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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Oct 04. 2022

예술이야말로 삶에의 위대한 자극제이다.

니체의 예술론

예술,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예술!
예술이야말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여신이며,
삶으로 유혹하는 위대한 인도자이며,
삶에의 위대한 자극제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 독일

니체에게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적 철학은 지상의 삶을 옥죄는 것이었다.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의 형태로 진행된 서구 형이상학이 인간의 삶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니체는 신을 죽였다. 이제 철학은 인간이 사는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니체의 초기 예술론

니체에게 예술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개의 예술 충동이 대립하고 화합하며 예술의 역사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아폴론적

아폴론적인 예술 충동은 완벽하고 아름다운 가상을 통해 삶의 현실을 극복하고 싶어 한다. 니체가 바라본 꿈의 세계는 현실 세계보다 완전한 세계이고, 보다 높은 진리의 세계다. 아폴론적인 예술은 척도와 규준을 엄수하며 자기 인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아폴론적인 예술가는 고통의 가운데에서 살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은 고통으로 인한 강렬한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만의 척도로 제한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디오니소스적

니체가 주로 음악과 무용을 겨냥해서 말한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은, 오히려 고통스러운 세계와 삶을 긍정하고 거기에 몰입하려고 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살아간다. 이상을 꿈꾸는 아폴론적인 예술 충동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하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은 아폴론적 꿈꾸기를 처음부터 거부한다. 디오니소스적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망각이다. 자기 망각과 도취적 몰입으로 삶의 고통과 모순이 스스로 충족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 고통 자체가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다.

"시인이 시를 쓸 수 있으려면, 의식을 잃어 오성이 그의 내면에 전혀 남아있지 않아야만 한다."


니체의 후기 예술론

그의 후기 예술론에서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예술에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삶의 고찰 속에 놓여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니체의 후기 예술론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초인 사상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인간이다. 인간은 기존의 형이상학, 도덕, 종교, 삶의 관습까지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니체가 보기에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힘에의 의지

초인의 삶은 적극적인 긍정적 자세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것도 자신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생존을 위해 보다 큰 힘을 찾아가려는 이때의 삶은 "힘에의 의지" 그 자체이다. 이 같은 힘에의 의지는 삶을 왜곡으로부터 구원하고,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창조하게 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삶에의 적극적인 긍정

니체는 기독교적 교리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삶에는 삶 자체에 대한 긍정이 아닌 절대자에 대한 긍정만이 있을 뿐이다. 니체는 이러한 입장에서 기존의 형이상학, 도덕, 종교, 과학 등과 단호하게 결별했다. 그리고 예술을 창조적 삶을 구원해주는 존재로 끌어들인다. 니체에게 예술은 삶을 부정하는 모든 의지들에 저항하는 위대한 힘이었다.


낭만주의 미학과 니체

19세기는 낭만주의 감정미학이 지배적인 시기였다. 음악의 측면에서만 살펴보자면 음악을 감정이라는 주관적인 창구를 통해 접근하며 음악의 의미를 한 단계 높였던 미학적 경향이다. 이 낭만주의 미학과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니체는 낭만주의를 혐오했다.

유사한 의견

그 둘은 음악을 도취와 고통을 포함하는 주관적 예술로 보았다는 점, 음악이 개념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는 점, 반 이성주의와 반 주지주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모든 예술 안에서 아름다움은 완전히 논리적인 것이 극복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반대되는 의견

하지만 니체는 자신의 디오니소스적 예술이 낭만주의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낭만주의 미학에서 중시되는 감정표현을 통한 미의 추구가 음악의 본질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낭만주의는 음악을 단지 그림처럼 아름답게만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표현에 치중하면서 강함을 상실하며 결핍의 감정만 증가하게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낭만주의 예술의 기반이 '허무주의적 염세주의'라고 말했다. 니체에게 낭만주의자들은 커다란 불쾌 자체를 창조적으로 만드는 예술가였고, 낭만주의 음악은 거짓을 강화하며 본질적 음악에서 거리가 먼 것이었다.

허무주의는 병리적 중간 상태를 표현한다.(병리적이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결론짓는 끔찍한 일반화를 말한다) - 1887년 [유고]

니체는 이러한 이유로 낭만주의를 혐오했고, 낭만주의 예술을 "데카당스"라고 칭하며 디오니소스적 예술과 뚜렷하게 구분했다.

예술가-염세주의는 […] 괴로워하는 자, 절망하는 자, 자신을 불신하는 자, 한마디로 병든 자는 어느 시기에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매혹적인 환영을 필요로 했다 - 이와 유사한 경우는 : 삶에 근본적으로 허무적 태도를 취하는 데카당스 예술가들이다. -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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