돈 받으면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참으면서 다 모았어요. 엄마가 그걸 알고 전에도 힘들다고 그래서 대학 다니면서 400만 원, 160만 원 두 번 빌려줬어요. 학생한테 그 금액 절대 적은 금액 아니에요. 나중에 빌려준 160만 원은 돌려달라고 거듭 얘기해서 받긴 했지만 400만 원은 아직 못 받았어요. 엄마 상황 안 좋은 거 알기에 받을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엄마는 제가 그렇게 도와줘도 고마움은커녕 제가 도와준 사실을 기억도 못해요. 제가 그때 다신 엄마한테 돈 빌려주는 일 없을 거라고 다짐했어요. 엄마가 할머니한테 그런 얘기는 하던가요? 안 했겠죠. 기억도 못할게 뻔한데.

 저도 여유 있으면 엄마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막 사회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딸이 대출 안 받아줬다고 나쁜 딸이에요? 제 미래 계획은요? 저는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할머니도 엄마 편이면 그냥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래도 낳아준 엄마라고요? 엄마 평생 제 교육에 신경 쓴 적 없어요. 제가 어느 학교 졸업했는지 이름도 모를걸요.]


 결국 또 나쁜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번엔 어째선지 후회보단 후련한 감정이 더 크게 들었다. 할머니께 보낼 문자를 쓰다 보니 내 판단에 대한 합리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막말로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번엔 후련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할머니 또한 어찌 보면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내게 엄마 된 도리를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태어나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기초적인 욕구도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녀는 내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으며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씻기고 매일 밤 배를 토닥이며 잠을 재웠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컸을 땐 밥투정을 하면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데려가 주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게 해 주었다. 부반장이 되던 날엔 반에 햄버거를 시켜주었고 체육대회날엔 친구들 몫까지 번데기를 사주었으며 생일파티 날엔 집으로 초대한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상 한가득 해주었다.


 이러한 그녀의 보살핌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을 기점으로 끊겨있다. 그즈음 부모님의 불화가 심해져  분이 결국 이혼을 하신 탓이다. 나의 양육권은 아버지가 갖게 되었고  이후로 엄마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살았지만 1년에 두세 번밖에 보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그녀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낼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에게 자주 연락조차 않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그런 것에 서운함을 내비치면 엄마바쁘게 돈을 벌어야 하게  이유를 모두 아빠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 나는 한편으론  양육비는 전적으로 아빠가 부담하고 있고 엄마는 1년에 한두  만나    사주는  전부인데 그걸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하곤 했다. 내가  학년  반인지도 모르는 명품을 두른 엄마보다,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친구들과 다투지는 않았는지  한마디 걸어줄  있는 엄마가 절실히 필요했던 나이였기에.


 '충과 효는 삼국시대로부터 내려온 한국 유교의 보편적 정신이다'

 인터넷에 '한국의 유교사상'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어른들에게서, 또 주변 이웃에게서 이러한 내용을 끊임없이 세뇌당하며 자라왔다. '효'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가치이고 그 어떤 가치보다도 제일 우선시되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그렇다면 '효'가 있기 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도리에는 어떤 게 있는가?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 하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하는 도리는 그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이는 아마 모성애나 부성애를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의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 판단에 반기를 들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했던 연극 작품에서 '엄마'역으로 나오는 배우의 독백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그 당시엔 '엄마'역 배우의 절절한 서사와 눈물연기를 보며 한바탕 같이 울만큼 가슴을 울리는 대사였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이 구절을 냉정하게 바라보니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조금 더 이기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엄마만 엄마가 처음인 게 아니라 나도 딸은 처음인걸. 엄마는 적어도 열 달 동안 날 품으며 날 만날 준비를 했겠지만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세상에 나와야 했어. 그러면 이 관계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까?


 나도 언젠가는 부모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반씩 닮은 예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기르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여기고 있다. 나와 나의 남편이 준비가 되었을 때, 주변의 축복을 받으며 아이를 출산하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줄 것이다. 안정적인 주거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나의 인생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때로는 시련을 겪을 때 상처받고 회복하여 스스로 온전히 일어설 수 있도록 믿음을 주고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준 사랑을 토대로 아이가 선택한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보다  중요하고 우선시 되는 가치이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에 앞서서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 그것이 아이를  세상에 태어날  있도록 선택을  부모가 응당 해야만 하는 도리인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방법이  넘은 '집착' '강요', '조종' 방식으로 발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받는 순수한 사랑의 크기를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챌  있다. 그렇기에 그런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많이 느낀 자식일수록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당신이 부모님께 그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 그만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비로소 마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있었다.


부디 스스로 죄를 짊어진 수많은 K-도터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기를.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는 더 행복해져도 된다는 걸 꼭 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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