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무엇도 시작을 알지 못한다
당연히 그 무엇의 끝도 알지 못한다
씨앗이 날아와 들판에 꽃을 피우지만
씨앗의 시작을 어찌 알까
바람에 실려 왔으니 저 하늘이었다고 할까
땅에서 솟구치니 흙먼지였다고 할까
노란 꽃이 피었으니
태양의 비듬이라고 할까
붉은 꽃이 피면
저녁노을이 타면서 흩날린 불꽃이라고 할까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나만의 우주가 있고
나를 위해 부단히 애쓴다는 사실을 안다
사하라 사막, 에베레스트, 로스빙붕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겸손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큰 독수리가 날개를 쭉 펼친 채 활공하는
높은 하늘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자유를 갈망할 수 있었겠는가
바다가 없었더라면...
아,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바다 앞에 서면 나의 자아는
무한 행복과 무한 슬픔을 반복하는 파도가 된다
그것이 부서지는 희열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다가도
삶에 지칠 때
나는 아직 숨을 곳이 있음에 감사한다
나의 우주가
내게 작은 방 한 칸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쉬어 갈 수 있고
그 사랑을 품을 수 있으며
우주와 함께 잠든다
나의 우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