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친구의 팝업스토어 운영을 도와주게 된 덕분에 각양각색의 매력과 개성이 담긴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내 친구 부스 바로 옆자리는 직접 꽃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분의 부스였는데 꽃을 압착해 만든 작품들이 꽤나 소장 가치가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그녀 작품의 판매 추이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미 팔린 액자가 걸려있던 자리에 새로운 작품을 걸고 있을 때 나와 마주쳤던 것이다. 그녀가 새로 걸고 있던 작품은 기존의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생화의 모습이 아닌 가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낙엽 느낌의 꽃들이어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가을느낌이 물씬 나네요. 지금 계절과 잘 어울려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이건 팔려고 걸어두는 작품은 아니에요."
"왜요?"
"이건 제가 처음부터 만든 건 아니에요. 배열은 제가 했지만 압착은 제가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처음 막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만들었던 거라, 저에겐 의미가 깊어요."
"이것도 전부 생화로 만든 거예요?"
"그럼요. 처음 만들었을 땐 이 작품들처럼 화려한 색깔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색깔이 빠지더라고요. 만든 지 벌써 10년도 넘었어요."
그렇구나. 그녀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저 가을을 표현할 의도로 톤을 통일한 작품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저 오래 지나서 색이 빠진 작품이었던 거구나. 그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작품이 옆의 형형색색의 색을 띤 작품들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왜일까. 서로 자기 색이 더 예쁘다고 뽐을 내던 계절이 지나고 나면 모두 본인 고유의 모양은 유지한 채 비슷한 색으로 변해가는 것, 그것이 결국 인생이 아닐까. 누구나 밝게 빛을 발하던 시기를 지나 그 불빛이 점점 소멸하면 마지막엔 죽음에 이르지만, 그 자체로 빛나는 인생과 다름없는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어떤 빛깔을 품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저 꽃으로 영원히 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