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 대신 무고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나라.
모로코에 온 이상 사하라는 가봐야겠다는 얘길 했고 현지인 친구가 한 여행사를 소개해줬다. 자기 친구만 열 명 가까이 갔었는데 모두 만족했다면서 다른 곳 물어볼 것도 없이 가격도 제일 저렴하댔다. 예상했던 가격보다 퍽 저렴했기에 나는 그렇게 바가지 걱정 일절 없이 순순이 부르는 금액을 손에 쥐어줬던 것이다.
문제는 출발 후에 생겼다. 차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서먹함이 조금 사라졌을 즈음에 별생각 없이 가격비교를 해봤더니 모두 나와 같거나 더 저렴했던 거였다. 그때 까지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있었다.
한 차에 타서 같은 곳에서 내려 같은 투어를 하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은 우리가 둘둘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영어가 안 통하던 기사는 별다른 설명 없이 이름과 호텔만 확인한 채 우리를 한 팀씩 내리도록 했다. 이윽고 내 순서가 되었고 나는 혼자 덩그러니 다른 여행객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저급 호텔에 남겨지게 된 거였다.
당황했던 나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어볼만한 곳은 친구밖에 없었다. 별안간 버벅이던 직원은 와이파이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와이파이가 없는 그곳은 데이터도, 심지어 전화 신호도 통하지 않았다. 이 말은 으슥하고 허름한 이 호텔에 손님이라곤 나 하나 뿐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알릴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호텔 입구 앞에서 나를 멀뚱히 세워놓고 기사와 직원 둘이서 한참 실랑이를 한 것도 수상했다. 직감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그 호텔을 박차고 나와 도보거리에 있는 다른 일행이 들어간 호텔로 무작정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들어간 호텔에서 간신히 와이파이 신호를 잡자마자 나는 나를 여행사에 팔아넘긴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얘길 듣더니 여행사에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고 나는 기가 차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묵는 호텔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등급이 높은 호텔이라고 했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냈다고 더 고급을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과 비슷한 수준이면 됐는데 미안하다는 사과는커녕 뻔뻔한 대응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지만 이미 이 호텔에 들어온 이상 처음 호텔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이 정도 차이가 난다면 방 컨디션과 패키지에 포함된 저녁식사의 수준차이는 안 봐도 뻔했다.
직접 물어보겠다는 나의 말에 그 친구는 여행사 사장 연락처를 내게 보냈다. 여행사 사장이라는 작자는 내게 무슨 일이냐 물은 뒤 전화는 계속 거절하고 메시지는 보내는 족족 읽으면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호텔 로비에서 두시간이나 덜덜 떨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그의 연락만 기다려야 했다. 점점 열불이 뻗쳤다.
결국 나는 적절한 조치도, 사과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내 돈을 추가로 지불하여 두 번째 호텔에 짐을 풀었다. 속에서 불이 나니 밥 생각도 없어져서 저녁을 굶고 방값을 깎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방구석에 짐을 풀고 혼자 틀어박혀 분을 삭이고 있는데 호텔 지배인이 문을 두드렸다.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내려와서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직원들이 먹는 밥을 조금 나눠주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엇나갔다. 같은 차에 탔던 일행 둘과 한 테이블에 배정된 나는 그들과 같은 5가지 코스요리를 대접받았다. 식사가 끝난 후에 우리에게 따뜻한 모로코 차를 내어주던 호텔 지배인의 미소엔 애틋함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이튿날 우리는 함께 사막으로 향했다. 한참 후에 능청스럽게 답이 온 여행사 사장에게 컴플레인 사항을 조목조목 따져 환불을 요청했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이미 돈을 다 낸 이상 피곤하게 굴면 손해를 보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갑의 입장이 아닌, 남은 서비스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결국 나는 또 혼자 버려졌다. 별안간 기사는 나를 지목하더니 여기서 내리라고 했다. 도착한 곳은 사막투어를 진행하는 업체였는데 그 여행사를 통해 예약된 캠프의 사막 투어는 또 나 혼자라고 했다. 그나마 영어가 조금 통했던 타 캠프의 오너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다음엔 적어도 리뷰라도 쓸 수 있는 곳에서 예약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혼자 있을 내가 불쌍하니 이따가 저녁 먹고 자기 캠프로 오라고 했다. 게스트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면서.
순간순간 기분 나쁘고 억울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기분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생에 처음으로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경험은 기분을 망친채 즐기고 싶진 않았으니까. 나는 예의 바르고 귀여운 남매 둘이 포함된 미국에서 온 4인 가족과 한 팀이 되었고 낙타 체험이 끝난 후 그들이 머무는 호화로운 캠프장에서 동떨어진 누추한 내 캠프로 혼자 돌아가야 했다.
그곳엔 그나마 내 기분을 헤아려주는 직원 모하메드가 있었다. 그런데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그의 친구들이 수없이 캠프를 들락거리는 게 아닌가. 드넓은 사하라 사막의 말 안 통하는 모로코 남자들 사이에 나는 유일한 외국인 여성이었다. 그들이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미소가 순진한 의미인지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도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머지않아 투박한 손길로 차려낸 닭고기 타진과 채소 샐러드, 모로코 티와 후식인 오렌지까지 오직 나만을 위한 저녁상이 준비되었다. 순간 ‘음식에 뭘 타진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피어올랐지만 이미 내 손은 음식을 입에 밀어넣에 바빴다. 배가 너무 고팠던 탓에 뭘 더 생각하고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나는 초대받았던 타 캠프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만난 직원 오마르의 도움으로 나는 그 캠프의 내부를 살짝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건 마치 사막에 차려진 호텔방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외부에 위치한 간이 화장실과 언제 빨았을지 모를 퀴퀴한 이불, 얼기설기 대강 지은 나의 캠프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컨디션이었다.
그곳에서 우린 캠프파이어를 했다. 모하메드와 오마르를 포함한 여러 직원들이 다 함께 모로코의 전통 악기 ‘땀땀’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은 따뜻했고 노래는 즐거웠다. 나는 모든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다 같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다가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작별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서 길을 걷는데 누군가 멀리서 나를 부르며 뛰어왔다. 오마르였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미국에서 온 부부가 너의 방값을 내준다고 했으니 여기서 자고 가라고 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오마르에게 다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자고 했던 모습이 좋게 보였던 걸까, 맨 앞 낙타를 탄 김에 뒤를 돌아서 멋진 가족사진을 남겨주려고 애썼던 내 모습이 기특했던 걸까. 그들은 나 홀로 9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는 내 모습이 너무 멋지다며 우리가 너에게 하루라도 편안한 밤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미소 짓고 있는 오마르의 모습을 보자 그가 내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그 부부에게 전했을 거라는 게 짐작이 됐다.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무던한 성격 덕에 남의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여행을 하는 배낭여행자의 신세를 기꺼이 받아들인 나이지만 그런 내게도 쥐약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추위’였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그냥 받기엔 상당히 큰 호의였지만 잠깐 둘러봤던 그 순간 내 캠프와는 사뭇 다른 공기의 온도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정말 괜찮다는 제레미의 말에 나는 못 이긴 척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게 호화로운 캠프에서 따뜻한 하룻밤을 보낸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차를 탈 채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7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저녁 5시 무렵에 ‘페스’라는 도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9시면 오기로 한 기사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뭔가 잘못됨을 느낀 나는 다시 친구에게 전회를 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기사가 가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직접 전화해서 물어볼 테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더니 자긴 모른다고 했다. 말이 앞뒤가 안 맞았다. 나는 결국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내게 아침을 준비해 줬던 셰이엔은 침착하라며 나를 달랬다. 혹시나 잘못되어도 대가 없이 여기서 하룻밤 재워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여기서 이런 일을 겪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여행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더 많은 관광객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데 대도시 여행사들은 그런 생각 없이 돈만 밝힌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사는 끝끝내 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저녁에 출발하는 버스를 다시 예매할 수밖에 없었다.
셰이엔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낙타 밥이나 주러 가자며 나를 꼬셨다. 밥을 직접 주는 기회를 통해 낙타를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낙타밥을 다 주고 나서는 같이 시내를 둘러보다가 고기 굽는 냄새에 못 이겨 결국 식당에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먹음직하게 구워 나오는 양갈비가 50디르함(6500원)밖에 안 했다. 우리는 신나게 갈비를 잡고 뜯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내리쬐는 태양 아래 늘어져 있는데 이번엔 모하메드가 나를 불렀다. 캠프까지 태워줘야 하는 손님이 있는데 같이 드라이브나 가자는 거였다. 드라이브만으로도 좋은데 무려 사하라 사막 드라이브라니!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모래 언덕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막 드라이브는 정말이지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하고 뼛속까지 아찔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모로코는 이상하다. 싫어질만한 구석이 생기면 그걸 다 덮을만한 행운이 따른다. 이쪽에서 뺨 맞고 씩씩대고 있으면 저쪽에서 약 발라 반창고도 붙여주고 고깃국에 밥까지 말아서 먹여주는 격이다.
그래서 이 나라를 싫어할 수가 없다. 모하메드, 오마르, 제레미, 스테파니, 셰이엔의 호의와 내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던 모든 이들의 모습을 나는 영영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다시 모로코에 갈 거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예스’다. 물론 다신 엄한 데서 뺨 맞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할 거라는 설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