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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Jun 28. 2022

너를 지우려고 매운 음식을 시켰다.

-이별 후에 남는 찝찝함에 대해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는 노래 가사가 참 와닿는 오늘이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 것 같던 우리가 어떻게 이런 남이 됐을까. 너무 급했던 걸까, 너무 서둘렀던 걸까. 의미 없는 후회도 결국 우리 사이를 되돌려 놓지는 못했다. 참 오랜만이었다, 연애 뒤에 남는 이 찝찝함.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줬으면 했던 누군가가 더 이상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여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지금 이 순간엔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던 마음을 애써 감추고 모른 체해야 하는 어려움. 나의 소중한 추억들 속에서 너를 들어내 빈자리로 남겨둬야 하는 번거로움.


 함께 공유했던 시간이 많을수록 정리는 어렵다. 나의 경우 감정 정리보다 힘든 게 바로 물건 정리이다. 이별 후에 함께 할 미래를 당연시 여기며 샀던 물건들, 선물들 그리고 서로에게 보관 중인 물건을 돌려받는 일은 상당히 고역이다. 내 물건이니, 네 물건이니, 내가 냈으니 내 물건이니, 네가 냈지만 내 물건이니 하는 과정 속에서 아련하게 남아있던 일말의 감정마저 깡그리 소멸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별 후에 서로에 대한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이때 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번 이별에서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오밤중에 벌어진 작은 언쟁 끝에 나와 같은 공간에 있기 싫다며 내 앞에서 본인 물건만 싹 챙겨서 나간 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나에 대한 정을 한순간에 그렇게 떨어지게끔 만들었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네가 떠난 빈 공간에서 이기적 이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 돌려받을 물건 있는데...'.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너무 화가 나서 나와 아예 연락을 하지 않을까 봐, 너에게 맡겨둔 내 물건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나는 그 순간에도 그런 걱정을 했다.


 그래서 비굴하게도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이 좋지 않음에도 나는 그걸 티 내지 않고 너에게 계속 살가운 답장을 했다. 네가 어제 한 행동을 후회하듯 살갑게 다시 연락을 취했을 때에도 나는 너에게 돌아갈 마음이 추호도 없었지만 살살 받아주는 척을 했다. 다행히 너는 네게 있던 내 물건을 잘 돌려주었고, 그걸로 이제 우리의 연락은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겐 이제 더 이상 네 비위를 맞춰줄 이유가 없었으니.


 집에 돌아와 네게 받은 물건을 확인해 봤다. 너의 옷과 비슷하게 생겨 네가 잘못 가지고 있던 내 티셔츠 한 장이 곱게 개어져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난 그날 별생각 없이 샤워를 마친 후 그 티셔츠를 입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옷은 보관되었던 곳의 냄새를 아주 잘 담아둔다는 사실을.


 그 옷을 입자마자 네 냄새가 났다. 그러자 그동안 애써 무시하고 잊으려 했던 너의 형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에 가장 효과적인 감각은 시각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사실 후각만큼 강렬한 감각도 없다. 사람 고유의 체취는 일정 시간 매우 가깝게 지냈던 사람만이 의식할 수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자주 쓰는 향수의 냄새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내 옷에 너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나는 순간 네가 나를 꽉 안아주던 그 느낌이 그리웠다.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옷을 바로 벗어버릴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가만히 있을  의식할  없지만 움직이거나 바람이 불면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났다. 그럼에도 내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너를 그리워하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를 이렇게 온전히 그리워 해야 하는 것도 나의 의무이지 않을까.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는데 나가기가 싫었다. 어쩔 수 없이 배달 앱을 켰다가 나도 모르게 아주 매운 옵션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냥 내 객기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받을 땐 매운 게 땡기던 내 습관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매운 고기 덮밥을 먹었다. 덮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웠다. 동남아의 매운맛을 쉽게 본 외국인을 처단하려는 듯이. 너무 매워서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지고 콧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는데 나는 그걸 남길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고작 덮밥 따위에게 지고 싶지 않았기도 하고.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이번엔 온몸에서 땀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밥 먹고 샤워해야겠다고 판단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니 이번엔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동남아의 쥐똥고추들이 내 속을 다 뒤집어 놓겠다는 듯이 배 안에 마그마를 만든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그걸 다 먹었을까'하고 후회를 하다가 '그래, 이것도 내 몫이다. 이 고통도 내가 견뎌내야 하는 몫이야.'하고 생각을 바꿨다. 너를 잊는 일이 힘들어야만 하는 일이라면 이 정도의 고통은 달게 받겠다는 심정으로.


 시간이 조금 흐르자 타오르던 얼굴도, 땀을 쏟아낸 몸도, 쓰린 속도 조금 진정이 된 기분이었다. 한바탕 땀을 흘린 덕분인지 이제 더 이상 내 옷에서 네 냄새가 나지 않았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입고 있었던 티셔츠에 코를 박고 냄새를 다시 맡아봤다. 내 체취에 가려 네 냄새는 희미하게 여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게 남은 너의 마지막 흔적을 이렇게 지웠다. 이별의 고통이 매운 음식을 먹고 참아내야 하는 고통 같은 거라면, 내가 다시 매운 음식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매운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엔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 버리는 냄새처럼, 내게서 멀어지는 너를 내가 잘 감당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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