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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Dec 16. 2021

못난 사람과 못나도 괜찮은 사람의 차이.

자기애의 첫걸음, 자기 객관화.


 간혹 가다 고민이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사람 자체는 선한데 어딘가 핀트가 엇나가 있는 사람. 쉽게 말하자면 착하지만 사회성이 없는 사람. 남들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하고 혼자 본인 얘기만 계속 늘어놓다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사람. 남들은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고 쉽게 딱지를 붙이지만, 가슴속 어딘가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그냥은 모른 체할 수가 없는 사람.


 내 친구 B와는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는 매우 튀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첫인상이 강렬했다. 성인 남성이지만 키가 150cm 정도로 작고 몸집이 왜소한 편이었는데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얼굴과 몸의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오히려 그가 꿈꾸고 있는 배우를 하기엔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는 연극 동아리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맡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정도 연기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단원들의 연기를 평가하는 데에도 꽤나 진심으로 조언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솔직함이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야 말았다. 아마추어 모임인 이상 모두의 실력이 뛰어날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는 데 있는 그대로의 신랄한 평가를 면전에다 대고 했던 것이다. 결국 이야기를 듣던 한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르르 몰려나가 우는 단원을 달래주던 남은 이들은 B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B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B는 좀 전에 울음을 터뜨린 단원을 찾아가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던 둘이 다시 돌아왔을 땐 B의 얼굴이 더 좋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단원이 앞에서 울었던 것보다 B가 뒤에서 곱절은 더 많이 혼자 울었던 것이었다. 앞에선 그렇게 비수가 되는 말들을 잘도 하더니 왜 뒤에 가서 울었냐 물으니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그냥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웠다고 했다. 자기는 결코 누군가를 상처 주려는 의도로 한 얘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친한 언니 M 직장에서 동료로 만났는데 털털하고 텃세를 부리지 않는 좋은 선배였다. 그런데 가끔가다 그녀의 진심이 궁금할 때가 종종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말했다가도 누군가가 실수로 형이라고 잘못 부르면 자기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거냐며 쏘아붙이고, 스스로 못생겼다고 쿨하게 인정하듯 말하는  같다가도 누군가의 외모 관련된 얘기에 발끈하며 자기가 그래서 못생겼다는 거냐며 따져 묻는 이해할  없는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는 때가 많았다. 쿨하게 장난을 치기에 같이 맞받아치면 왜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냐며 상처 받았다는 듯이 얘길 하고, 그런 주제를 피하거나 조심스레 말하면 또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고. 그래서 그냥 '장난기가 심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도 쿨하게 표현하면 또 본인은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다며 상처 받지 말라고 사과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녀와 나의 장난과 대화엔 항상 핀트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항상 어딘가 찝찝하다. 그들을 깊게 알고 지내왔기에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나의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언가 공통점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다.


자기 객관화

 

 모든 사람들은 개성이 있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키가 작고, 누군가는 뚱뚱하고, 누군가는 말랐다. 또 누군가는 눈동자가 갈색이고, 누군가는 귓불이 두툼하고, 누군가는 엄지손톱이 짧고, 누군가는 눈썹이 길다. 위에 열거한 여덟 가지 특징들은 누군가는 가질 수 있는 아주 평범한 특징들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처음 열거한 네 가지 기준들은 좋고 나쁜 걸로 나누고, 뒤에 열거한 네 가지 기준들은 별생각 없이 넘어가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선호하는 기준이 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런 기준은 지금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통일이 되어있다. 모두 제각각 서로 가진 개성이 다른데 사회가 정한 틀 안에 속하지 않는 특징은 너무나도 쉽게 '콤플렉스'로 치부 해 버린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어긋난 보호 심리를 발동시킨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다른 걸로 인정을 받기 위해 엉뚱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게 비단 개개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들을 이토록 두터운 보호막 안으로 숨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점점 더 두터운 보호막을 만들고 어긋난 보호 심리로 자기를 보호하면 할수록 사회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위에 열거한 여덟 가지 특징 중 처음 네 가지의 특징들처럼 사회의 시선 안에서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누는 기준들을 후에 열거한 네 가지의 특징들처럼 '이렇든 저렇든 다 괜찮은 것'이라는 카테고리 속으로 넣는 것이다. 작은 키도, 왜소한 몸집도, 털털한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도 모두 말이다. 스스로가 가진 개성을 '콤플렉스'가 아닌 '괜찮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지적을 하여도 갑자기 울컥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게 된다.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악하다가 추한 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지가 된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감까지 갖게 된다면 콤플렉스를 멋지게 매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제 키가 작은 건 저도 잘 아는 사실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꽤나 상처인데요?'라는 식으로 나를 무시하려고 했던 사람을 역으로 무안하게 만들 수도 있고, '제가 이렇게 성격도 좋은데 키까지 컸으면 너무 완벽해서 안돼요.'라는 식으로 자신감과 함께 재치도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결함은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굳어지게 된다. 내가 가진 나만의 개성을 온전히 '괜찮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수없이 겪어온 많은 기억들에 의해 쉽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모든 게 변할 필요는 없다. 그저 차근차근히, 매일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되뇌는 것이다. '괜찮아, 나는 좋은 사람이고 천천히 나아지고 있어. 나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 그런 작은 발걸음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샌가 누군가에게서 예전에는 날이 선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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