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최예또 Jan 13. 2023

부모님이 내 생일을 잊어버렸다.

 새벽 세 시, 나는 런던 루튼공항에 있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런던 루튼공항에서 울고 있었다. 나 홀로 배낭여행 9개월 차, 갑자기 들이닥친 형용 못할 감정에 공항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흐르는 눈물만 하염없이 닦아내고 있는데 몇몇의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는지 흘깃거리며 쳐다보다가도 이내 내 기분을 헤아린다는 듯이 못 본 체 시선을 거두었다. 이 답답한 심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데 야속한 시차 때문에 한국은 평일의 대낮이었다. 그 시간에 통화가 가능할만한 친구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게 SOS를 쳤다.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시간이면 분명 일어나서 TV를 보고 있을 시간인데 전화가 연거푸 닿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30여분 남짓 후, 아버지는 옆집 김 씨 농장 일을 도와주는 중이라 바빴다며 짧은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나는 잠깐 통화 가능하냐 물었고, 아버지는 이따가 점심식사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최대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감정을 추스르며 아버지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미 습기를 가득 머문 채 잠겨있는 목소리인데도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밝게 꾸민 내 말투가 목소리를 잘 커버했던 모양인지 별 이상한 기색을 느끼지 못하신 것 같았다. 이미 깊게 파인 미간 사이 주름들에 나에 대한 시름으로 주름을 하나 더 늘게 하고싶지 않았던 나는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그냥, 오랜만에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다시 일을 도우러 가야 한다며 비행기 잘 타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엷은 억지웃음을 띄우며 전화를 끊은 나는 이내 다시 우울해졌다. 1월 8일, 그날은 내 생일 전 날이었다. 아버지가 생일 미리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지 않은 것이 이내 섭섭했다. '그래, 생일 전 날이니까 모를 수도 있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럴 때  설마 했던 예감은 왜 항상 틀리는 법이 없을까. 아버지는 내 생일날에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름 귀하게 자란 외동딸인데 올해 나의 생일날엔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아무런 연락을 받을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고 싶었지만 많은 수도 아니고  셋뿐인 우리 가족인데 부모님에게 아무런 축하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퍼뜩 '앞으로 본인들 생일  섭섭하다는 말은  하시겠네' 따위의 생각을 하는 내가 경멸스러웠다. 적지 않은 20 후반의 나이에 고작 가족에게 생일 하나 챙겨 받지 못한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꼴이라니.


 사실 이건 내가 다 자초한 일이다. 늦은 나이에 귀하게 얻은 외동딸 애지중지 키우시며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느라 여태까지 고생하는 부모님을 내가 어찌 원망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기적인 이 딸은 '내가 번 돈 내가 알아서 쓰는 거니까 참견하지 마시라'라고 하며 1년 전 퇴사를 하고 해외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서 훌쩍 떠나버렸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입장은 아니지만 용돈 하나 넉넉하게 드리지 못하는 딸. 그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입장인 학생 때였다면 마냥 서운하기만 했을 이 일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에 벌어지니 한없이 서운하기보다 죄책감이 몰려온다. 이 나이 먹도록 유일한 자식 생일 하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시는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딸이 아닌 것 같아서.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님이 정말 바빠서 잊으셨는지 나보다 다른 일에 더 신경 쓸게 많으신 건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는 가풍 덕분에 모두 흩어져 살면서도 살가운 인사를 자주 나누는 편은 아니니까. 그저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선택당한 가족'은 이렇게 살아간다. 기념일을 기념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치처럼 여기며. 어쩔 수 없다. 사람 마음이 모두 다 내 맘 같은 건 아니니. 다만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기념일 잘 챙겨주는 남자를 만나서 그와 함께 꾸릴 '내가 선택한 가족'은 이렇게 살아가지 않겠다고. 돈과 시간이 부족할지언정 낭만은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겠다고.


 이런 생각이 점점 구체적으로 드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이렇게 변해가는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26. 운동하는 사람들이 신입을 '태우는' 방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