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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Mar 09. 2022

이제는 인맥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

-개똥철학; 인스턴트 인간관계론


 처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의 추천으로 '정글만리'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강조했던 중국 문화중 중요한 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꽌시', 한국말로 하면 '관계' 혹은 '인맥'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꽌시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와 비슷했음 비슷했지 그 수준이 엄청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학생 때라 느낄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중국에 '꽌시'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연고주의'가 있다. 학연, 지연, 그리고 혈연. 사회의 악이자 척결해야 할 비리의 온상이라는 수식어를 피할 수 없는 단어들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값이면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는 사람을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한 리스크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는 있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현상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고.


 아무튼 나는 오래도록 듣고 느끼며 체감했던 부분들 때문에 이 '인맥 관리'에 상당히 많은 애를 써왔다. 학생 때는 교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때마다 안부인사를 놓치지 않았고,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선배 대접하며 치켜세워줬으며, 나보다 경험이 없는 동생들에겐 너그러운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아낌없이 지갑을 열기도 했었다.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얼굴 좀 보자 하면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약속을 잡았고, 하루에 약속을 두 탕, 세 탕씩 뛰는 내가 남이 보기엔 소위 말하는 '인싸'로 보일 것 같아서 남몰래 으쓱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실속 없는 만남들에 지쳐간 게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킬링타임용 만남들에 들어가는 내 생활비가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뼛속 깊은 절약정신 덕분에 내 한 끼 밥을 먹을 때조차 비싼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기본 메뉴만 고집하는데, 친구들과의 술 약속에 그 몇 곱절의 지출이 발생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굳이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젠 더 이상 술 깨고 나면 기억도 못할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주고받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게 느껴지지가 않았기도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해지는 숙취 또한 다음 날 나의 후회를 더욱 배가시켰다.


 이런 고민들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공간 속에서도 시작되었다. 언젠가부터 내 SNS 피드에 올라오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축하해주고 싶지도 않은 지인들의 잘 사는 이야기들이 아니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팔로우를 끊자니 너무 대놓고 절교선언을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두자니 그걸 보는 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싫어서 고민하던 때에 '제한하기'라는 기능을 알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대놓고 관계를 손절하긴 싫은데 교류는 하고 싶지 않은 관계가 비단 나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쪼잔한 내 모습을 들킴과 동시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라 기분이 묘했다.


 그 기능을 알고 나서 잘 활용하다 문득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던 때가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그들과 관계를 유지해야 해?

 

 나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마음이 변명하듯 이유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첫째, 내가 언젠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잖아.

 둘째, 그들에게 내가 쪼잔하거나 일방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잖아.

 셋째, 그들과 얽혀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잖아.

 넷째, 너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잖아.


 나는 그 이유들을 되뇌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곧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X까.




 얼마 전 나의 지인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연락처를 정리하고 카카오톡을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했더니 전 직장 동료들, 취준모임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 등 근황을 알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이 다 걸러져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그녀는 400명대였던 카카오톡 친구가 고작 70여 명이 남았는데 그렇게 속이 시원하지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땐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싶은 생각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카카오톡을 다시 가입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남은 대화 및 추억들이 많아 한 번에 정리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멀티 프로필' 기능을 이용하여 나의 소식을 제한하고, '숨김'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의 소식을 제한할 수 있는 중간 해결책을 찾았다. SNS는 기존 계정을 정리하고 새 계정을 만들어 팔로우하고 싶은 사람들로만 나의 공간을 채웠다. 적어도 좋은 소식에 내가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새 SNS는 더 이상 나에게 박탈감도, 우울감도 주지 않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 것도 못지않게 힘든 일이란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학교를 다니며 사회를 배운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나의 의지는 전혀 개입되지 않은 분류를 통해 좋든 싫든 매일 보거나 같이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관계들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관계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안위를 보장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며 관계를 배운다. 누구나 친구 때문에 학교 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졌던 적도, 정말 가기 싫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떻든 간에 내 학교, 내 반, 내 자리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렸을 때 내가 처음으로 겪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계속 봐야 해서 힘들었던 경험이었다.


 나이가 들고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면서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들엔 '자율성'이 생겼다. 직장에서 만나는 경우 조금의 예외가 생기지만 그래도 학생 때와 다른 점은 조직 내 '지위'와 '능력'으로 계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불편한 사람이 나보다 계급이 낮으면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내가 계급이 낮다면 다른 조직으로 이동한다는 선택사항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약간의 강요성이 있는 직장의 경우를 제외하면 결국 사회에서의 모든 관계들은 나의 선택으로 꾸려지게 된다.


 점점 발전 중인 과학은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과 소통을 더욱 쉽고 가볍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화상통화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예전같이 우편이나 전화가 소중했던 시대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갖는 의미가 크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것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숙명이다. 


 쉽게 맺은 관계라고 해서 그 무게도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알고 지낸 가족에게서 상처받을 때도 있고, 우연히 만난 이름도 모를 작자에게 가벼운 위로를 얻을 때도 있다. 결국 모든 관계에서 그 중요성과 무게는 서로가 정하는 것이다.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못하는, 나의 나쁜 면을 끄집어내는 사람은 결코 무거운 관계라고 칭할 수 없다. 그런 관계들을 끊어내는 것이 처음엔 어려울지 몰라도 자기 확신을 가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보는 좋은 사람 또한 분명 있을 것이다. 나를 끌어내리고 힘들에 만드는 관계가 아닌 나를 외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관계가 많아질수록 내 주변은 더더욱 그런 관계들로 채워지게 된다. 주변 때문에 힘들고 지친다면 다시 한번 나와 내 주변을 되돌아보자.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그런 시대라는 걸 다시 한번 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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