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예또 Mar 12. 2022

내 손으로 샤넬 립스틱 한 번 안 사본 MZ인 게 자랑

걸치고 있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명품인 게 중요하지.

 요즘은 유명한 게 참 많다. 예전에는 TV나 라디오뿐이었던 정보 전달 매체도 인터넷의  보급과 플랫폼의 확장으로 인해 수도 없는 종류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셀럽, 인플루언서 그리고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트렌드의 변화는 어찌나 또 빠른지, 한 땐 할머니도 랩을 하는 힙합의 시대가 오더니 어느샌가 꼬맹이도 트로트를 부르는 트로트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이젠 노래를 넘어 춤의 시대가 왔는지 스트릿 댄서들이 광고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매일 이 '유명한 것들'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세계엔 내가 모르는 너무 많은 '유명인'과 '명품'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너도나도 내가 제일 힙하다-예전 말로 하면 핫하다-고 외치고 있으니 무엇을 선택하고 소비해야 할지 혼란스러움이 커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신생 후발 주자들에게 경쟁하기 위해 굳건히 자리를 지켜오던 전통 명품 브랜드들은 반대의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더 이상 자신들이 잘났다고 광고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대중들에게 멀어지는 방법이 더 대중들을 열광케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자원의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판단되고 분배된다는 점은 경제 관련 이론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희소한 자원을 가지기 위해 살아가는 데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보석이나 장신구들을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하곤 한다. 희소하다는 것, 그것은 곧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물건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보다 내가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기대하며 그런 물건을 구매하곤 한다.


 그래서 보통은 이런 명품들이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물건들인 경우가 많다. 명품 브랜드들의 상위권 판매 품목들에 시계, 가방, 신발 등 쉽게 눈에 띄는 아이템들은 많지만 오히려 내 몸에 더 자주 닿는 속옷, 침구, 수건은 발견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는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의 대다수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점을 반증한다. 애초에 희소성 자체가 초과수요가 있어야만 성립이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절대 매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우리 MZ세대들은 수많은 경쟁을 거치며 자랐다. 매체에서는 연일 '부모보다도 가난한 최초의 세대', '스펙에 비해 최저급여를 받는 세대'라며 떠든다. 우리는 윗세대와 세대차이로 갈등하고, 같은 세대끼리는 남녀가 갈라져 서로를 헐뜯고, 아랫세대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금만  버티면, 조금만  올라가면 꽃길은 아니더라도 자갈밭길 정도있기를 희망하며  걸음  걸음 내디뎠는데 막상 도달하고 보니 끊임없는 경쟁구도뿐이다.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황들이 놓이는 것이다.


 이럴 때 흔히 보상심리라는 것이 생긴다. 남이 인정해 주지 않는 나의 가치를 나 스스로라도 인정해주고 싶으니까. 확신은 없지만 잘해오고 있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명품을 소비한다. 그것이 가장 쉽고, 빠르고, 정확하며 만족도가 높은 자기 위안의 방법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희소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아쉽게도 그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명품의 가격을 알고 나면 '헉, 부럽다.'라는 생각보다 '헉, 돈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거나 티내진 않고 속으로만 몰래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명품에 관심이 없어 캐치하지 못한 주변 지인들의 명품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걸 다 알게 되면 놀람의 감정이 더 커졌을지도.


 나는 왜 명품에 관심이 없게 되었을까. 학창 시절 땐 당연히 수중에 가지고 있는 용돈이 얼마 되지 않아 감히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내가 유학을 떠나고 대학을 가면서 주변에 명품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몇몇 생기기 시작했다. 굳이 명품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부모의 부를 과시하던 친구들도 몇몇 있었고. 처음엔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그런 이들을 주변에 가까이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 생각은 반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명품을 좋아하거나 부모의 재력을 과시하는 친구들치고 모임에서 쿨하게 한 턱 내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말하자면 더 인색한 편에 속했다. 받는 용돈에 비해 자기에게만 투자하는 비용이 너무 큰 탓에 친구들과 더치페이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구차하게 구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그런 몇 명의 친구들을 겪고 나자 명품에 대한 환상이 깔끔히 깨어졌다.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얼마나 화려한 걸 두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배경이 어떻든 굳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명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그 흔한 샤넬 립스틱 하나 직접 사 본 적이 없다. 아니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선물용으로 구입한 적은 있어도 내가 쓰기 위해 산 적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입생로랑 틴트나 샤넬 향수 같은 것들은 모두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나를 생각하며 고른 선물로 값비싼 것들을 받을 땐 고마운 마음으로 받고,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하려 애쓴다.  


 그렇다고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모든 사람들의 본인의 가치 판단 기준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또 -지독한 짠순이 입장에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해주어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에 감사하다. 아마 나 같은 짠순이만 있다면 이 세상 경제는 마비가 될 터이니.


 또한 내가 지금 명품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소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아니다. 지금의 나의 가치 판단 기준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단편적인 나의 외적인 모습'보다 '나의 꿈', '나의 목표', '나의 생각'에 있다 보니 명품 소비보다 저축에 비중을 두는 것일 뿐. 언젠가 나도 명품을 어렵지 않게 소비할 만큼의 수입 레벨이 되고 권위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저 그때의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소비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기준과 신념을 가지고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인맥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