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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Mar 17. 2022

힘들 때 양파를 써는 건 의외로 도움이 된다.

힘들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에 다다라서 반려견을 안고 구석가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위층 아저씨를 마주칠 수 있었다. 아마 아내분을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나는 목례를 하며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본인의 모양새가 조금은 부끄러웠던지 나를 보며 맹렬하게 짖는 품 안의 반려견을 나무라는 척하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일순간 지난 추억이 강하게 떠올랐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본가가 경기도 남양주였을 때 아버지께서는 항상 내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마꼬-올해 17살이 된 말티즈-를 안고 내가 도착할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오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곤 하셨다. 더운 여름날도, 추운 겨울날도 아버지는 항상 내가 오기 전에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탄 버스가 도착하면 내가 내리기도 전에 품에 안은 마꼬에게 '누나 왔다'라고 속삭였던 탓에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빠르게 휘날리는 마꼬의 꼬리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9년째 혼자 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시작된 타향살이는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그중엔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지낸 기간도 있지만, 가족과 떨어져 산지는 벌써 10년이 좀 못 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많은 일과 시련을 겪었고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해쳐나가며 많이 강해졌으며 그로 인해 독립적인 성격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이란 너무 가까워도 자주 싸우게 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애틋한 존재라는 말에 깊게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친구들은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냐고 많이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그들이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 혼자 사는 게 힘드냐니? 가족과 함께 사는 게 더 힘들지 않아? 물론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어서 나는 혼자 살면 힘든 점도 있지만 자유로워서 좋은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둘러대며 대답하곤 했었다. 아무 때나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벌여도 되고, 혼자 있고 싶을 땐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 쉴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으니까.


 그러다 그날 우리 집 앞에서 우리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누군가를 보게 된 그 순간 힘겹게 잊으려 했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치밀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왔는데 마음이 많이 헛헛했다. 나에게도 나의 귀가를 기다리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형용 못할 쓸쓸한 감정을 들게 했다. 그랬다. 가족이 있던 나의 집에는 내가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었지. 집 안의 황망한 고요가 쓸쓸해진 내 마음에 소금을 뿌렸다. 나는 지금 외로운 거였다.


 언젠가부터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됐다. 그게 나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터놓으면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식의 감정적인 위로밖에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이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라는 건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힘들지 않냐며 내가 힘들다고 말해주길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본인들이 힘든 것도 합리화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힘든 사람에서 힘든 사람'들'이 되는 것뿐 아닌가? 어떤 반응이든 내겐 일말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전에서 '힘들다'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그게 꽤나 큰 역할을 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정말 힘들다고 느껴지지가 않았거든. 그런데 힘겹게 지우고 잊고 있던 그 감정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그렇게 누르고 잊으려고 했던 그 감정이 결국은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거구나. 나는 정말 힘겹게 무시하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집에 담가놓은 양파장아찌를 다 건져 먹고 나니 장아찌액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버리긴 아깝고 재활용하려면 빠른 시일 내에 새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도 별로 피곤하지 않아서 맘 잡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새로 산 양파가 아주 실했다. 내 주먹보다도 한참은 큰 양파 두어 개를 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양이 꽤 되었다. 눈이 좀 맵다 싶더니 눈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르르 흘러내리던 눈물은 어느새 굵은 닭똥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훔쳐내며 남은 양파를 마저 써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물이 흘러서 슬퍼졌는지, 슬픈 도중에 양파를 썰어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 나는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었다. 양파를 다 썰고 나서도 한동안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휴지로 코를 팽 풀고 나니 몸 안의 수분이 쪽 빠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은 한층 가벼워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힘들다는 말을 숨기고 산 기간만큼 힘들 때 울어본 기억도 거의 나지 않았다. 슬픈 영상만 봐도 쉽게 눈물이 나는 건 내가 그만큼 감수성이 풍부해졌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날 양파 덕분에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니 무언가 알지 못할 짠한 감정이 들었다. 어쩌다가 난 힘들 때 우는 법도 잊어버리게 된 걸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양파를 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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