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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Sep 20. 2022

작가의 견해가 감추어져 있을수록 작품은 더욱 훌륭해진다

마르크스주의 미학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독일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협력으로 만들어낸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끝은 멸망이라고 생각했고 계급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혁명을 바랐고, 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이야말로 혁명의 유일한 주체세력이라고 믿었다. 이 계급이 투쟁하여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미학에 대해서 딱히 연구하지는 않았다. 이후 다른 철학자들이 그들의 광범위한 저작들 속에서 근본적인 미학적 문제에 관한 조각들을 찾아냈고, 이후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들에게 미적인 것이란?

동물은 자신이 속해있는 종의 척도와 욕구에 따라 형성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모든 종의 척도에 따라서 생산할 줄 알고 언제 어디서건 대상에 대해 내재적 척도를 갖다 댈 줄 안다. 
[경제학 철학초고] - 마르크스

 동물은 육체적 욕구의 지배하에 생산하지만, 인간은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때만이 진정한 생산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의 법칙"에 의거해서 생산한다는 것이며, 이와 같이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인간의 미적 관계를 삶의 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파악했다. 

 또한 인간은 어떤 물체를 미의 척도에 따라서 평가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 중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이룬다. 이는 동물적인 만족의 수준으로부터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적 기쁨의 수준으로 질적인 도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적 감성이 비교적 고도의 단계에서 발전된 인간의 유적을 드러내 준다고 주장했다.


경제와 예술의 관계

무엇이 예술을 그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가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일까?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 마르크스

 예술작품의 전성기는 탄생 시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J.S. 바흐의 음악은 그의 사후에 조명받았고, 당시에는 비판받았던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 예술성을 인정받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같은 예술의 특정한 시기와 사회의 일반적 발전 사이에는 어느 정도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그리스 예술은 왜 무수히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치 않는 미적 쾌감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인류의 사회적 유아기가 경제적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 예술은 영원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즉 예술과 미적 가치는 경제적 토대에 기반하는 것이지만,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앵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독일

리얼리즘

작가의 견해가 감추어져 있을수록 예술작품은 더욱 훌륭해집니다. 제가 말하는 현실주의란 심지어는 작가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드러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엥겔스가 하크니스에게 보낸 편지 일부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예술의 인식적 기능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현실세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예술적 방법으로 리얼리즘에 관심을 기울였다. 엥겔스는 "모든 사람은 하나의 전형이자 동시에 특정한 개별적 인간, 즉 늙은 헤겔의 표현대로 '이 사람'이며 또 그래야 한다"라고 말하며, "리얼리즘은 디테일에의 충실성 이외에도 전형적 상황에서의 전형적 인물의 충실한 재현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경향성이란 .... 상황과 사건 진행 자체로부터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작가는 자신이 묘사하는 사회적 갈등들을 풀어갈 앞으로의 역사적 해결책을 독자의 손에 쥐어줄 필요가 없지요. 
- 엥겔스가 민나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 일부


소비에트 내에서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발전 과정

소비에트 내에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미학

사회학적인 성격이었고, "물질적 삶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는 데에 일차적으로 주목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회학주의적 미학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발전되지 못했다.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사회적 요인 외에 어떠한 다른 결정요인도 가질 수 없다"는 데에로 환원되고 말았다. 

1930년대에 접어들며

사회학주의의 이론적, 방법론적 원리와는 대립되는 레닌주의적 단계가 개시되었다. 레닌은 예술을 삶의 인식 수단으로 간주하였고, 예술은 객관적인 현실의 반영이자 인식의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또한 현실주의라는 개념이 대두되었고 계급 고유의 온갖 차별적 특징을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현실주의 개념이 정식화되었다. 1934년 소비에트 작가회의는 '사회주의 현실주의'를 "혁명적 발전과정 속에 있는 현실을 진실되고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요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선언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예술의 특수성에 대한 설명이 부재해 왔다는 비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즉 과학이란 현실적 과정을 최고도로 적합하게 인식하는 것이 과제이지만, 예술은 미적 이상에 대한 가치평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주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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