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언어 - 송은혜
책 리뷰를 시작도 하기 전에 대뜸 권유부터 하도록 하겠다. 여러분들은 이 책을 아껴 읽기를 바란다. 난 사실 살짝 후회하고 있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펴서 음악과 함께 한 챕터씩 읽을걸.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은 크기에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 소음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히는 작가의 기록. 작가 자신만이 기록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들. 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 평소에 다소 어려운 책을 읽는지라 들고 다니는 책은 쉽게 읽혔으면 하는 나의 바람에 부합하는 책이었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책갈피 할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 정도. 책 정 가운데에 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의 표지에 접혀있는 부분도 없어서 카페에서 받은 냅킨을 책갈피로 사용했어야 했다.
차례를 보자. 대부분의 책은 시작할 때 '서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책은 '서른세 개의 일상 변주곡'이라는 Prelude(프렐류드, 전주곡)로 시작한다. 변주곡이라는 말에 알맞게 각 챕터는 Var.1부터 Var.33까지 존재한다. Var. 는 Variation(변주곡)의 약자다. 적지 않은 변주에 길을 잃지 않도록 크게 네 가지로 묶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멋지게 Coda(코다, 끝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로 마무리했다. 음악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일까. 형식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바로 본문으로 뛰어 들어갔다면 이 매력적인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 터였다. 이어서 본문을 펼치면 단숨에 독창적인 형태를 맛볼 수 있다. 보통 문단의 처음은 들여 쓰기 마련인데, 이 책은 문단의 처음이 뽈록 튀어나와 있고 그 밑의 줄들은 들어가 있다. 어떤 예술적인 시도일까? 단정한 형식 뒤에 등장한 신선함이라서 그런지 더 새롭다.
저자는 자신이 해외에 살며 겪었던 일들과 그때마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 생각들을 풀어가며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렸을 적 엄마 무릎에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던 그 감각이 생생하다. 어릴 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 전공자인) 나도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놀면서 마음 한편에 연습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레슨 선생님의 '노래해'라는 말을 이해 못 했던 것도. 공감하며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하나의 변주를 끝낼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설명한, 혹은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기 위해 참고한 음악의 제목을 친절하게 적어준다. 앞서 리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아껴읽기를 권유한 이유다.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을 겪은 음악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한 번에 여러 챕터를 읽고 여러 곡을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 챕터의 여운을 하루 종일 즐기는 것이 더 취향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곡 제목이 챕터의 첫머리에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 아쉬움은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넘기다가 중반부터 흠칫 깨달아버리고 음악을 찾은 바보 같은 이의 외침이다. 다시 읽는다고 해도 첫 만남처럼 강렬하지는 않을 테니까.
책을 처음 펴고 저자를 살핀 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나는 저자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활동하던 분을 팔로우하고 올라오던 글을 즐겨 보았던 때가 있었다. 짧은 글 속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음악들이 어린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사람이 음악을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렸던 것은 그때의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포근하고, 더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