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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Feb 13. 2023

한국에는 왜 소매치기가 없을까

 영국 루튼에서 만난 나의 호스트 크리스티나는 문득 내게 한국에 대해 아는  없다며 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BTS? 손흥민? 김치? 어떤 주제를 먼저 꺼낼까 하다가 50대인 그녀가 이런 데에 흥미를 느끼지는 않을  같아서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낼까. 한국인의 ? 빨리빨리? IMF 극복한 민족의식? 이번에도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나온 설명들은 아쉽게도 이런 말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외모에 너무 집착해. 성형수술도 많이 하고 화장품도 엄청 많아. 연예인을 너무 우상시하는 경향도 있어. 몇몇의 열성적인 팬들은 그들을 신적인 존재처럼 대접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들과 닿을 수 있는 작은 기회 하나를 얻기 위해 엄청 많은 돈을 써. 한국인은 일도 많이 해.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나라가 24시 문화가 발달해서 편리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24시간 일하는 나라라는 뜻이지.”


 말을 다 뱉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 사람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왜 우리나라의 치부 같은 점들을 먼저 말하게 되는 걸까? 한국인은 정이 많아서 빈 손으로 사람 돌려보내는 걸 잘 못 하고, 치안도 좋아서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안전하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친절하고 이타적이라는 그런 부분들은 그 대화 주제가 지나고 나서야 떠올랐다. 혹여라도 그녀가 한국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게 될까 봐 급하게 수습하며 이런 모든 점들을 설명하긴 했지만 나의 이런 행동에 나조차도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말을 뱉었던 차이점들이 내가 유럽에서 반년 넘게 지내면서 느꼈던 한국인과 유럽인의 가장 큰 차이였던 것이었다. 항상 피부에 와닿게 느끼고 있던 차이점이다 보니 누군가 그런 걸 물었을 때 그 점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유럽인의 기준으로 한국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체코에서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나의 호스트였던 피터의 차를 타고 프라하 주변을 드라이브하던 중이었다. 그가 어떤 고급 맨션 단지 같은 곳으로 들어가더니 이곳은 유명 연예인이나 부자들이 사는 부촌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렇구나’하며 설명을 듣고 있는데 별안간 그가 한 사람을 쳐다보며 사뭇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그가 바라보던 곳엔 유모차를 끌며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30대 여성이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저 사람 엄청 유명한 배우야”라고 했다.


 “응? 배우? 유명한 사람이야?

 “응. 체코 국민이라면 모두 다 알 걸.”

 “진짜? 근데 왜 사진 안 찍어?”

 “사진을 왜 찍어?”

 “친구들한테 자랑 안 해?”

 “이걸 왜 자랑을 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라면 국민 모두가 얼굴을 알만한 인지도를 가진 배우가 모자나 마스크 하나 없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한가로이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길을 가기에 바빴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수수한 차림으로 본인의 여가시간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나에겐 그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충격을 받을만한 일은 또 한 번 있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정처 없이 시가지를 배회하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방송장비 같은 것들이 눈에 띄어서 가깝게 다가갔더니 그곳에서는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멈춰서 그 현장을 구경하는 사람도, 구경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그냥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본인 일을 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간혹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그곳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여행객뿐인 것 같았다.


 유럽의 마트 풍경 역시 생소하기 그지없다. 상품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유명인들의 사진을 내세워 마케팅하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의 상품 패키징엔 유명인의 얼굴이 붙어 있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끔 모델사진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땐 예외 없이 사람이 아닌 상품이 중심이었다. 유럽의 길거리에 등장하는 광고모델들은 아무리 봐도 눈에 익는 중복되는 인물이 없었다. 모두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심지어는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못 생겼다‘고 생각이 들만한 사람들까지- 모델들의 사진들 뿐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유럽인들은 ‘개인주의’, 아시아인들은 ‘집단주의’라고 표현한다. 유럽인들은 ‘개인의 만족감’에서 행복을, 아시아인들은 ‘집단의 소속감’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차이에서부터 각각의 특징들을 대입해 보면 서로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다만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 역시 점점 개인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가족을 꾸리기를 거부하고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YOLO(‘당신은 오직 한 번만 살 수 있습니다’라는 개인주의적 마인드)정신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이젠 사람들이 ‘집단에 속하는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미 예전과 많이 달라져버린 삶의 모습 속에서 예전 같은 모습을 강요하는 건 이제는 오지랖이라는 것이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며 소매치기의 악명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항상 어딜 가든 두 배는 더 물건 간수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럼과 동시에 의문은 점점 커졌다. 한국인들은 왜 물건을 훔치지 않을까? 한국인들은 어째서 항상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는 걸까?


 첫 번째 가설은 CCTV의 존재였다. 우리나라는 ‘CCTV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모든 곳들이 항상 녹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훔친다고 해도 금방 잡힐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유럽 소매치기의 온상이라는 광장이나 유명 관광지 같은, CCTV가 있어도 무용지물인 수준으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도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출퇴근 지옥철이나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누군가 물건을 훔쳐갔다는 기사를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두 번째 가설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유교정신의 영향 때문이라는 거였다. ‘선민의식’, ‘홍익인간 정신’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은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아니면 종교적인 믿음은 어떨까? 기독교나 불교 모두 ‘도둑질은 나쁜 짓’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이유로 삼기엔 현재 젊은이들 중에 유교정신을 제대로 알고 계승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고 종교 역시 그렇다. 여전히 한국인의 이런 특징을 설명하기엔 역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얼마 전에 우연히 친구와 대화 중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느낀 한국인의 특징을 말하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무언가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스스로 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얘기하고 있던 한국인의 특징은 이러했다.


 “한국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걸 굉장히 두려워해. 남들보다 도태되거나 뒤쳐질까 봐 걱정이 많거든. 남들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면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게 가장 잘 사는 길이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야.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걸 기피하려고 해. 만약 도전에서 실패한다면 모두가 루저라고 부를 것 같으니까.”


 그랬다. 그 이야기를 하며 깨달은 사실은 한국인은 이 ‘낙인‘을 상당히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무언가를 잘못하면 ’주변사람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두렵다‘고들 한다. 어렸을 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엄마는 ’동네에 소문날까 무섭다‘고 했다. 본인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고 억울할 때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며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한국인은 항상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의견을 의식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CCTV가 된다. 잘못을 저지르면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이 사회에서 낙오될 거라는 생각은 의도치 않게 서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때로는 어떠한 법적인 처벌보다, 신앙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은 심리학 및 역사에 대해 아무런 관련 없는 그저 한국에서 기본 교육을 마치고 해외생활을 조금 겪어본 평범한 아무개의 개인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무언가를 불평하거나 고치자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한국을 정말로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남 눈치 많이 보는 한국인의 특성을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것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너무 팍팍하게 느껴져 해외로 나오면 다를 줄 알았는데 팍팍함의 정도와 종류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서든 사람 사는 거 결국은 다 똑같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맞게 점점 개인주의의 바람이 곳곳에 불어드는 탓에 남의 눈치를 보는 한국인의 특성에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 결코 좋은 측면만 있거나 나쁜 측면만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남 눈치 보는 한국인의 특성 덕에 우리는 그렇게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해 주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한국인의 남 눈치 보는 문화를 조금은 애틋하게 바라봐 주면 어떨까. 중용의 미덕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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